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에도 국적이 있을까. (오구마 에이지 지음, 김범수 옮김, 동아시아 펴냄)이라고? ‘일본 양심’ ‘한국 양심’이 어찌 따로 있나 사람 하기 나름이지, 라고 구시렁대며 주인공 프로필을 훑었다.
저자의 아버지인 오구마 겐지는 1925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태어나 만 19살이 되자마자 징집됐다. 1945년 8월15일 일본의 항복 뒤에는 소련의 포로로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3년 동안 강제노동을 했다. 1997년에는 수용소에 함께 갇혀 있던 조선인 일본군 오웅근을 위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전쟁 피해 보상을 위해서다.
조선인 전우를 위해 72살에 법정에 선 일본 노인. ‘일본 양심’의 정체는 이것인가? 만약 겐지 할아버지의 액션이 ‘국적보다 진한 전우애’에서 비롯한 것이라면, 양심이라 부를 수 있을까? 아니 그런데 맥락이야 어떻든 겐지 할아버지 같은 분이 많아야 ‘정상’ 아닌가? 겐지 할아버지가 왜 ‘특별’해야 하지?
저자 서문을 읽었다. “아버지를 특별한 인간으로 생각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저는 그의 아들이기 때문에 그가 성인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에이지 교수는 그를 ‘좋은 사람’으로 전체화하지 말고, 그가 한 행동을 ‘가능성’으로 해석하자고 제안한다. “아버지가 한 행동은 가능성으로 보자면 어떤 일본인이라도 할 수 있는 행동입니다. 한 사람의 행동을 칭찬하기보다는 그런 가능성을 많은 사람에게 넓혀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가능성’을 탐구하기 위해, 책은 여느 전기와는 다른 서술 방식을 택한다. 겐지 할아버지의 출생부터 전쟁·포로 경험과 귀국 뒤 생활고, 말년의 사회활동에 이르기까지, 그의 회고에 기초하되 당시 경제와 사회 상황, 정책, 법률, 외교관계 등이 치밀하게 교차된다. “전쟁이나 식민지 지배, 빈곤과 불평등 같은 상황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지” 분석하기 위해서다.
책의 원제는 ‘살아서 돌아온 남자’다. 겐지 할아버지는 전쟁에서, 수용소에서 살아남았다. 한편으로 그는 어떤 폭력 아래서도 자신의 ‘인간성’을 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생존 조건으로, 일본 군대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것과 소련군 사령부의 중심과 가까운 수용소에 속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체제나 제도, 국제 정치의 영향력을 직시한다.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것도 아니다. 민주운동 같은 당시 수용소 내 포로운동에 비판적이다. 그는 집단의 이름으로 개인을 말살하는 폭력은 주체가 무엇이든 싫단다. 군국주의자들과 자민당한테 한 번도 표를 주지 않았다.
이 할아버지, 매력 넘친다. 국가의 책임을 물을 때도 당당하다. “법의 정신은 태어나면서 가지게 된 인간의 권리를 지키는 것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동정은 이제 충분히 받았습니다. 부디 사실 그 자체를, 또 사물의 본질을 정면으로 응시해서 논리에 맞는 판단을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오구마 겐지가 일본 법원에서 읽은 ‘의견진술서’ 중).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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