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꿈과 잠의 속설들을 직조해 영화의 스토리를 세웠다. 영화 속 설정들은 실제와 어떻게 부합할까? 놀런 감독의 놀라운 설정의 바탕이 된 ‘과학적 사실’을 들여다보자. ‘꿈에 대해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되겠다.
편집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렸다. 책 제목은 . 기사에 쓰려고 하는 모든 내용이 완벽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이었다.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눈은 REM 때와 비슷하게 움직였다. 책에는 누군가 낙서를 해놓았다. ‘꿈 → 보다 → 기억 → 말·언어로 묘사, 연상 → 타인에게 전달.’ 꿈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메커니즘인가. REM으로도 넘을 수 없는 마감을 당겨주려는 듯, 책의 중요 부분에는 줄이 쳐져 있었다. 나는 이 모든 계시를 내 것으로 하기 위해, 낙서를 지웠다. 대신 몇 가지의 낙서를 남겼다.”
① 꿈프로이트는 ‘꿈에 대하여’에서 꿈은 공포증과 강박증, 그리고 망상 등의 치료에 도움을 준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공포증에 사로잡힌 환자가 있다고 하자. 환자에게 공포에 집중하도록 해 그것에 대해 말하게 한다면 환자는 뭐라 할 말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연상에서 풀려나오는 이야기(꿈)를 할 수 있다면 병을 해석할 심리적 재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런 전제하에, 환자도 아닌 자신의 꿈의 해석에 당장 돌입한다. “원칙적으로 어떤 꿈이든지 나의 논증에 적합하지만, 나는 특별한 이유로, 간밤에 꾸었던 꿈을 택할 것이다.”
에서 ‘추출자들’이 하는 일이 ‘꿈의 해석’이다. 표적의 꿈속으로 동시에 잠입해 그의 비밀을 캐낸다. 정신분석의가 말로 하는 일들을 이들은 꿈속으로 직접 들어가 끌어내는 것이다.
꿈이란 무엇인가. 1960년대 REM(Rapid Eye Movement)의 뇌파가 측정됐다. 잠잘 때 나타나는 빠른 눈동자의 움직임은 이전부터 알려져 있었지만, REM의 규칙성을 포착한 것은 가난한 아세린스키라는 연구조교였다. 그는 밤새 아들의 뇌파를 측정하다가 각성 상태와 거의 동일한 뇌파를 기록했고, 이때 눈동자도 빨리 움직이는 것, 그리고 이 뇌파가 시계처럼 정확하고 규칙적으로 일어난다는 것을 알아냈다. 이 높은 수준의 뇌파 활성이 일어날 때 주로 꿈을 꾼다고 알려져 있다. REM 수면기에 잠을 깬 74%가 꿈을 꾸었다고 말했고, 비REM 수면기에 깨어난 사람 중 꿈을 기억하는 사람은 10% 이하였다.
에서는 꿈의 시간이 현실의 시간보다 20배 천천히 흐른다고 말한다. 이는 REM 때 뇌의 활성도가 깨어 있을 때의 20배에 이르기도 하는 것에서 연유한다. 서울수면클리닉의 이지현 원장은 이것이 ‘꿈의 법칙’은 아니라고 한다. “꿈속에서는 현실 원리가 아니라 쾌락 원리를 따르며 사건의 진행은 비논리적이다. 시간은 끝없이 느리게 가기도 하고 아주 빨리 가기도 한다.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없기도 하다.”
다시 꿈의 내용으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꿈을 보고 해석할 수 있는 것은 뇌가 은유적으로 사고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말한다. 기회를 놓쳐버렸을 때. “너무 멀리 왔어.” 돌이킬 수 없을 때 이렇게 말한다. “갈 데까지 갔어.” 헤어지자며 이렇게 말한다. “이젠 각자의 길을 가야 할 것 같아.” 우리가 이런 말로 의미 전달을 할 수 있듯, 우리가 꾸는 꿈 또한 대화할 수 있을 정도로 비슷하다. 1905년의 젊은이와 2002년의 젊은이 모두 쫓김, 추락, 학교 생활, 성행위(순서대로)에 대한 꿈을 가장 많이 꿨다(캐나다 몬트리올 사크레쾨르병원 수면연구소,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② 꿈속의 꿈“마음은 생각의 기원을 좇기 때문에 조작은 불가능해요.” 의 ‘사이토 프로젝트’로 모인 추출자들은 생각을 캐내는 것이 아니라 심는 것(inception)이 목적이다. 그래서 무의식 속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 이 장치가 ‘꿈속의 꿈’이다.
