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한승헌은 박정희부터 노태우까지 군사독재 정권의 권력자들에겐 눈엣가시 같은, 그 반대편에서 그들을 비판하고 싸우며 세상을 바꾸려다 모진 고초를 겪은 이들에겐 별 같은 존재였다.
그의 삶을 흠모한 이들이 펴낸 ‘한승헌 변호사 법조 55년 기념선집’ 가운데 하나인 (문학동네 펴냄)는, 서슬 퍼렀던 시절 민주주의와 인권, 특히 표현의 자유를 위한 싸움을 다룬 여러 편의 법정 드라마다. 문인이기도 한 한 변호사 자신이, 사형제도를 비판하는 수필이 빌미가 되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몇 년간 변호사 자격을 뺏긴 필화 사건의 주인공이기도 하니 이보다 더 극적일 수는 없다.
“소설을 읽고 발기한 자, 돌을 던져라”책은, 1965년 검사를 그만둔 뒤 처음 변호를 맡은 ‘남정현 단편소설 ‘분지’ 사건을 시작으로 1993년 김영삼 ‘문민정부’의 황석영 방북 사건까지 대표적인 필화 17건을 담고 있다. 그 자체로 민주화운동사다.
문학작품에 처음으로 용공 딱지를 붙여 기소한 ‘분지’ 사건의 한 대목을 보자. 검사가 증인으로 출석한 이어령 교수에게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놀랐는데 증인은 용공적이라고 보지 않았는가”라고 묻자, 이 교수는 “병풍 속의 호랑이를 진짜 호랑이로 아는 사람은 놀라겠지만 그것을 그림으로 아는 사람은 놀라지 않는다”고 답한다. 예술을 통해 현실을 비판해도 곧 반정부에 반국가가 되고 결과적으로 이적 행위를 한 것이라는 비약이 횡행하던 시절 얘기지만, 오늘날 ‘종북몰이’에 여념이 없는 국가정보원과 검찰을 향하더라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부패권력 다섯 집단을 신랄하게 비판한 의 김지하의 일갈도 볼 만하다. “내 시를 자꾸 용공이라고 하는데 참다운 반공은 내적인 부정부패를 뿌리 뽑음으로써 국민을 단결시키는 데 있고, 따라서 부정부패 그 자체가 이적이 될지는 몰라도 그것을 비판하는 소리가 이적이 될 수는 없다.”
‘어둠의 시대’를 관통하는 법정 드라마라고 해서 심각한 장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85년 사건 재판에서 ‘반국가단체’ 공방이 벌어지자 피고인은 “텔레비전 뉴스에 전두환 대통령이 나와서 검사님께서 반국가단체라고 하는 곳의 우두머리를 가리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일성 주석 각하’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반국가단체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만일 반국가단체라면 대통령부터 국가보안법 딱지를 붙여야 될 것 아니겠어요?”라고 되묻는다.
권력은 말과 글을 막으려고 국가안보 논리를 주로 동원했지만, 때론 외설의 칼을 휘두르기도 했다. 마광수 교수의 의 재판정에선 한 변호사의 짓궂음이 도드라진다. “음란물이 되자면 우선 사람의 성욕을 자극·흥분시키는 것이 첫째 요건인데, 단상의 재판관 중에 이 소설을 읽고 성적으로 흥분하실 분은 한 분도 안 계시리라고 확신합니다. 고로 무죄판결을 내려주실 줄 믿습니다.” 법정 밖 말로 축약하면 “이 소설을 읽고 발기한 자, 돌을 던져라” 정도일 텐데 유죄판결 이후 “판사들이 너무 젊었나보다”는 ‘농평’도 재미지다.
원로의 예지에 서늘하다사실 한 변호사가 하고 싶은 말은 머리말의 한 대목에 다 녹아 있는지도 모른다. “이 책을 통해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없는 온갖 압제, 그중에서도 표현의 자유를 짓밟는 필화에 대하여 실증적인 ‘복습’을 함으로써 앞으로 재연될지도 모르는 역사의 역주행에 대비한 ‘예습’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면 참으로 망외의 보람이 되고 부가가치가 되겠다.” 원로의 예지에 서늘해진다.
김보협 편집2팀 기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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