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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을 변혁하라

기아·빈곤 문제 천착한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인간의 길을 가다>
등록 2016-05-11 14:09 수정 2020-05-03 04:28

참담은 이렇다. 맛집 리스트를 뒤적이다 책을 펼쳤다. 침침한 눈을 촘촘한 현실이 때렸다. 10살 이하 어린이 한 명이 지금도 5초마다 숨진다. 왜? 굶주림 또는 그로 인한 영양실조 때문에. 2001년에는 7초마다 한 명이었다. 그해 8억 명 넘는 사람들이 만성 영양실조로 불구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그 참담한 수는 요지부동. 나의 맛집 리스트는 말을 잃었다.

장 지글러(82)도 그랬다. 브라질의 한 호수, 그는 그럴듯한 사람들과 그럴싸한 식사를 하고 있었다. 10살 남짓한 사내아이가 다가왔다. 다리를 절뚝이며 녹슨 통조림통을 들고서. 사달라는 뜻. 아이 이름은 요아킴. 아버지는 결핵으로 실업자, 어머니도 병들었고 동생은 넷이나 된다. 지글러는 아이를 데리고 호숫가 바위로 갔다. 식당 주방장에게 밥·닭고기·열대과일·케이크·샐러드 따위를 부탁했다. 아이는 어쨌을까. 신문지에 음식을 담고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아이인들 왜 배고프지 않았을까. 참았던 것이다. 지글러는 썼다. “그때 나는 왜 여행을 중단하지 않았을까? 빈민가에 가볼 생각을 했는가? 요아킴과 그의 가족을 찾아는 보았는가?”

(갈라파고스 펴냄)는 참담을 말하는 책이다. 참담은 더 있다. 장폴 사르트르의 말. “양심의 가책은 살아 있는 적이다.” 이마누엘 칸트는 아예 궁지로 몰아붙인다. “다른 한 명에게 가해지는 비인간적 행위는 내 안에 있는 인간성을 파괴한다.” 참담의 원인은? 가진 자들의 게걸스런 탐욕. 대안은? 전세계 시민들의 각성과 연대. 책의 본디 제목이 ‘세계를 변혁하라!’인 이유다.

책의 취지는 간명하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해하고 그 상황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 이 책은 유토피아에 대한 책이 아니라 투쟁을 위한 책이다. 수천 개의 저항전선, 어두운 밤 이 신비한 인류애가 일어나는 봉기를 위한 안내서다.” 동시에 이 책은 지글러 자신의 지적 자서전이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지은이 앞에 호명된다. 볼테르, 장자크 루소, 카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죄르지 루카치, 조르주 뒤비, 안토니오 그람시, 베르톨트 브레히트, 피에르 부르디외…. 호명은 호혜로 가는 첫발이다.

지글러는 스위스 제네바대학과 프랑스 소르본대학에서 사회학 교수였다. 1981~99년 스위스 연방의회 사회민주당 의원도 역임했다. 2000~2008년 유엔 인권위원회의 첫 식량특별조사관이기도 했다. 독재자·금융자본 등의 ‘더러운 돈’을 비밀리에 숨겨주는 스위스 은행들의 부조리를 지적했다가 9개 줄소송을 당해 파산에 몰린 일은 그가 누구 편에 선 학자인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는 등 그의 대표작들이 나온 현실과 신념, 성찰을 일러준다. “굶주려 죽은 아이는 살해된 것”이라고 믿는 지글러. 그는 브레히트의 시구로 독자들을 호명한다. “굶주린 자여, 책을 손에 들어라. 책은 하나의 무기다/ 당신이 앞장을 서야만 한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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