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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나무가 있는 풍경

땅 구하고 1년 만에 설계 완성… 월급쟁이의 ‘빡빡한’ 꿈과 계획
등록 2016-08-24 22:08 수정 2020-05-03 04:28
마지막 원고를 쓰는 동안에도 식탁에 앉아 함께 마감하는 만세. 신소윤 기자

마지막 원고를 쓰는 동안에도 식탁에 앉아 함께 마감하는 만세. 신소윤 기자

“엄마랑 아빠는 감나무를 닮았었어. 우리 집 앞마당에서 가을마다 언니랑 나한테 빠알간 감을 떨어뜨려주던….”

오랜 세월 뒤, 아이들이 엄마랑 아빠를 이렇게 기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감나무 옆에는 작은 그네가 하늘거린다. 큰아이가 2층 자기 방에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둘째아이 다락방이 있다. 꼬마들이 다락방 천창으로 별을 보며 잠들겠지? 천창에 눈이 쌓이는 날, 호호~ 손을 불며 마당을 쓸러 가는 건 어떨까? 그 마당에서 아이들이 땅을 밟는다. 강아지나 상추 같은 동식물도 함께 자랄 것이다.

‘짠물’로 알려진 회사의 월급쟁이 주제에 터무니없는 꿈을 꾸는 것일까? 우리 가족은 ‘사고’를 치기로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분양한 ‘주거전용단독택지’ 미분양분을 지난해 8월 계약했다. “단독주택 한 채 지으면 10년 늙는다”는 말이 있다. 집을 설계하고 짓는 과정에 들어가는 최대 수억원의 비용 대기가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적지 않은 나이에 갑자기 10년 더 늙을 수 없었다. 정교한 계획이 필요했다.

비용 면에서 약간 위험부담이 불가피했다. 그래도 일반적인 계산은 이랬다. 최근 아파트 전세가율(매맷값 대비 전셋값 비율)이 70~80%라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가정이 가능하다. 우선 지금 사는 집을 (최대한 비싸게) 판다. 땅 70~80평을 산다. 집 두 채를 나란히 짓는다. 한 채는 전세를 준다. 새집 전셋값은 ‘지금 우리 집’ 매맷값의 70~80%(최근 전세가율) 정도로 설정한다. ‘우리집 매맷값+새집 전셋값=단독주택 부지 땅값+설계비+건축비(각종 세금 포함)’ 이런 공식이 상황과 얼추 맞았고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어떤 땅을 구하는지에 집짓기의 성패가 한 차례 갈린다. LH가 택지에 조성한 단독주택지를 분양받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LH 주택지는 한번에 토지대금 전액을 내지 않고, 6개월마다 중도금(최대 6회)을 내면서 적당한 착공 시점을 볼 수 있다. 중도금 단계부터 토지 담보로 땅값의 최대 80%까지 은행 대출도 받을 수 있다. LH가 보증을 선다. 목조주택의 경우 짧으면 4개월 만에 착공과 준공이 가능하다. 대출이자를 내면서 버티고, 준공 시점에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아 은행빚을 갚으면 된다고 봤다. LH 부지는 정지 작업을 비롯해 도로·상하수도 같은 건축 기반시설이 갖춰졌다. 일반인끼리 거래에서 종종 일어나는 각종 분쟁 여지도 적다. 가장 큰 고민이던 ‘자금’과 ‘최소한 사기를 당하지 않는’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는 계산이 섰다.

전문 건축설계사를 수소문해 지난 5월 계약했다. 3개월 만에 설계 뼈대(사진)가 완성됐다. 땅을 계약한 지 꼭 1년 만이다. 두 집을 쪼갠 단독주택에 ‘아방궁’은 없다. 토지 대비 건축 가능 바닥면적 비율인 ‘건폐율’(우리의 경우, 토지의 50%)과 건축 가능 최대 거주 면적인 ‘용적률’(100%), 최소 주차 면적(3대), 옆집과의 거리 규정(폭 1m 정도) 등을 계산하면, 각 집의 바닥면적은 최대 19평이다. 2층으로 쌓아올리면 각 집이 38평, 여기에 다락방이 더해진다. 1층 19평에 현관·계단·거실·주방·화장실·미니공간이 들어선다. 2층엔 방 2개와 가족실·화장실·세탁실을 넣는다. 가족실 욕심에 더 빡빡한 공간이 됐다. 3층에 다락방이 하나씩 있고, 옥상은 옆집과 공유하기로 했다.

의미를 담아 집을 짓는다. 단독주택의 매력이다. 앞서 건축사사무소에 ‘우리 집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보냈다. “벗들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는 것을 행복을 얻는 방법 중에서도 으뜸가는 것으로 여긴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 행위도 하지 않고 그저 함께 앉아 있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저 말없이 함께 있음을 즐기기만 하면 된다.”(베르나르 베르베르 ‘함께 있기’)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 ‘월급쟁이의 집짓기’ 연재를 시작합니다. 3주에 한 번 집짓기의 보람과 고충, 노하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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