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끝없이 이어지는 어둠의 터널 같은 ‘소설 탈고’를 가까스로 마쳤다. “마감 즉시 집 밖에 뛰쳐나가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춤출 거야. 말리지도, 그런 날 창피해하지도 마!”라고 지인들에게 엄포를 늘어놓았지만, 막상 닥쳐보니 하늘을 날려버릴 것만 같던 그 기세는 땅콩처럼 쪼그라들었다. ‘그래그래, 그건 민폐지. 모양도 빠지고, 암. 나는 철이 든 거야’ 하고 위로해보아도 점점 남의 시선을 의식하고, 얌전이나 빼는 서글픈 어른이 돼가는 것만 같아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졌다.
터닝포인트가 필요했다, 간절히. 뭘 해야 하나, 어디로 가지? 고민하던 중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난 내 심경을 토로했다. “맛난 것도 먹고 싶고, 소리도 지르고 싶고, 춤도 추고 싶어. 그런데… 갈 곳이 막상 떠오르지 않아.” 친구는 피식 웃더니 오늘 저녁 당장 그런 곳에 데려가주겠다고 선심 쓰듯 말했다. 그날 밤, 우리가 향한 곳은 서울 이태원의 해밀턴호텔 옆에 자리잡은 ‘112-6 라운지’였다. 새로이 떠오르는 ‘핫 플레이스’란다(주말마다 살사 파티, 아구아 파티, 모히토칵테일 파티 등 콘셉트 있는 파티가 열려 다양한 파티 문화를 접할 수 있다. 외국인이 많은 이태원의 특성상 자연스럽게 스탠딩 문화, 클럽 문화로 이뤄진다. 금·토·일요일 낮엔 브런치 식당으로 변한다). 일단 선선한 밤공기를 즐기며 뻥 뚫린 테라스에 앉아 맛깔나는 음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112-6 라운지는 단지 인테리어가 독특한 레스토랑이자 바일 뿐이었다.
난 약간 지루해졌다. “뭐야, 심심해” 하고 투덜거리는 찰나, 갑자기 조명이 어두워지며 사이키 조명이 라운지 안을 번쩍번쩍 정신없이 비추기 시작했다. 마치 클럽처럼. 그때까지만 해도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던 라운지 한구석에 위치한 DJ 부스에서 ‘짠’ 하고 누군가 등장했다. 현란한 옷차림의 DJ였다. 쿵쾅쿵쾅, 밴드 하우스룰즈의 음악이 라운지 안을 장악했다. 어깨가 들썩거려도 타인의 눈치를 보며 흥을 꾸욱 참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금발 미녀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맥주병을 머리 위로 들고 풀쩍풀쩍 뛰었다. “오예~” 소리를 지르며 같이 온 남자의 팔을 잡아끌었다. 그녀를 시작으로 하나둘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스테이지로 몰려들었다. 외국인들의 솔선수범으로 라운지는 순식간에 잘나가는 클럽처럼 바뀌었다. 조명과 소리뿐이 아닌, 진짜 클럽으로 말이다. 음악 소리가 커질수록,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내 심장은 가열차게 뛰었다. 난 결국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원했던 대로 미친 듯이 소리 지르고 신나게 뛰어다녔다. 깜짝 공연이 시작됐고, 이태원구의 특성상 한국어·영어·프랑스어 등이 난무했다. 황인, 흑인, 백인 모두 하나가 되었다. 마치 지구촌 축제에 온 듯이 묘한 기분이었다. 늦은 시각까지 이어진 지구촌 축제는 즐거움 그 자체였다.
아주 가끔은 112-6 라운지 같은 곳에 들러 맛난 음식을 먹고, 시끄러운 음악과 밤의 열기를 느끼고, 타국의 사람들을 만나고, 정신줄을 놓은 채 열정적으로 놀아보는 것을 조심히 권해본다. 그러다 보면 일과 사람에 치여 하루를 서글피 살아가는 어른보다는, 그 속에서 새로운 즐거움을 찾아가는 유쾌한 어른이 되지 않을까. 어릴 적 보물찾기에 열광했다면, 이제는 즐거움 찾기 놀이에 열광해보면 어떨까? 즐거움은 곧 보물이니까!
정수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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