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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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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고 집 짓잖아

벽면 채울 책장, 하늘이 보이는 창문, 천장용 스피커…

공사비 더 들어도 괜찮은 아이템
등록 2016-12-22 17:53 수정 2020-05-03 04:28
뼈대를 만든다. 살을 댄다. 집이 자란다. 그렇게 2개월, 틀을 갖췄다. 집짓기 여정이 절반 남았다. 건축중심 제공

뼈대를 만든다. 살을 댄다. 집이 자란다. 그렇게 2개월, 틀을 갖췄다. 집짓기 여정이 절반 남았다. 건축중심 제공

우리 집 꼬마들이 좋아하는 동화책 가운데 하나가 다. 원래 영국 민담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원작은 조금 무섭다. 엄마돼지가 ‘행운’을 찾아보라며 아기돼지 3형제를 ‘세상’으로 떠나보낸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이나 동물이나 집은 필요하다. 큰형은 밀짚으로, 작은형은 가시덤불로 집을 지었다. 늑대가 나타났다. 입김이 어마어마하게 센 늑대는 밀짚과 가시덤불을 ‘훅~’ 불어 날리고, 두 형을 차례로 잡아먹었다. 부지런한 막내는 벽돌집을 지었다. 늑대는 입김으로 벽돌집이 날아가지 않자 꾀를 냈지만 번번이 막내한테 골탕을 먹는다. 분을 참지 못한 늑대는 앞뒤 안 가리고 굴뚝으로 쳐들어갔다가 뜨거운 솥에 빠져 막내의 요리 재료가 된다.

요즘 동화책은 아이들이 읽기 좋게 조금 부드러워졌다. 두 형이 죽지 않고 막내의 벽돌집으로 피해 늑대를 함께 물리친다는 것이다. 또 달라진 내용 가운데 하나는 둘째 돼지가 가시덤불 대신 나무집을 짓는다는 것이다.

우리도 나무집을 짓는다. 옛날 동화 이야기와 달리 목조주택은 늑대 입김으로 날아가지 않을 만큼 튼튼하고, 철근콘크리트(철콘) 집보다 따뜻한데다 공사 기간이 짧아 건축 비용에서도 장점이 있다고 봤다.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콘크리트를 덜 쓰는 데서 오는 친환경적 면도 고려했다. 또 철콘보다 난방 효율이 뛰어나면서 벽체는 평균 6cm가량 얇다. 우리 집의 경우, 1층 전체 벽체 길이가 65m. 2~3층을 더하면 150m가 된다. 벽체를 6cm만 줄여도 집 전체로 보면 3평(6cm×150=9m²) 가까운 공간을 더 얻는다.

목조주택을 간단히 말하면, 먼저 일정한 간격으로 구조목을 세워 집의 뼈대를 세우고 뼈대 위로 살을 덮듯이 OSB(Oriented Strand Board) 합판을 덧대어 벽체나 지붕 형태를 만든다. OSB 합판 바깥쪽에 벽돌 같은 외장재를 붙이고, 안쪽에는 단열·방음·방습제 등을 넣는다. 이후 수도·전기·보일러 배선 작업을 비롯해 인테리어 작업 같은 일반적인 공정을 따른다.

12월14일 집은 어느새 3층까지 뼈대가 완전히 올라왔다. 외벽도 꽤 그럴듯한 옷을 걸쳤다. 지붕과 옥상 테라스에 방수 작업을 마쳤다. 이렇게 되면 일단 비가 와도 끄떡없다. 창문 자리에 창틀과 유리를 끼웠다. 어지간한 눈보라가 쳐도 작업자들이 한파를 겪지 않고 작업하게 됐다.

이미 구조목들로 방, 거실, 화장실 등의 자리가 모두 구획됐다. 큰아이가 “이건 내 방이고, 여기서 (아직 없지만) 계단을 올라가면 내 2층 침대가 있는 거예요?”라고 물어볼 만한 것이 생겼다. 10월26일 땅파기를 시작한 지 50여 일 만이다. 공정은 절반 정도 마무리됐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짓는 집이 될 것이다. 큰돈을 쓸 수 없지만, 몇 가지 욕심낸 것도 곧 모습을 드러낸다. 2층에서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쪽 벽면 전체를 책장으로 만들었다. 그렇잖아도 작은 집이 더 작아 보일 것이다. 그래도 만들고 싶었다. 1층 천장에는 ‘천장용 스피커’를 심고, 천장 내부로 음향용 케이블을 연결하기로 했다. 빔프로젝터용 전동 스크린을 숨길 공간도 내기로 했다. 저렴한 스피커로 소규모 극장처럼 폼 잡을 수 있겠다. 계단을 오르다 위를 쳐다보면 하늘이 보이는 ‘천창’을 만들었다. 비용은 따라서 올라가는 법이다. 대출 늘어나는 소리에 자괴감이 든다. 내가 이러려고…. 아니야. 스스로 위로한다. 내가 이러려고, 집을 짓는 거잖아.

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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