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는 미술의 자식이다. 그림의 기능과 목적이 다양해지며 만화는 미술에서 분리돼 나왔다. 만화를 미술에서 독립시킨 것은 바로 ‘풍자’의 역할이었다. 부당한 권력, 웃기는 세상을 좀더 통렬하게 비웃어댈 수 있는 대중적 그림이 필요해지자 만화라는 새로운 예술은 미술에서 따로 독립하게 됐다.
이렇게 탄생한 만화가 대중에게 더욱 강력하게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미술의 제작 기법 중 한 가지의 덕분이었다. 만화는 풍자와 비판이 생명이었으므로 한 사람만 사서 즐길 수 있는 기존 그림들과 달리 수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대량 복제의 기술이 필요했다. 그래서 ‘한꺼번에 여러 장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그림 기법인 ‘판화’가 만화의 파트너가 됐다. 판화 중에서도 가장 손쉬운 방식인 ‘목판화’가 만화의 모태가 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목판화는 모든 판화 가운데 가장 단순하고 근본적이다. 나무라는 재료 자체가 돌이나 쇠보다 가공이 쉽기 때문이다. 물론 목판화는 동판화나 실크스크린처럼 정교한 묘사나 다양한 기법을 활용하는 효과는 내기 어렵다. 대신 검정과 하양의 극단적이고 단순한 대비로 그림을 찍어내기 때문에 단순하고 강력한 이미지를 강조하는 만화의 특성과 태생적으로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만화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나 대중적 미디어인 신문이나 잡지 같은 인쇄매체에서 판화, 특히 목판화로 제작되면서 시작됐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문 연재만화였던 의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화도 목판화로 인쇄돼 대중과 만났다.
그러나 만화가 목판화의 기법만을 차용한 것은 아니었다. 만화가 목판화에서 이식받은 더욱 중요한 문화적 가치는 ‘저항과 비판의 정신’이었다.
미술에서 목판화는 늘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중요한 무기로 애용돼왔다. 가장 선동적이자 가장 진보적인 장르가 곧 목판화였던 것이다. 목판화 특유의 흑백 대비가 현실을 가장 극적으로 강조하면서도 단순하게 그리기에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작가가 선구적 여성 미술가이자 민중미술가로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긴 케테 콜비츠(1867~1945)다. 콜비츠의 저항적이고 비판적인 목판화는 현대 중국의 사상적 아버지 루쉰에게 특히 큰 영향을 끼쳤다. 인민들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중국을 만드는 가장 중요한 투쟁 방법이자 매체가 목판화라고 여겼던 루쉰은 목판화를 널리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우리나라에서 과거 군사독재 시절 오윤을 비롯한 여러 민중미술 화가들이 목판화 그림을 그렸던 것도 이런 목판화의 문화적 전통과 이어진다.
만화를 탄생시킨 이후에도 목판화는 주기적으로 현대 만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쳐왔다. 1960년대 미국 언더그라운드 만화계를 이끌며 현대 사회를 가차 없이 조롱했던 로버트 크럼을 비롯해 사회적 메시지를 던진 문제적 만화가들은 거의 예외 없이 거친 선맛을 살리며 흑백 대비로 이미지를 강화하는 목판화풍 그림을 즐겨 그렸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한국 사회의 부조리함을 지적하는 박건웅 등의 국내 만화가들이 흑백 대비가 선명하고 선이 굵은 만화를 그리는 것에도 이런 흐름이 흐르고 있다.
이제 만화가 펜과 인쇄기가 아니라 터치펜과 컴퓨터로 그려지는 시대가 되었지만, 만화에는 여전히 목판화의 피가 흐르고 있고 앞으로도 흐를 것이다. 만화란 늘 부조리한 세상을 비웃기 마련이니까.
구본준 기자 한겨레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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