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가 ‘더위 사냥’에 나섰다. 오싹한 공포물과 야릇한 성인 코미디 연극으로 열대야에 잠 못 이루는 이들의 더위를 쫓는다. 공포영화가 장악한 여름 문화계에 ‘밤 10시, 성인들을 위한 콘텐츠’를 내걸고 관객몰이를 하는 중이다. 비명을 지를수록, 야한 농담에 얼굴이 빨개질수록 관객의 체온은 뚝뚝 떨어진다.
공연을 알리는 갑작스런 비명 소리지난 6월23일, 서울 대학로 두레홀(3관)은 놀이공원 속 ‘귀신의 집’으로 변했다. 8월30일까지 이곳에서 공연하는 은 공연장 입장 때부터 공포 체험이 시작된다. 어둠 속에서 자리를 찾아 손을 더듬거리고 있으면 갑자기 검은 망토를 입은 사람이 나타나 말없이 자리를 안내한다.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것도 갑작스러운 비명이다. 쿵쾅거리는 발걸음 소리, 여자의 날카롭고 긴 비명 소리가 정적을 깨며 연극의 막이 오른다.
옴니버스 형식의 공포물인 은 ‘악몽’을 소재 삼아 세 가지 에피소드를 다룬다. 정체 모를 여자로부터 전화 스토킹에 시달리는 남자, 애인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낯선 집에 갇히게 된 남자, 주검안치소에서 주검을 닦는 여자의 꿈 이야기다. 여기엔 배터리를 빼도 울리는 휴대전화처럼 고전이 된 무서운 이야기나 여자 탤런트의 자살 같은 현실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 연출을 맡은 김재환 연출가는 “귀신의 존재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공포를 악몽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2007년에 초연된 공포 연극 도 다시 무대에 올랐다. 객석 점유율과 유료 관객 점유율이 100%를 넘으며 전회 매진을 기록했던 이 연극은 지방 투어에 앞서 서울 공연을 다시 시작했다. 입소문이 났던 작품이라 공연 첫날인 지난 6월25일에도 서울 대학로 창조콘서트홀(2관) 180여 석이 관객으로 꽉 찼다.
는 여섯 살 때 실종된 아이가 15년 만에 집에 돌아오며 흘러가는 이야기다. 시각장애가 있는 엄마와 목사인 아빠를 부모로 둔 인우는 마을 축제가 있던 날 실종된다. 시간이 흘러 청년이 된 인우가 집을 찾아온다. 사라진 아이는 여자애였기에 아빠와 마을 사람들은 인우를 경계심을 갖고 대하지만 엄마만은 “인우가 맞다”며 청년을 감싼다. 갑자기 찾아온 인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술렁이고, 15년 전 축제의 비밀이 서서히 벗겨진다.
유머와 감동을 섞은 슬픈 공포물인 는 시각과 청각에 반복적인 충격을 가하며 관객에게 겁을 준다. 시각장애인인 엄마가 끼는 특수 렌즈, 어둠 속에서 비명과 함께 들리는 둔탁한 몽둥이질 소리,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비 소리, 객석과 무대 곳곳에서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귀신 등이 으스스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겁에 질린 관객의 비명 소리는 연극을 채우는 또 하나의 음향효과다.
공포감이 배가될수록 객석은 썰렁해지고, 연극을 보러 온 연인들의 간격은 가까워진다. 놀이공원의 데이트가 성공률이 높듯, 공포물을 찾는 연인들의 애정지수도 상승한다. 오승수 연출가는 “연극은 현장에서 귀신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영화보다 공포감을 주기에 더 적절하다”며 “이 때문에 늦은 밤에도 공연장을 찾는 연인들이 많다”고 말했다.
덤비는 대신 ‘야한 대사’로 승부를 기획한 ‘마루컴퍼니’는 7월9일부터 이란 작품도 새롭게 선보인다. 일제시대를 배경으로 ‘인형사’에 얽힌 미스터리한 사건을 담은 공포물이다.
4~5년 전부터 나타난 심야 공포 연극은 해를 거듭할수록 작품성과 흥행성을 높이면서 공연 작품 수도 늘려가는 추세다. 이에 대해 허순자 연극평론가는 “관객은 취향에 맞는 연극을 볼 수 있고, 공연기획자는 심야 공연으로 공연장을 한 번 더 쓸 수 있다는 점이 잘 맞아떨어진 것”이라면서 “심야 공포 연극이 ‘깜짝쇼’로 그치지 않고 내용과 형식의 완성도를 더 높인다면 여름철 연극 관객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청량제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포 연극이 간담을 서늘하게 해 더위를 식혀준다면, 더운 밤을 야한 대사로 더욱 뜨겁게 달구는 ‘19금’ 섹시 코미디는 ‘이열치열’로 더위를 이기게 한다. 8월29일까지 서울 대학로 신연아트홀 무대에 오르는 연극 (Want Night)은 ‘달콤한 여름밤’을 꿈꾼다. 몸으로 ‘덤비는’ 외설이 아니라 야한 대사로 승부하는 섹시 코미디를 표방한다.
15년 만에 연인이 만났다. 남자는 등을 만들어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감독이 되었다. 그의 이름은 구봉필 아니 다니엘 아니 대니얼. 오랜만에 귀국한 봉필의 고급 호텔 펜트하우스에 옛 연인 마수지가 찾아온다. 아이 셋 딸린 엄마가 된 수지에게 봉필은 여전히 끌린다. 이제 호텔방에서 재회한 연인의 밀고 당기는 야한 일화가 시작된다. 서로에 대해 “샅샅이 알고 싶은 옛 연인들”은 ‘은근히’ 야한 대사를 주고받는다. 봉필은 다가가고 수지는 멀어진다. 그러나 수지도 “미쳤어 미쳤어” 하면서 방을 떠나지 못한다. 어느새 손을 잡다 입을 맞추고, 진도가 조금씩 나가지만 끝내 수지는 ‘원나이트’를 허용하지 않는다. ‘잘나가는’ 봉필이 아직도 사랑을 찾지 못한 이유가 밝혀지면서 수지는 연민을 느끼고 연극은 결말을 향해 나간다.
이렇게 의 뼈대는 전통적 섹시 코미디의 공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호텔 직원으로 등장하는 멀티맨 남녀의 연기가 감초 구실을 넘어 웃음보를 터뜨린다. 이들은 회상 장면과 재연 장면에서 다양한 역할로 등장해 연극에 활기를 더한다. 예컨대 멀티맨 여성은 약간은 기괴하게 의 줄리아 로버츠를 떠올리게 하는 분장을 하고 나와 “믿어!”라고 관객을 나무란다. 주인공 남녀의 사연만 있었다면 자칫 지루해졌을 내용에 이들이 등장해 강약을 더한다. 의 김민교 연출가는 “심야에 극장에 가듯이 연극을 보러 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심야 연극은 곧 공포물이란 도식도 깨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늘하게 또는 후끈하게
여름은 ‘공포영화의 계절’이란 편식은 이제 그만. 지금 서울 대학로에 가면 여름밤을 ‘서늘하게’ 또는 ‘후끈하게’ 달구는 연극이 기다린다. “가벼운 마음으로 간 심야극장에서 뜻밖의 좋은 작품을 발견하듯이, 우리 연극도 그런 보물이 됐으면 좋겠다”는 김민교 연출가의 말처럼 열심히 일하고 지친 그대, 올여름엔 극장이 아닌 공연장으로 발길을 돌려보는 것은 어떨까.
김미영 기자 instyle@hani.co.kr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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