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살고 싶은 집에 산다는 건

무시무시한 빚으로 땅값 치렀지만

아이방 높은 천장으로 햇빛이 들어온다면
등록 2016-09-28 23:16 수정 2020-05-03 04:28
고 구본준 <한겨레> 건축전문기자가 우리 아이 이름과 함께 적어준 글귀가 따뜻하다.

고 구본준 <한겨레> 건축전문기자가 우리 아이 이름과 함께 적어준 글귀가 따뜻하다.

‘땅콩집’이 한때 인기였다. 땅 하나에 두 가족이 집 두 채를 동시에 지어, 단독주택 설계·건축 비용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이름에는 “(두 가구가) 땅콩처럼 다정하게 붙어서, 땅콩처럼 고소하게 살자”는 뜻이 담겼다. 고(故) 구본준(1969~2014) 건축전문기자가 건축가 친구 이현욱과 함께 ‘땅콩집’을 짓고, 그 과정을 (2011)란 책으로 엮었다. 지금 우리 집 짓기 예산 방식도 구본준 기자의 땅콩집에서 얼개를 가져왔다. 그와는 2013년 문화부 대중문화팀에서 함께 일했다. 당시 그가 우리 아이 이름을 적어 선물했던 첫 쪽에 이런 글귀가 쓰여 있다. “재인아, 집은 행복이란다. 2013. 6. 구본준 아저씨가.”

집이란 게 늘 이런 따뜻함이나 애틋함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집 짓는 과정 자체는 냉정한 현실에 가깝다. 먼저 ‘내 땅’이 돼야 건축허가가 떨어지는 법이다. 중도금 형태로 내던 땅값 잔액을 모두 내야 했다.

전체 땅값의 75%가 남아 있었다. 은행 대출계와 마주했다. 땅을 담보로 이전까지 꿈도 꿔보지 못했던 돈을 빌렸다. 은행 직원은 오렌지주스를 꺼내줬다. 그의 태도는 살가웠다. 그러나 그가 내놓은 서류들은 ‘채권양도 통지의뢰서’ ‘상환능력 확인서’ 같은 무시무시한 느낌의 것들이었다. 게다가 대출금은 내게 실체가 없었다. 돈은 구경도 못한 채 내 통장을 스치듯 지나가, 이전 땅 주인이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계좌로 넘어갔다. 그래도 돈의 효과는 확실했다.

잔금을 완납하자 LH는 ‘토지사용 허가서’를 내줬다. 건축사사무소를 통해 ‘토지사용 허가서’를 구청에 제출했다.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허가까지 영업일 기준 7일이 걸린다. 그사이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시공사에 넘길 입면도와 시설·전기 등 설계도를 준비할 것이다. 시공사와 시공·인테리어에 대해 복잡한 논의도 서둘러야 한다. 계획대로라면 10월 착공, 내년 2월에 완공해야 한다. 늘어나는 기간만큼 고스란히 추가 이자를 감당해야 한다.

돌아갈 다리는 이미 불살랐다. 뜻밖에 홀가분한 느낌으로 설계도를 되돌아본다. 우리 가족은 어떤 공간을 필요로 할까? 우선 모든 공간은 최소한의 직선만으로 단순하고, 명료하게 구획했다. 삶의 방식도 공간을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세부 공간 크기를 나눌 때는 일부러 ‘평’ 단위(정부는 제곱미터(m²)를 쓰도록 강제한다)를 활용했다. 가로 1.8m×세로 1.8m 크기의 ‘한 평’은 한 사람이 누웠다가, 좌우로 한 번쯤 뒤척이기에 최적화된 넓이다. 1.8m는 척관법에서 6척(한 간)에 해당한다. 다시 1척(약 30cm)은 사람의 걸음 폭(1피트)이자, 대략 손목부터 팔꿈치까지 길이다. 모두 신체에서 비롯돼 수천 년 동안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준 단위여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건축에서 쓰임새가 높은 것들이다.

1·2층 가족실과 2층의 안방·아이방을 모두 4평 반으로 계획했다. 4인(4평) 가족의 활동 반경에 약간의 수납공간을 더하면, 그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아이방은 수직 공간을 활용해 조금 더 여지를 뒀다. 2층 아이방 천장을 3층까지 연결해 천창으로 햇빛이 들어오게 하고, 높은 층고를 활용해 복층 침대를 두기로 했다. 1층에는 책을 읽거나, 아이 낮잠을 재울 미니 공간이 있다. 대개 한 사람이 쓸 곳이어서 1평으로 잡았다. 이런 방식으로 ‘설계에서 최소한의 실패를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공간 효율이 집의 전부는 아니다. 그 안에 사는 가족끼리의 따뜻함은 효율에서 오는 게 아니니까. 다시 구본준 기자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살고 싶은 집에 사는 것, 너무나 간단하고 소중한 것을 왜 그리 겁내고 미루고 포기해왔을까. 단독주택에 살고 싶다면 그리하는 게 맞다.” 곧 진짜 집짓기가 시작된다.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독자  퍼스트  언론,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