‘꿈속의 꿈’에서 우리는 ‘자각몽’과 만난다. 자각몽이란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아는 꿈’이다. 추출가들은 ‘꿈속의 꿈’에서 ‘찰스’를 등장시킨다. 찰스는 ‘자각몽 전도사’다.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사람을 뜻하는 그들 사이의 은어다.
이 자각몽은 동양인에겐 익숙하다. 장자의 말이 있다. “언젠가 나, 장자는 꿈에 나비가 되어 즐거이 날아다녔다. 스스로 흡족하게 날아다니다 보니, 내가 장자인지 알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 보니, 누워 있는 것은 바로 나, 장자였다. 내가 꿈에서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에서 장자가 된 것인지 알지 못한다.”
‘꿈속의 꿈’은 자각몽과 관계가 깊다. 찰스는 표적인 피셔에게 꿈꾸는 상태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피셔는 기억해내려 애쓴다. 깨어나 꿈을 기억해내려는 것처럼, 꿈속에서 꿈 이전을 기억하는 것은 힘들다. 하지만 우리는 가끔 이게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꿈꾸는 상태를 기억하곤 한다.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잠들었는지… 이러한 자각과 동시에 우리는 ‘가짜 깨어나기’를 한다. 그러고는 ‘꿈속의 꿈’으로 진입한다(나의 경우는 주로 일어나 출근하는 꿈을 꾼다).
하지만 좀더 ‘자각몽’에 익숙해지면 가짜 깨어나기를 하기보다는 꾸던 꿈을 계속 진행할 수 있다. ‘꿈의 여행자’라 불리는 스티븐 라버지(미국 시카고대학 수면실험실 )*의 예가 있다. 라버지는 ‘자각몽’의 연구를 이끄는 연구자다. 그는 처음으로 자각몽을 물리적으로 기록했다. 자각몽 동안 보이는 큰 안구 운동을 포착해 폴리그래프로 기록한 것이다. 자각몽은 REM 수면 중에 주로 발생한다.
라버지는 히말라야에 오르고 있었다. 반팔 옷을 입고 높이 쌓인 눈밭을 헤치며 올랐다. 갑자기 자신이 왜 반팔 차림을 하고 있는지 의아했다. 꿈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그는 날아올랐다. “이건 꿈이니까 눈밭을 걷느니 산기슭을 날아오르자.”
의 추출자들은 ‘자각몽의 달인’이다. 표적인 피셔조차도 ‘꿈속의 꿈속의 꿈’인 눈밭을 힘들게 걸어다녀야 하자, “왜 해변에서 노는 꿈을 꾸지 않는 거냐”며 타박한다.
‘자각몽의 달인’이 되면 꿈 자체에 통제력을 발휘할 수 있다. 라버지는 어린 시절 해적 꿈을 몇 주일씩 연속해 꾸며 모험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자신이 꿈속에 있다는 것을 자각하면서. 라버지는 자각몽을 연구하면서 자각몽을 꾸는 사람에게 숙제를 냈다. 꿈속에서 거울을 찾고 자기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거울상이 현실과 다른 식으로 나타나긴 했지만, 자각몽을 꾼 모든 이들이 이 과제를 수행하는 데 문제가 없었다.
자신이 꾸고 싶은 꿈을, 그것도 (어제 끝난 꿈에 이어서) 시리즈로 꿀 수 있다면, 의 기본 설정처럼 꿈을 설계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특히 성적인 면에서는 점검 완료다. 자각몽을 통해 안전한 섹스를 즐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라버지는 자각몽을 통해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여성의 생리적 반응을 실험했고, 일반의 오르가슴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라버지는 자신이 꾸고 싶은 꿈을 꾸는 훈련법도 알려준다. 만약 엘리베이터 타는 꿈을 자주 꾼다면, 현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이게 꿈이야 생시야”라는 질문을 자주 하라고 한다. 꿈과 현실을 혼동시키는 것이다.
