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좋아하는가? 내가 말하는 차는 도로보다는 영화 스크린에서 더 자주 보이는 차들이다. 이름만으로도 사람을 위축시키는 동시에 설레게 만드는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애스턴마틴, 포르쉐 등등의 꿈의 카. 이런 차들을 한꺼번에 관람하려면 모터쇼에 가야만 했다. 아니, 모터쇼에 가더라도 잘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모든 슈퍼카들을 국내 모터쇼보다도 더 빨리 볼 수 있는 커피숍을 발견했다.
얼마 전 친구 한 명이 페라리를 구입했다. 난 얼떨결에 성격 고약한 이탈리아인들이 만든다는(?) 다혈질의 하얀색 페라리 F430의 가죽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게 됐다. 도로의 작은 돌덩이의 충격도 예민하게 느껴지는 딱딱한 시트와 팔뚝에 흉측한 힘줄이 드러나게 하는 묵직한 문, 비행기 이륙 때와 같은 가속도와 시끄러운 배기음. 차를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나에게 페라리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친구는 뜨뜻미지근한 내 반응이 영 맘에 들지 않았는지 그 뒤로 입만 열면 페라리 이야기(역사부터 시작해서)를 꺼냈고, 얼마 뒤엔 난 이 친구가 나에게 페라리를 팔려는 영업사원인 줄 착각까지 하게 됐다. ‘저 페라리 살 돈 없거든요?’
그래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그의 자랑들 중 호기심이 가는 이야기가 딱 하나 있었다.
슈퍼카 오너들이 자주 들르는 커피숍! 스페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서울 강남구 청담동 ‘프리판’이 바로 그곳이다. 스페인 커피숍에 이탈리아와 영국 자동차라니. 그야말로 유럽이 아닌가. 차에 별 관심은 없지만, 흥미롭고 독특한 현상이라면 온몸에 아드레날린이 샘솟는 난 그들만의 동호회가 열린다는 첫쨋주 금요일 밤(7~10시) 사진기와 노트북을 들고 프리판으로 향했다. (추울 때는 페라리를 타지 않는다니 이 광경을 목격하고 싶다면 미리 인터넷 동호회 ‘FCK페라리클럽’(Ferrari Club of Korea)에 가입해 시간을 알아가도록).
친구와 함께 2층으로 올라갔다. 도로로 향하는 창은 1·2층이 연결된 통유리로 돼 있어 시원한 인상을 풍겼다. 명당이라는 창가 자리에 앉아 밖을 내다보았다. 넓은 도로를 시원하게 내달리는 차들.
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크루아상이 죽여준다고 했다. 스페인에서 직수입한 생지를 매장에서 직접 구워낸다니. 스페인. 그 열정과 투우의 나라. 그랬다. 그곳에서 맛본 갓 구운 크루아상은… 뜨거웠다.
잠시 뒤, 맹수의 포효와도 같은 소리들이 멀리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이 다가왔고 테이블 위에 놓인 아메리카노 표면에 미세한 동심원이 생겼다.
맹수가 상대의 기를 죽이려는 듯한 저음으로 으르렁거리며 저마다 자리를 찾아헤맸다. 나는 2층 창가에 앉아 그들을 내려다봤다. 1대, 2대, 3대, 4대, 5대… 차들은 점점 늘어나 정말이지 그곳은 모터쇼장을 방불케 했다.
페라리가 13대, 람보르기니 3대, 애스턴마틴 2대. 불현듯 ‘페라리 영업사원’의 말이 떠올랐다. “페라리는 찻값도 비싸지만 1년 유지비도 최소 3천만원 이상 들어.”
보통 사람들의 연봉을 차 유지비에 쓰는 그들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득의양양한 표정, 거만한 손짓, ‘내가 제일 잘나가!’ 하는 눈빛. 불현듯 궁금증 하나가 일었다.
대체 이들은 이 시간에 왜 이곳에 모여 있는 걸까? 여느 다른 동호회처럼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즐기기 위해서일까, 아님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친구에게 물었다. “두 가지 이유야. 첫째 자랑을 하기 위해, 둘째 새로운 놀거리를 찾기 위해!” 내 표정은 의아함에서 신기함으로, 부러움으로, 질투로 차례차례 바뀌었다. 하지만 결국엔 자그마한 미소와 함께 생각했다. ‘그래도 내가 아까 산 크루아상이 마지막 남은 한 개였다지?’
정수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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