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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아이의 낮잠을 깨우나

유모차·휠체어 가로막는 평범하지 않은 세계
등록 2017-02-15 23:19 수정 2020-05-03 04:28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 유모차. 이승준

지하철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 유모차. 이승준

“엘리베이터를 타려면 어디로 가야 하죠?”

“설치할 예정입니다. 유모차를 들어드릴까요?”

역사 직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미소지었다. 고개를 돌리니 유모차에서 겨우 잠든 아이의 얼굴이 보였다. 얼마 전 지하철을 타고 교보문고에 가려고 서울 종로구 5호선 광화문역에 도착한 참이었다. 내가 아이를 안고, 직원의 도움을 받아 유모차를 들고 올라가면 되는 일이었다. 몇 초 동안 여러 생각이 휙휙 지나갔다. ‘애를 굳이 깨워야 하나. 오랜만에 얌전히 있는데….’ ‘유모차 끌고 서점 가는 호사도 맘 편히 못 누리나.’ 그런데 기시감이 들었다. 16년 전에도 지하철 5호선 승강장에서 대합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가 없었다! 당연히 생겼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오랜 시간 그대로다. 허탈했다. 결국 교보문고에 가는 대신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다.

16년 전 나는 A를 업고 광화문역 승강장 계단을 여러 차례 올랐다. 대학 새내기로 만나 친구가 된 A는 목발이나 휠체어를 이용해 이동하는 지체장애 남성이다. 장애인 리프트가 있지만 A는 그 기계를 무서워했다. 일단 계단을 올라 한 고비를 넘겨도 지상으로 나가는 엘리베이터를 찾아 돌고 돌아야 했다. 학교에서 수업을 듣거나, 서점에 가는 평범한 생활을 위해 A는 늘 내게 업히거나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물론 16년 뒤 장애인을 포함한 교통약자의 이동권은 많이 개선됐다. 곳곳에서 길을 막던 ‘턱’은 경사로로 바뀌고, 저상버스가 도입되고, 대부분의 지하철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다. 장애인과 시민단체들이 ‘버스를 타자’고 외치며 풍찬노숙한 끝에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 편의 증진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는 예산과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며 난색을 보였지만 지금은 장애인을 비롯해 노인, 환자,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보호자들 모두 이 법의 혜택을 받고 있다.

문제는 그럴듯한 법과 제도가 있어도 곳곳에 빈틈이 존재하고, 사회 구성원의 의식도 ‘비교통약자’ 중심이라는 것이다. 육아휴직 뒤 날씨 좋은 날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휴직 전에는 몰랐다. 인도나 건물의 경사로가 수많은 자동차에 가로막혀 있다는 사실을. 유모차로 좁은 공간을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쓰거나 이리저리 돌아가느라 진땀을 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지하철 환승 엘리베이터 찾기는 왜 이리 힘든지. 안내문을 읽어봐도 헤매기 일쑤였고 결국 역사 직원들에게 묻는 일이 다반사였다.

A에게 오랜만에 전화했다. A는 지난해 취업해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한다. 그는 출발 시각이 지체될까 초조한 저상버스 기사에게서 “아저씨, 왜 출근 시간에 나왔어요”라는 말을 들었다. 늦은 밤 시간대 엘리베이터가 운영되지 않는 지하철역도 있다. 여전히 장애인은 출근하고 야근하는 노동자가 아닌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가 빠른 속도로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데 힘썼다면 이제는 빈틈을 메우고 제대로 운영하는 데 관심을 가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장애 없는 건강한 성인 남성’ 기준에 맞춰 설계된 국가 시스템도 계속 바꿔나가야 한다. 유모차에서 잠든 아이를 깨우지 않고 서점에 가고, 장애인이 전동휠체어로 출퇴근하는 평범한 일상을 꿈꾸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오늘도 평범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장애인들은, 주양육자들은 지하철 편의시설 현황과 수유실 위치 등을 달달 외운다.

A는 매일 전동휠체어를 타고 길을 나선다. 나 역시 유모차를 끌고 집을 나선다. 자꾸 보여야, 자꾸 시끄럽게 떠들어야 뭐라도 바뀐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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