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133개 직업 열전, 미국 라디오 진행자 스터즈 터클의
▣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TV 프로그램 을 본 적이 있는가. 순식간에 뷔페용 초밥을 만들어내는 모씨는 잠깐 시간이 나면 설거지를 도우러 간다. 몸무게에 육박하는 짐을 들고 동대문시장을 뛰어다니는 물품 공급자도 있다. 직업에 대한 소신이 무엇이고, 억척 같은 노동으로 무엇을 이루는지는 상관없다. 그들의 일 자체가 경이다. 마르크스는 인간의 노동력만이 부가가치를 만들어낸다고 했지만 자본주의 노동은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소련의 ‘스타하노프 운동’(기준 노동량의 14배를 채석한 광부를 이름을 딴 생산력 독려 운동)이 자본주의 노동과 다를 것은 무엇인가. 일에 대한 태도는 이렇게 애매하다.
‘일’을 제목으로 신간에는 이 모든 애매모호함이 들어 있다. 제목 앞 ‘누구나 하고 싶어하지만 모두들 하기 싫어하고 아무나 하지 못하는’은 아무래도 ‘2007년 한국식’ 해석이다. 이런 해석까지도 책은 기꺼이 망라한다. (이매진 펴냄, 노승영 옮김)은 1970년 초반, 산업화·기계화로 진행되던 미국의 노동자 133명의 육성을 모았다. 3년 동안 이 일을 하고 다닌 사람은 1952년부터 1997년까지 이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한 스터즈 터클. 영화평론가 폴린 카엘, 여성 상위 수입 1%에 드는 30살의 젊은 광고회사 부사장도 있지만 그가 관심을 가진 대상은 ‘말 많은’ 사람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꿈’이라고 붙여진 저자 서문 첫 문장은 이렇다. “일을 주제로 한 이 책은 본질적으로 ‘폭력’에 대한 것이다. 여기에는 신체에 대한 폭력뿐 아니라 영혼에 대한 폭력도 포함된다. …무엇보다 이 책은 일상의 모멸감을 다루고 있다.” “이 도로, 내가 만들었어” “이 빌딩은 내 손으로 지었지”라고 말하는 자부심 가득한 중장비 기사도 있지만, 대부분은 철강 노동자 마이크 르페브르처럼 이중적이다. 그는 “한쪽 벽면에 한 뼘치 공간씩이라도 바닥부터 꼭대기까지 해서 벽돌공이랑 전기 기사랑, 하여튼 건물을 지은 모든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지만, “팔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머리는 멈추어버”리는 노동이 행복하지는 않다. “배우가 나쁜 영화를 받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저는 매일같이 나쁜 영화를 받습니다. …시스틴 성당 벽화 같은 것을 1년에 1천 개 만들어야 한다면 어떻겠습니까? 미켈란젤로 같은 천재도 바보가 되지 않겠습니까?”
소설을 읽는 것처럼 ‘직업 인생’은 흥미진진하다. 스물네 살의 섀런 앳킨스는 미드웨스트 대형 상업시설에서 접수계원(전화연결원과 비슷함)으로 일한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이 “사람과 전화를 가려내는 것뿐”이라며, 자기 자신도 전화와 같은 기계 취급을 받는다고 말한다. “첫 번째 전화벨이 울리면 흥분으로 몸이 떨려요. 그 다음부터는 내리막이죠.” 그는 집에서는 전화를 안 받고 자동응답기에 연결해놓는다. 그리고 전화 대신 직접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싶지만 정작 사람들과 만날 때는 마치 전화기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가 하는 중요한 결정은 버스를 탈지 고가의 열차를 탈지 정도다.
단조로운 생활 속에도 은밀한 즐거움이 숨어 있다. 한 작은 호텔의 전화교환원인 프랜시스 스웬슨은 야간 당번일 때 “홀리데이 인입니다”라고 장난으로 말한다. 이 일로 상사에게 불려가 된통 혼나기도 한다. 그는 대화를 엿듣지 않는다고 하지만 “벨에서는 저도 그랬어요(엿들었어요). 야간 근무를 서다가 아주 조용할 때 통화 한 번 엿들어보지 않은 교환원은 없을걸요. 시간이 더 빨리 가거든요”라고 말한다.
열네 살 신문배달부 테리 피켄즈는 자본주의 성공 신화의 허구성을 어린 나이에 꿰뚫어보고 있다. “신문배달 경험 덕분에 대통령이 됐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신문배달이 가르쳐준 건 돈이랑 이런 헛소리를 어떻게 다루는가 하는 거예요. 고객들을 미워하는 법을 가르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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