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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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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들을 위한 러브레터

등록 2012-09-04 17:24 수정 2020-05-03 04:26
우치다 다쓰루는 교육 개혁의 주체가 교사라고 강조한다. 충북 제천의 중등과정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의 1학년생들이 국어 시간에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우치다 다쓰루는 교육 개혁의 주체가 교사라고 강조한다. 충북 제천의 중등과정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의 1학년생들이 국어 시간에 운동장에서 선생님과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교육을 개혁한다는 것은 학교에 대한 신뢰, 교사들의 지적·정서적 자질에 대한 신뢰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학교를 신뢰하기에 부족한 점, 교사들의 문제점을 음미하는 것입니다.”

일본의 대중적 인문학자 우치다 다쓰루의 (민들레 펴냄)는, 무너진 교실에서 앙상한 교권을 부여잡고 오늘도 분투하는 선생님들에 대한 응원으로 시작한다.

교육의 상품화는 교육의 자살

후진적인 교육제도와 더불어 ‘아무나’ 가르치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교사의 질도, 한국 교육의 문제점 가운데 하나로 믿어온 내게, 저자는 말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교육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교실에서 아이들을 앞에 두고 있는 교사들 말고는 없습니다. ‘선생은 더 이상 안 돼, 그들이 교육을 개혁한다고?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어!’ 하고 말하는 사람이 만약 진심으로 교육을 개혁하고 싶다면, ‘무능한 교사들’을 밀어제치고 ‘비켜! 내가 대신 가르칠 테니까. 내가 하는 걸 보라고!’ 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모든 문제를 그대로 두자는 얘기인가?

“물론 저는 현행 교육제도가 다양한 결함을 갖고 있고, 우리 앞에 능력이 떨어지는 교사, 의욕이 없는 교사, 도덕적 감수성이 낮은 교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기존에 확보하고 있는 인적 자원, 질 낮은 교사들을 포함해, 이들과 함께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교육개혁도 일단 지금의 교육 시스템을 유지하며 실행해야 하는 까닭에, 교육 붕괴를 최전선에서 막고 있는 교사들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워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교사들에게 박수만 보내면 교육개혁은 저절로 이루어지는 걸까? 저자는 우리 교육을 둘러싼 시장화·상품화의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본다. 개인보다 구조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1990년대 교육에 시장 원리가 본격 도입되며 대학 설립 기준이 대폭 완화된 일본에선 쇼핑하듯 교육을 사고파는 사이버대학과 돈만 주면 학위를 찍어내는 학위 공장 ‘디플로마 밀’(Diploma Mill) 같은 ‘짝퉁 대학들’이 난립했다. 시장이 선택한 것이 ‘좋은 대학’이고 선택받지 못하면 ‘나쁜 대학’이라는 시장도태설은, ‘대학답지는 않지만 일부 소비자의 욕구를 채워주는 대학이 비즈니스적으로 성공’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런 ‘교육의 상품화는 교육의 자살’이라고 경고한다.

일본과 비슷한 시기에 대학 설립의 급증과 교육의 시장화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우치다의 지적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특히 기업이 요구하는 인재를 만든다며 교양교육을 배제하고 전공교육 위주로 대학 커리큘럼을 운영했더니 되레 업무능력이 떨어지는 ‘고학력 바보’를 양산했다는 대목이나,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한 학생이 자신이 이미 배운 단원의 수업 시간을 방해해 경쟁 상대의 학력을 끌어내리려 한다는 지적에서 일본과 한국 사회의 ‘싱크로율’은 예상을 뛰어넘는다. 일본식 교육제도에 미국식 대학 입시를 운영하는 한국 교육의 숙명인가.

<교사를 춤추게 하라> 표지.

<교사를 춤추게 하라> 표지.

학교, 글로벌 자본주의 방파제 돼야

도쿄대 불문학과를 나와 고베여자학원대학 문학부 종합문화학과 교수를 지낸 우치다 다쓰루는 등을 펴낸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이다. 합기도 7단으로 (武道的 思考)라는 무예와 철학을 접목한 책을 쓰기도 했던 그는, 정년 퇴직 뒤 자신의 집 1층에 ‘남쪽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을 뜻하는 ‘개풍관’(凱風館)이라는 합기도장을 열어 아이들에게 무예와 인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문무겸전(文武兼全)한 모습에서 도올 김용옥이 오버랩되는 그에게 대안적인 학교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학교는 아이들을 바깥 세계로부터 격리해서 보호하는 것을 그 본질적인 책무로 삼아야 합니다. 학교와 바깥 세계 사이의 ‘벽’, 즉 아이들을 바깥으로부터 지키는 벽이 없어서는 안 됩니다. 학교는 본질적으로 ‘온실’이 되어야 합니다.” 온실이라는 단어가 걸릴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다만, 더불어 사는 기술을 익히기도 전에 아이들을 ‘원자화·모래화·개별화하려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압력에 맞서, 학교가 방파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을 따름이다.

‘이지메’(왕따) 현상, 면접 합격 비법 같은 현실적인 부분에서 고전과 영성교육 방향 등 교육이론까지 색다른 교육 이야기를 영화와 문학의 예를 들며 간명하게 설명하는 이 책은, 곳곳에 포진한 통찰력 있는 문장으로도 값지다. 가령 “성숙은 갈등을 통하여 성취된다, (자크 라캉의 말을 인용한) 누군가가 가르치는 자의 입장에 서는 한, 그 사람이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는 없다, ‘좋은 교사’가 ‘옳은 교육법’으로 교육하면 아이들은 점점 성숙해진다는 생각은 인간을 너무 얕게 이해한 것이라 생각한다, 교사와 아이 외에 모든 것이 없어도 교육이 가능하다”와 같은 말들을 밑줄 없이 넘기기 어렵다.

교사 일을 그다지 즐겁지 않다고 여긴 아버지에게 훗날 제자들이 사은회를 열어준 일을 회고하며 ‘선생은 자기 일을 싫어하면서 가르쳤는데 학생은 고마움을 느낀다’는 역설에 놀랐다는 그는, “어쩔 수 없이 교사가 된 사람도 훌륭한 교사가 될 수 있다”고 토닥인다. “교단에 서 있는 선생님들이 용기와 힘을 갖고 창의적인 생각을 할 의욕이 솟아나고, 생각한 대로 잘되지 않아도 낙담하지 않을, 그런 힘을 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는 저자의 마음자리가 애틋하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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