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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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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벗고 예능, 예능을 벗고 음악

가수와 예능인 두 개의 활로를 개척해온 윤종신… <월간 윤종신> 성실한 창작으로 ‘직업인’ 가수의 돌파구 만들어
등록 2012-12-07 16:02 수정 2020-05-02 19:27

남도의 외딴섬 가사도에 ‘진취적 구강’이 떴다. SBS 이후 야외 예능 버라이어티 에서 보기 힘들었던 윤종신이 유희열·윤상과 함께 ‘음악 의 신 3인방’으로 KBS 섬마을 음 악회를 위해 산 넘고 배 타고 섬마을에 당도했다. 동료 출 연자 김종민의 소개말을 들어보자. “윤종신 선배님으로 마시막 시며는(성시경의 통역, 윤종신 선배님으로 말씀드 릴 것 같으면) 정말 중학교 때 이 노래 없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 ‘교복을 벗고’! (일동 폭소 및 제목 수정, ) 요거 센세이션이었습니다. 로 굉장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예능으로….” 이 정도의 프로필이 대중에게 각인된 방송인 윤종신 아닐까. 1990 년대 애절한 감성을 자극하는 가수에서 2000년대 초등 학생들에게는 ‘개그맨’으로 기억되는 음악인이자 예능인.

다달이 다양한 음악인들과 작업하는 . 왼쪽부터 윤상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담긴 10월호, 김현철과 같이한 가 담긴 11월호. 미스틱89 제공

다달이 다양한 음악인들과 작업하는 . 왼쪽부터 윤상이 프로듀서로 참여한 이 담긴 10월호, 김현철과 같이한 가 담긴 11월호. 미스틱89 제공

 

깐죽거리며 예능할 땐 “왜 저러나 저 사람”

‘1박2일’에서 윤종신은 등장부터 남달랐다. 음악은 유 희열에게 맡겨버리고 자신은 “확실한 웃음”을 주겠다고 선언했다. 적극적인 리액션과 몸동작을 활용한 멘트는 그간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몸에 익혀온 산 물이다. 자신의 체형을 희화화한 ‘알 밴 시샤모’나 윤상 의 일상적 허세를 폭로하는 애드리브는 20년 지기 음악 동료들과 평소 농담처럼 주고받던 이야기를 방송용으로 적절히 녹여낸 것이다. 예능인으로서의 학습과 일상적 감각이 시너지를 발휘한 이날의 재기발랄함은 겨울바다 입수 내기에서 정점을 찍었다. 이런 내기에서 져본 적이 없다며 호언장담하더니 결국은 입수행. 어린아이 열탕 들어가듯 소심한 입수는 모두를 배꼽 잡게 했다. 그 장 면은 방송이 끝난 뒤 인터넷에서 ‘명품 입수’라느니 ‘1박2 일 입수 역사를 새로 썼다’느니 여러 차례 회자됐다.

19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은 ‘풉’ 하고 터지는 웃음으로 윤종신을 기억한다. 밤 10시~새벽 2시 심야 라디오 게스트로 자주 출연했던 그는 TV에서 들을 수 없는 말재간으로 청취자를 쥐락펴락했다. DJ는 윤종신 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날에는 “지금 독서실인데 웃음 참기 너무 힘들어요” 같은 문자메시지 사연을 읊었다.

윤종신은 라디오에서 실험한, 자신의 노래와 상반되는 호들갑스러운 농담을 2000년대 들어 TV로 옮겨왔다. 2003년 MBC 시트콤 에서 낯선 영역에 도전 하며 윤종신은 ‘예능하는 음악인’이라는 새 지평을 열었 다. 그러나 말이 거창해 도전이지 그의 예능 출연은 시작 부터 입방아에 올랐다. TV평론가 이승한씨는 “처음 예 능 시작했을 때 깐죽거리며 자신을 파는 캐릭터를 만드 는데 ‘왜 저러나 저 사람’ 했다. 초반에는 이런저런 무리 수도 던지는 편이었다. 같은 발라 드로 기억하는 팬들에게는 상처가 됐다”고 말했다. 하지 만 싸늘한 반응 사이에서도 윤종신은 자신의 궤도를 꾸 준히 그려나가며 오히려 가수와 예능인 두 개의 활로를 개척하는 선례를 만들었다. 윤종신은 예능인으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2010년 한 패션지와의 인터뷰에서 이렇 게 말했다. “대중의 반응은 결국 과정일 뿐이다. 예능을 막 시작할 때 ‘변절했다’ ‘잡스럽다’ 같은 말을 들었지만, 대중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고 본다. 내가 그렇게 보 였으니까. 내 타이밍이 아니었으니까. 대중에게 나를 설 득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음악인으로서의 잠재력이 오히려 예능 프로그램에서 플러스가 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이승한씨는 윤종신이 새 영역에서 자리잡을 수 있었던 이유를 이렇게 분석했다. “예능으로 넘어온 음악인들이 자신의 음악적 커리어를 이 야기하지 않는 편인데, 윤종신은 계속 자신의 히트곡을 거론하고 하향곡선을 그릴 때도 ‘안 팔리는 작곡가’ ‘한물 간 작곡가’ 운운하며 음악과의 연결점을 놓지 않았다.” 실 제로 음악과 결부하는 예능에서 윤종신은 전천후 재능을 드러냈다. 고정 패널이던 ‘패밀리가 떴다’에서보다 음악 동료들과 게스트로 등장한 ‘1박2일’에서 그의 개그 코드는 더 응축돼 있었고, SBS 에서보다 Mnet 에서 재기가 더 빛났다. TV평론가 김선영씨는 한 칼 럼에서 “(에서) 윤종신이 작두를 타는 날에 는 ‘라디오 스타’ 네 명 MC의 역할을 혼자서 소화”해냈다 고 썼다.

