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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그마한 기적에 취하다

홍대 앞 일품 막걸리집 ‘월향’
등록 2011-11-18 15:34 수정 2020-05-03 04:26
정수현 제공

정수현 제공

홍익대의 밤거리는 정말 사람들로 가득하다. 특히나 약속 장소로 많이 잡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은 그야말로 인산인해! 사람들에게 뒤엉켜 이리 쓸리고 저리 쓸리다 겨우 탈출에 성공한다 해도 빽빽한 사람들 틈에서 약속한 지인을 찾는 건 어렵다. 그러니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 헤어졌던 이산가족을 만난 듯 눈물 나게 반가울 수밖에!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홍대 밤거리의 첫 번째 매력이다.

홍대의 밤거리는 자유로운 음악으로 가득하다. 요조, 타루, 한희정을 위시한 이른바 ‘홍대 여신’들, 그리고 기타와 젬베를 치며 흥겹게 연주하는 사람들. 그들 앞에 가만히 서 대중의 때가 묻지 않은, 노랫소리나 연주를 청량한 밤공기를 안주 삼아 듣노라면 왠지 보헤미안이 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노래하고 연주하는 그대들이 있기에, 홍대 밤거리의 매력은 또 하나 추가된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홍대 최고의 매력은 묘한 경계선이 느껴지는 ‘독특한 분위기’이다. 홍대 하면 제일 먼저 젊음과 자유가 떠오를 만큼, 홍대 앞은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씩씩한 거리다. 하지만 그런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면 씁쓸한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불현듯 엿보이곤 한다.

자유롭게 연주하지만 가난한 현실이 애잔한 뮤지션들, 화려하고 성숙하게 꾸몄지만 그 얼굴을 지워내면 아직 겁 많고 어려 보이는 말간 얼굴들. 어른이 되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아직 어른이기를 두려워하는 ‘어린 어른’들이 공존하는 공간. 자신을 드러내는 것만큼 숨어들고 싶어 하는 공간. 자유로운 공간이지만 쉽게 모였다가 쉽게 흩어지는 공간. 자유롭고 싶지만 때로는 어딘가에 소속되고 싶은 곳이기도 한 공간. 그렇게 흔들거리며 자기 중심을 찾아가는 이들의 공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무조건 포용하지도, 밀어내지도 않는 묘한 경계를 짓고 있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홍대 거리의 최고 매력이다.

이런 묘한 공간 속에 있자면 은근한 서글픔이 몰려오며 술을 즐기지 않는 나조차 알코올이 당긴다. 그럴 때 요즘 내가 찾는 곳은 ‘월향’이란 막걸릿집이다. 홍대 앞 산울림소극장에서 커피프린스 골목으로 내려오면 보이는 카페 ‘티 테라스’ 2층에 위치한 월향(02-332-9202)은 탄산이 없고 연한 과일 향에 부드러운 맛이 그득한 막걸리도 일품이지만, 이곳이 생기게 된 히스토리 또한 맛깔난다.

모든 것은 10년 전 막걸리에 미친 한 사나이에서부터 시작됐다. 막걸리에 빠진 그는 사업을 내팽개치고 막걸리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옛 문헌을 뒤지고, 새로운 발효기술을 연구하고. 그렇게 탄생한 게 달의 향기 ‘월향’이라는 유기농 현미 막걸리다.

하지만 그 월향을 알릴 길이 없었다. 업체들은 영세 사업자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그는 직접 냉장차를 몰고 자신이 만든 막걸리를 전국 각지에 배달했다. 그렇게 고생하며 자신의 꿈과 의지를 알리려는 그의 힘겨운 노력에 감동한 학교 선후배와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쳤다. 결국 작은 기적이 이뤄졌다. 홍대에 월향 막걸릿집이 탄생한 것이다.

이곳을 운영하는 주인장은 (에디션더블유)란 책으로 화제를 모은 이여영(29)씨다. 그녀의 책 제목처럼 정말 규칙도 두려움도 없는 것 같은 홍대 밤거리, 하지만 그 이면에 두려움과 규칙에 사로잡혀 있는 모습이 감춰진 홍대 밤거리. 가끔 월향 한잔 기울이며 ‘나도 자그마한 기적을 일으켜봐야지’라고 다짐해보는 건 어떨까 싶다.

정수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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