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양반(아내): 나 오늘 회식 자리가ㅠ
나: 오늘 일찍 오는 거 아니었어?
바깥양반: 갑자기 잡혔네. 미안해ㅠ
나: 알겠어….
모바일 메신저 창을 올려보니, 지난번에는 야근 때문에, 또 지난번에는 누군가의 송별회로 늦는다는 메시지가 “ㅜㅜ”와 함께 있었다. 아이와 지지고 볶는, 그날이 그날 같은 어느 날 오후 5시께, 메신저 창을 닫은 나는 무심코 중얼거렸다. “뭔 놈의 회식이 그렇게 많아.”
으아악. 휴직 전인 몇 달 전만 해도 내가 이런 메시지를 보냈는데! 기자라는 직업 탓에 월화수목금, 그리고 일요일까지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밤늦게 집에 기어 들어오던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메신저 창을 좀더 위로 올리면 내가 보낸 “미안해”가 가득하다. 휴대전화를 보느라 방심한 사이 19개월 아이는 미처 ‘방어하지’ 못한 서랍과 싱크대 문을 열고 옷가지나 프라이팬, 냄비 등을 마구잡이로 꺼내고는 나를 보며 웃는다. ‘오늘 하루도 길어지겠네….’ 숨이 턱 막힌다.
몇 달 전 메신저 창을 바라보던 아내의 마음도 그랬을까. 아내는 출산 뒤 1년 넘게 ‘독박육아’를 했고, 나는 하필 당시 온갖 이슈로 요동치며 총선을 향해 달려가던 국회에 출입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부부는 하루를 싸움으로 마감하곤 했다. 자정을 넘겨 고양이 걸음으로 집에 들어온 나는 “미안해”를 연발했다. 전개는 늘 똑같았다. 미안해, 고생했어, 내일은 일찍 올게. 그렇지만 내가 놀다 온 건 아니잖아!
나는 휴직계를 올리며 결심했다. ‘늦게 온다고 뭐라 하지 말자. 사정 뻔히 알면서….’ 하지만 아내의 늦은 퇴근에 동요하는 내 모습을 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피.곤.하.다! 짜.증.난.다! 섭.섭.하.다!
휴직 초기엔 체력적 한계 때문에 늘 신경이 곤두섰다. 아이가 잠들기 전까지 퇴근한 아내와 같이 보내는 한두 시간이야말로 비로소 숨통이 트이는 소중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며 몸이 주양육자에 적응돼도 아내의 늦은 퇴근은 여전히 달갑지 않았다.
어느 날 아이를 재우고 즉석카레로 늦은 저녁 ‘혼밥’을 하다 깨달았다. 내 마음이 그런 건 ‘고립감’ 때문이라는 것을. 시종일관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감정노동을 해야 한다는 점에서 돌봄노동은 매일이 ‘멘붕’이다. 또 매 순간 고민과 선택의 연속이다. ‘지금 간식을 더 줘도 될까’ ‘떼를 쓰는데 목소리를 높여야 하나’ ‘피부에 뭐가 났는데 병원에 가야 하나’ 등 매번 난감한 질문에 뾰족한 답을 찾지 못하고 헤맨다.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아이의 모습도 누군가와 실시간으로 나누고 싶다.
하루를 마감하며 이런저런 고민을 나누는 시간이 있어야 마음의 짐을 덜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다. 결국 내가 듣고 싶던 말은 “괜찮아“ “잘하고 있어”였다. 때로는 아내보다 소아과 의사 선생님, 어린이집 선생님 등에게 위로를 받는 이유다. “내 편이 필요하다!”
양육자들의 고립감을 덜기 위해서는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야 하고 사회가 ‘편’을 들어줘야 한다. 하루아침에 가능한 일은 아니다. 일단 주양육자를 주변에 둔 이들은 다음과 같은 말이라도 피하시라. “미안해, 미안해”(특정한 이유 없이 미안하다는 말로만 때우지 말자), “피곤해”(너만 피곤하냐!), “대충 하고 쉬어”(절대 대충 할 수 없다ㅠ), “아유, 뭘 그리 유난을 떨어”(이런 말은 절대 안 된다!). 그 대신 단 10분이라도 주양육자의 이야기에 귀를 열어주시라. “잘했어” “괜찮아” 같은 추임새는 필수다. ‘나는 네 편이야’라는 얼굴을 하고.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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