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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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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우리는 지구로 돌아온다

등록 2008-05-01 00:00 수정 2020-05-03 04:25

국내 첫 우주인 탄생을 계기로 가가린과 한나 아렌트의 책을 읽으면서 든 생각

▣ 로쟈 인터넷 서평꾼 http://blog.aladdin.co.kr/mramor

“우주에서 바라본 한반도는 하나였다.” 지난 4월19일 12일간의 우주생활을 마치고 우주정거장에서 귀환한 한국의 첫 우주인 이소연씨의 소감이다. 첫 우주인이라고는 하나 이른 건 아니다.

이번에 그녀는 세계에서 475번째 우주인으로 이름을 올렸고, 한국은 세계에서 36번째 우주인 배출 국가가 됐다니까. 러시아의 유리 가가린이 1961년 4월12일 보스토크호를 타고 최초로 우주비행에 성공한 지 47년 만의 일이다.

이번에 알게 된 것이지만 가가린이란 이름은 말로만 ‘최초’가 아니다. 알려진 대로 러시아의 우주인 훈련기관이 가가린 우주센터일뿐더러 우주인들은 우주로 나갈 때마다 매번 가가린의 ‘행위’를 반복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주선으로 가는 버스를 타고 가다가 도중에 한 차례 내려 버스 바퀴에다 오줌을 눈다. 가가린이 그랬기 때문에(여성은 예외라고). 엔진이 점화되면 선장은 ‘레츠고’를 외친다. 가가린이 그랬기 때문에.

아마도 이소연씨는 귀국 뒤에 성대한 환영행사와 뒤이은 방송 출연, 그리고 공개 강연 등으로 우주에서보다 더 정신이 없을 것이다. 아예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러시아(당시 소련)의 우주과학 기술을 홍보했던 가가린 역시 그랬으니까. 그리고 어쩌면 가가린처럼 ‘우주로 가는 길’에 대한 책도 써야 할지 모른다.

가가린의 책 (1961)이 그의 소감을 따서 (갈라파고스 펴냄)란 제목으로 나왔기에 읽어봤다. 그가 우주비행사 후보로 선발되어 훈련을 받고 최초로 우주비행 임무를 수행하고 돌아와 다시 가족과 상봉하기까지의 기록이다. 무사 귀환 이후에 우주선을 점검하고 적은 소감이 이렇다. “너무나 기쁜 순간이었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을 소련에서 실현했고, 조국의 과학이 비로소 일보 전진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행복했다.” 물론 그의 진심을 담은 말이겠으나 새삼스럽지는 않은 말이다.

오히려 눈길을 끄는 건 그가 선실 안에서 조국 러시아의 음악을 들으며 애창곡 를 불렀다는 대목이나 서반구를 횡단하면서 ‘아메리카’에 대한 상념에 빠졌다는 진술이다. 그는 당시 미국의 우주인 후보들 가운데 앨런 셰퍼드에게 친근감을 느끼는데, 이유인즉 다른 두 명의 동료들과는 달리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우주비행사들도 우리들처럼 평화적인 일에 종사하게 될까, 아니면 전쟁준비를 위한 노예가 될까?” 가가린이 궁금해한 부분이면서 동시에 러시아가 우주개발 경쟁에 나선 미국에 보낸 ‘정치적’ 메시지이기도 할 것이다.

이번 한국 우주인 배출로 우주과학에 대한 국민의 인식 수준을 10년 이상 끌어올린 것이 가장 큰 성과라고 지적된다. 이소연씨도 자신의 소중한 체험을 다 함께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했다. 나는 그 ‘소중한 체험’이 인간의 경험을 확장하는 체험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한계를 승인하는 체험이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 ‘한계’란 한나 아렌트의 표현을 빌리면 ‘인간의 조건’이기도 하다.

정확히 반세기 전에 출간된 (1958) 서문에서 아렌트는 “1957년 인간이 만든 지구 태생의 한 물체가 우주로 발사되었다”란 사실을 먼저 지적한다. 러시아가 발사한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를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이 ‘사건’이 원자를 아원자입자로 쪼갠 사건 이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인류가 ‘지구라는 감옥’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는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 가능성이 역설적으로 상기시켜주는 것은 지구의 가치이다. 그래서 “지구는 가장 핵심적인 인간조건이다.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지구는 우주에서 유일한 인간의 거주지이다”라고 아렌트는 단언한다. 머지않아 1억원이면 우주여행이 가능한 시대가 온다고도 하지만, 그럼에도 엄연한 현실은 60억 인류의 삶의 터전이 우주라는 무중력 공간이 아니라 중력 공간으로서의 지구라는 사실이다. 우주로 가는 길은 동시에 중력의 세계로 귀환하는 길이라는 걸 되새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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