꿈을 꿈으로 인정하는 것이 매번 쉽지는 않다. 다시 장자의 이야기다. 꿈에서 일어났으나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모를 때도 있는 것이다. 그 구분을 위해 의 추출자들은 ‘토템’을 가지고 다닌다. 추출자 코브는 팽이를 돌려 이게 멈추지 않으면 꿈이라는 것을 안다. 에서는 이밖에도 꿈을 자각하게 하는 간단한 질문을 한다. “당신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생각해보라.” 라버지의 경우는 문서의 글자나 시곗바늘을 찾는다고 한다. 꿈속에서 문자는 바라보고 있는 중에 모양이 바뀌다가 돌아오고, 시곗바늘은 시각을 정확하게 표시하지 않는다고 한다.
③ 꿈속의 꿈속의 꿈
크리스토퍼 놀런은 ‘같은 꿈을 다른 사람과 꿀 수 있다’는 게 영화의 중요한 주제라고 말했다. “프라이버시만 없다면 사람들과 의미 있게 교감할 수 있는, 수많은 또 다른 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 인터뷰)
영화에서는 섬나친(somnacin)이라는 약물을 복용한 뒤 잠이 들고, PASIV(Portable Automated Somnacin IntroVenous)라는 기계를 통해 같은 시나리오의 꿈을 꾼다.
꿈꾸는 사람에게 접근하는 기구는 많다. 앞에서 무수히 언급한 뇌파 기록 도구들이다. fMRI(functional MRI) 스캐너는 뇌의 활동을 찍고, 어떤 소프트웨어는 이 이미지를 토대로 무슨 꿈을 꾸는지 해석한다. 뇌 각 부위의 활성도를 통해 꿈의 내용을 그리는 것이다(, 7월20일치). 이 꿈을 동시에 정확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줄 수 있다면 같이 꿈을 꾸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놀런 감독이 생각한 다른 사람과 함께 꾸는 ‘꿈’은 다른 꿈이었을지 모른다. 우리는 영화를 볼 때 꿈을 꾸고, 반대로 꿈을 꿀 때 영화처럼 꾸기도 한다. 1930~40년대 사람들은 꿈이 흑백이라고 생각했다. 1942년 조사에서는 10%가 컬러 꿈을 꾼다고 말했다(미국 시카고 대학 조사). 그런데 1962년에는 83%가 컬러라고 답했다(미국 세인트루이스 워싱턴 대학 조사). 연구자들은 1860년대 발명된 컬러영화가 1940년이 되어서 대중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말한다. 영화는 ‘꿈’이라고 은유된다. 우리는 눈동자를 움직여 영화를 보고 꿈을 꾼다. ‘시각적 이미지의 질’은 깨어 있을 때 보는 것과 꿈에서 보는 것이 거의 같다고 한다. 우리가 늘상 꾸는 꿈이 쫓고 쫓기는 꿈이고, 블록버스터가 쫓고 쫓기는 플롯인 것은 또 어떤가. 영화는 함께 꾸는 꿈이다.
이 끝나고, 추출자들이 킥을 동기화하기 위해 사용했던 에디트 피아프의 음악이 흐른다. 영화를 본 당신들도 꿈에서 깨어나라.
“책에서 본 그대로를 옮기는 것으로 기사를 완성할 수 있었다. 완성한 뒤에도 책은 여전히 옮겨 쓸 게 많은 채로 남아 있었다. 뭐가 더 있나 싶어 책을 무작정 펼쳤는데 ‘인간은 현실의 경험과 꿈속 경험을 구별할 수 있으므로…’가 튀어나왔다. ‘구별할 수 있으므로’에 줄을 긋고 ‘구별할 수 없다면…?’이라고 연필로 썼다. 이 메시지는 공유되는 것일까. 기사를 쓰는 이 악몽은 끝나는 것일까.”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도움말: 이지현 서울수면클리닉 원장
*참고 문헌: (안드레아 록 지음, 지식의숲 펴냄), (데이비드 J. 린든 지음, 시스테마 펴냄), (빌 헤이스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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