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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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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말랐을 때 가장 불행했다”

할리우드 배우 포샤 드 로시가 쓴 ‘나의 자아 정체성 찾기’ <너 어젯밤에 뭐 먹었어?>
등록 2014-11-27 15:31 수정 2020-05-03 04:27

미친 듯이 먹고 토하기를 반복했다. 껌 한 통을 씹은 것 때문에 12cm 통굽 구두를 신고 6층에 있는 집까지 전속력으로 오르내렸다. 구토약과 설사약을 달고 살았다. 오직 살을 빼기 위해서. 결국엔 뼈만 앙상하게 남았다. 키 171cm에 몸무게는 37kg.

‘가면’도 쓰고 살았다. 동성애자라는 성정체성을 감추기 위해 남자와 결혼했고 가짜 남자친구를 대동하고 레드카펫을 걷기도 했다. 12살에 모델로 데뷔한 할리우드 여배우 포샤 드 로시의 이야기다.

컨실러로 감추고 살아온 날들

미국의 코미디언이자 TV쇼 진행자 엘런 디제너러스와 동성 결혼을 한 포샤의 자전적 에세이 (포샤 드 로시 지음, 배미영 옮김, 이후 펴냄)는 폭식증과 거식증, 다이어트의 늪에 빠졌던 한 여성의 고통스러웠던 삶의 기록이다.

그는 모델 일을 시작한 12살 때부터 한 번도 몸무게가 자신의 자존감을 결정짓지 않았던 때가 없었다고 고백한다. 다른 모델만큼 예쁘지 않다는 열등감에 시달리고 빼빼 마른 몸을 만들려고 자신의 몸을 혹사했다. 모델계는 “전쟁터”였고 자신은 “공장 조립라인의 제품” 같았다고. 그곳의 광고계약서는 ‘도의적 책임’이라는 모호한 규정으로 동성애를 금지하고, 동성애자라는 게 세상에 드러나면 더 이상 주연배우로 자리를 잡아갈 수 없었다. 포샤는 잡티를 가리기 위해 컨실러를 두껍게 바르는 것처럼 자기 안의 모습을 가리고 또 가렸다.

그는 자신에게 찾아온 식이장애가 “수치심으로 둘둘 싸인 병”이라고 말한다. 수치심은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자신의 몸, 동성애자로서 자기 존재에 대해 느끼는 수치심은 사회가 강요한 것이었다. 그런 수치심은 아름다운 몸에 대한 강박으로 이어졌다. 그는 자신한테 부여된 금발의 섹시한 미녀라는 캐릭터를 입기 위해 입에 들어가는 모든 음식의 칼로리를 계산하고 미친 듯이 러닝머신 위를 뛰었다. 하지만 그 끝에 그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루푸스라는 불치병과 통증,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였다. 가장 말랐을 때 가장 큰 불행이 찾아온 것이다. “굶어서까지 사회가 강요하는 아름다움의 이상형에 내 몸을 맞추려고 했다. 그렇게 난 성공과 독립심과 내 삶의 질을 희생시켜버렸다.”

자기 몸을 학대하는 멀고도 위험한 우회로를 지나야 했던 그는 벼랑 끝에 내몰려서야 자신을 찾아간다. 낮은 자존감과 자기부정 속에서 살던 그는 생긴 그대로의 자기 몸을 인정하고 성정체성을 밝힌다. “이제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한다. 진정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자기 존재 전체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남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비교하라

그는 지난날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담담한 어조로 이야기한다. 치부 같은 과거를 드러내는 것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는 민낯을 그대로 보여준다. 자신을 위해 또 다른 포샤를 위해. 자신과 같은 길을 걷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다양한 콤플렉스를 갖게 만드는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조언이기도 하다. 그의 친구가 했던 충고도 우리에게 건넨다. “진정한 고귀함이란 남보다 더 나아진다는 뜻이 아니다. 진정한 고귀함은 예전의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된다는 뜻이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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