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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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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셰익스피어 정도는 돼야지

등록 2008-04-11 00:00 수정 2020-05-03 04:25

고전 ‘다시 읽기’의 매력을 과 로 맛보라

▣ 로쟈 인터넷 서평꾼 http://blog.aladdin.co.kr/mramor

이란 책으로 우리 독서계에 ‘교양’ 열풍을 선사해주었던 디트리히 슈바니츠의 유작이 출간됐다. (들녘 펴냄)이 제목이다. 원래는 ‘셰익스피어, 그리고 그를 문화적 기념비로 만든 모든 것’이란 제목을 붙이려고 했으나 집필 단계에서 저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우리에게는 ‘모든 것’ 대신에 ‘햄릿’만이 남게 되었다. 그리고 ‘모든 것’이라고 하기엔 분량이 처럼 두툼하지 않고 단출하다. 책의 원제목은 조금 다른 ‘셰익스피어의 햄릿, 그리고 이 작품을 문화적 기념비로 만든 모든 것’인데, 이걸 보면서 저자가 영문학자였다는 것에 주의를 두게 됐다. 때맞춰 나온 원로 영문학자 여석기 교수의 (생각의나무 펴냄)와 같이 느긋하게 읽어봄 직하다.

단, 전제는 “번역을 통해서라도 이 작품을 한 번 이상을 통독하였고, 가능하다면 영문 텍스트를 대강이나마 훑어본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것”. 에 나오는 말이지만, 도 다르지 않다. 그건 두 책 모두 단순한 입문서가 아니라 한 단계 높은 수준의 교양서를 의도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한편으론 자체가 고전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마도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읽히고 가장 많이 공연된 극작품은 일 것이다. 하지만 한 연구자의 말대로 “이 극의 의미에 대한 영원하고도 깊게 자리잡은 문제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 또한 이다. 때문에 고전은 한 번 읽고 마는 작품이 아니라 읽고 또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여러 해설과 강의들은 이러한 ‘다시 읽기’의 길잡이이자 자극제가 되어준다.

가령, 셰익스피어를 ‘세계문학의 천재들’ 가운데 단연 가장 앞자리에 놓고 있는 미국의 문학비평가 해럴드 블룸의 해석은 어떤가. 그는 에서 이 작품을 햄릿이 자신의 두 ‘아버지’가 남긴 유물들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걸로 이해한다. 그 두 유물이란 1막에 등장하는 부왕 햄릿의 유령과 5막에 나오는, 부왕의 어릿광대 요릭의 해골이다. 블룸의 주목에 따르면, 요릭은 아무도 돌보지 않았던 어린 햄릿의 실질적인 아버지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어린 햄릿이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돌려줄 유일한 대상은 바로 요릭이었다”고까지 그는 말한다. 우리가 부왕의 ‘유령’에만 너무 주목하지 말고 광대의 ‘해골’에도 신경을 좀 쓸 것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런 고전을 왜 읽어야 하는가? 슈바니츠는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서 우리가 고전 읽기를 통해 단지 교양 획득 차원을 넘어서 ‘사회적 존경’까지 얻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가 ‘셰익스피어에게 진 빚’이라고 털어놓는 대목인데, 어릴 적 스위스 산골에서 독일로 이사와 처음 들어간 학교에서 겪은 일이다. 거기선 아이들 사이에서 ‘욕 경연대회’가 자주 벌어졌고 쌍스러운 욕을 누가 더 잘하느냐에 따라 서열이 매겨졌다고. ‘임마’ ‘짜식’ 수준으로는 웃음거리나 될 뿐이었는데, 어느 날 펼쳐든 셰익스피어의 사극 에서 그는 ‘화약고’를 발견한다. 그러고는 결투에 나가 뚱보 녀석에게 수준 높은 교양의 욕을 퍼붓는다. “이 삶아놓은 돼지머리 같은 놈아, 헛바람만 들어찬 똥자루, 지 다리도 못 보는 한심한 배불뚝이, 물 먹인 비계, 물러터진 희멀건 두부살, 푸줏간에 통째로 내걸린 고깃덩이, 푸딩으로 속을 채운 출렁거리는 왕만두, 버터를 접시째 퍼먹는 게걸딱지….” 그리고 옆에 끼어든 빼빼 마른 녀석에게는 “꺼져버려, 이 피죽도 못 얻어먹은 몰골아, 뱀장어 껍데기, 말린 소 혓바닥, 북어 대가리 같은 놈, 수수깡, 뜨개바늘보다 더 가늘어서 치즈 구멍으로 술술 빠지는 놈아, 갑자기 성난 비둘기라도 된 거냐? 아니면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생쥐?”

당연한 일이지만 슈바니츠는 욕 경연대회의 챔피언으로 등극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그를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본 이후 그는 평생 셰익스피어를 존경하게 된다. 생각건대, 욕도 이 정도는 돼야 ‘교양’으로 쳐줄 수 있겠다. 요즘 아침저녁으로 확성기에서 쏟아지는 고리타분한 수사와 막말들을 귓전으로 접하고 있다. 고역이다. ‘고전 읽는 정치’ ‘교양 있는 정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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