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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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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희미한 메시아적 힘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신학과 결합한 역사적 유물론을 보여주는 발터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 로쟈 인터넷 서평꾼 http://blog.aladdin.co.kr/mramor

흔히 벤야민의 ‘마지막 텍스트’로 불리는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0)가 (길 펴냄)에 포함되어 새로 번역돼 나왔다. 예전에 반성완 편역의 에 ‘역사철학테제’로 옮겨졌던 글이다. 18개의 단장(테제)과 2개의 부기로 이루어진 짧은 글이지만 그의 역사관 혹은 역사철학을 집약하고 있는 텍스트다. 압축적인 만큼 편하게 읽히지는 않지만 ‘관련 노트들’도 이번에 번역돼 읽기에 도움을 준다.

먼저, 벤야민은 자신의 역사관을 한 전설적인 자동기계에 비유한다. 이것은 서양장기를 두는 기계장치인데, 터키 복장의 인형이 장기판 앞에 앉아서 상대방의 수에 응수하며 매번 승리한다. 신기해 보이지만 실상은 장기의 명수인 꼽추 난쟁이가 장치 안에 들어앉아서 인형의 손을 조종했을 뿐이다. 흥미로운 것은 벤야민이 이 기계장치의 인형을 ‘역사적 유물론’에 비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그는 신학을 그 왜소하고 흉측한 꼽추 난쟁이에 비유한다. 즉, 역사적 유물론이 승리하기 위해서는 신학을 자기 편으로 고용해 거느려야 한다고 벤야민은 주장한다. 분명 그의 역사관은 ‘역사적 유물론’이다. 그런 점에서 그는 마르크스주의자이다. 한데 그 역사적 유물론은 유대교적 메시아주의와 한패이다. 그런 점에서 통상적인 마르크스주의를 벗어난다.

‘신학과 결합한 역사적 유물론’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구원의 관념을 등장시킬 때이다. 특이한 것은 이 구원이 미래가 아닌 과거로부터 온다는 점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과거는 그것을 구원으로 지시하는 어떤 은밀한 지침을 지니고 있다.” 우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예전에 다른 사람들을 스치고 지나갔던 바람이다. 우리가 귀기울여 듣는 목소리 속에는 이젠 침묵해버린 목소리가 메아리로 울려퍼진다. 우리가 구애하는 여인들에게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자매들의 모습이 들어 있다. 그렇게 과거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놓여 있으며 앞서 간 모든 세대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겐 ‘희미한 메시아적 힘’이 함께 주어져 있다. 역사적 유물론자는 그러한 약속과 메시아적 힘을 발견하는 자이다. 그래서 과거의 역사가 원래 어떠했는가를 객관적으로 인식한다는 식의 역사주의는 역사적 유물론과 거리가 멀다. 그와 달리 “역사적 유물론의 중요한 과제는 위험의 순간에 역사적 주체에게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과거의 이미지를 붙드는 일이다.”

역사를 균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의 연속으로 간주하는 역사주의가 정점을 이루는 것은 보편적 세계사 서술 같은 대목에서다. 거기서 보편사의 방법론은 그저 가산(加算)적이다. 역사주의적 역사서술은 연속적인 시간을 채우기 위해 이런저런 사실의 더미를 긁어모으는 일에 바쳐진다. 반면에 역사적 유물론자에게 역사서술은 하나의 구성이다. 그 구성의 장소는 균질하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이다. 이 ‘지금시간’은 과거와 미래 사이를 지칭하는 ‘현재’가 아니라 그러한 연속체를 무효화한 시간이다. 따라서 멈춰진 시간이며 정지해버린 시간이다. 그런 점에서 역사적 유물론은 역사가 직선적인 시간을 따라서 진보한다는 진보주의적 관념과도 이별한다. 벤야민에게 ‘진보’란 파울 클레의 그림 (1920)에서 죽은 자들을 불러일으키고 과거의 잔해들을 모아서 다시 결합시키려고 하는 천사의 날개를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세찬 폭풍, 곧 훼방꾼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역사의 천사, 곧 역사적 유물론자는 특정한 사건 속에서 메시아적 정지의 표지를 발견하고 혁명적 기회의 신호를 인식하려 애쓴다. 그럼으로써 균질하고 공허한 역사의 진행 과정을 폭파시키려 한다. 벤야민의 비유에 따르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역사주의라는 유곽에서 ‘옛날 옛적에’ 하는 창녀에게 몸을 던지는 일은 다른 이에게 맡긴다. 그 자신은 역사의 연속체를 폭파하기에 충분한 정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 정력은 어떻게 발휘되는가? 1830년 7혁 혁명 때 파리 곳곳에서는 시계탑의 시계를 향해 사람들이 총격을 가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혁명이란 시간의 정지이며 새로운 시간의 도입이기에 그렇다. 우리에게도 그러한 시간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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