 

2년9개월 장수한 독립잡지

20년간 몸담아온 음악은 윤종신을 가장 돋보이게 하 는 배경이다. 예능 프로그램에 부지런히 출연하면서도 그는 직업 음악인으로서의 끈을 놓지 않는다. 윤종신은 트위터 프로필 맨 첫 줄에 ‘월간 ‘YOONJONGSHIN’ 발 행자 및 편집장’이라고 썼다. 2010년 3월 윤종신은 싱글 앨범 를 발표하고 “다달이 싱글이든 앨범이 든 어떤 형태로든 음악적 산물을 내놓겠다”고 포부를 밝 혔다. 그해 5월부터는 ‘Monthly Project’의 정식 명칭을 으로 바꿨다. 2010년과 2011년에는 을 모아 이란 두 장의 앨범을 발표 했다. 매달 당시의 감정에 충실한 곡과 가사를 써 잡지를 만들듯 앨범을 꾸리고, 그것을 엮어 1년치의 음악을 결 산해온 셈이다. 2년9개월, 1인 발행·편집·기획하는 또한 일종의 독립잡지라고 본다면 꽤나 장수 하고 있는 편이다. 음악평론가 김학선씨는 “음악시장에 서 40대 가수로서 자기만의 돌파구를 찾고 성실하게 임 하는 태도”를 높이 평가했다. “흔히들 그즈음이 되면 창 작력이 떨어진다고 하는데, 그는 설령 창작력이 떨어지더 라도 그 자리에서 계속하려는 사람이다. 1990년대에는 보컬리스트, 정석원이 만드는 노래를 부르는 가수였지만 그동안 함께 작업했던 사람들의 좋은 점을 흡수하며 자 기 세계를 구축하고 롱런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은 댄스뮤직, 후크송에 지배된 음악시 장을 돌파하려는 거창한 시도라기보다는 직업인으로서 꾸준히 음악 활동을 하겠다는 성실한 다짐에 더 가깝다. 그러니 을 알리려는 대대적인 홍보나 돈 많이 들인 이벤트 또한 없다. “3주 고민하고 일주일 정도 음악에 투자한다”는 작업 패턴에 따르면 홍보할 겨를이 없다. 월간지 기자처럼 다음달 소재를 찾고, 함께 작업할 음악가들을 섭외해야 한다. 대신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일상을 얘기하듯 작업 과정을 말하고, 음원이 나오면 나 왔다고 밝히고, 후기를 쓰듯 보도자료를 써서 뿌린다.
지난 2년여의 음악 활동은 하나로 귀결되지 않는다. 이런저런 음악적 시도를 하고 여러 가수들과 콜라보레 이션한 것을 모아 발매한 을 듣다 보면 김 학선씨의 평가처럼 “기획은 좋지만 한 장의 앨범으로서 는 응집력이 없는, 옴니버스 앨범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런저런 시행착오 끝에 세 번째 은 장기 계획을 세운 듯 상반기 ‘여가수 특집’, 하 반기 ‘프로듀서 특집’으로 채웠다. 장재인·호란·김완 선·조원선·박정현·정인·015B·하림·이규호·윤상·김 현철에 이어 12월에는 5년 만에 음반 작업에 나섰다는 유희열과 함께했다. 11월29일 윤종신은 자신의 트위터 (@MelodyMonthly)에 “ 12월호 ‘Merry Christmas Only You’ with 유희열… 커버 촬영 중… 올해는 메리 변태 크리스마스 ㅋㅋ”라고 멘션을 남겼다.

1990년대 라디오에서 실험한 발라드 가수의 호들갑스러운 개그는 2000년대 TV에서 대세로 통했다. (위부터) KBS  섬마을 음악 회에서 겨울 바다에 입수한 장면은 방송이 끝나고 시청자 사이에 한참 회자됐다. Mnet 에서 윤종신은 음악인이자 예능인으로서의 기지를 가장 빛냈다. KBS 제공, Mnet 제공

1990년대 라디오에서 실험한 발라드 가수의 호들갑스러운 개그는 2000년대 TV에서 대세로 통했다. (위부터) KBS 섬마을 음악 회에서 겨울 바다에 입수한 장면은 방송이 끝나고 시청자 사이에 한참 회자됐다. Mnet 에서 윤종신은 음악인이자 예능인으로서의 기지를 가장 빛냈다. KBS 제공, Mnet 제공

 
울타리 안팎 여러 채의 작은 집
1990년 015B 객원 멤버로 데뷔한 윤종신은 23년차 가수다. 2003년 가 예능 데뷔 무대였다면 예 능인으로서의 경력은 이제 꽉 채워 10년이다. 1990년대 에 함께 활동한 친구들, 예능 프로그램에서 만난 동료 패널들이 각자의 울타리 안에서 자신의 성을 쌓아가고 있다면 윤종신은 울타리 안팎에 여러 채의 작은 집을 세 우며 자신의 마을을 꾸준히 다지고 넓히는 중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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