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년내내 붙임성 좋은 패션 액세서리, 스카프와 머플러로 느낌 살리기
▣ 심정희 〈W Korea〉 패션 에디터
‘패션’이나 ‘스타일’이라는 단어와 맞닥뜨리면 떠오르는 건 이런 것들이다. 최고급 소재로 만든 슈트, 입으면 ‘태가 나는’ 각이 잘 잡힌 코트, 포근하게 몸을 감싸는 니트 스웨터, 핏(fit)이 좋은 청바지…. 그러나 정작 어떤 사람이 패셔너블한가 그렇지 않은가를 결정하는 건 옷이 아닌,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결코 사소하지 않은 것)들이다. 처세술 책이 ‘더러운 구두를 신고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를 기대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 하고, 옷 입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액세서리에 투자하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셔츠 깃 모양과 기막히게 어울리는 넥타이 매듭은 때로 비싸지 않은 슈트를 최고급으로 보이게 하고, 입은 옷과 완벽히 어우러지는 핸드백은 한 여성의 느낌을 완벽하게 바꾸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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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스카프와 머플러는? 차곡차곡 접으면 손바닥만 한 크기로 줄어들기도 하는 이 작은 액세서리는 경우에 따라선 구두나 핸드백보다 한 사람의 이미지와 스타일을 형성하는 데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집 밖으로 나가는 날이면 항상 착용해야 하는 신발이나 핸드백과 달리, 착용자가 그 착용 여부를 취사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카프와 머플러는 단순히 그 착용 여부만으로도 착용자의 개성을 남들에게 전달할 수 있게 해준다. 얼굴에서 가장 가까운 자리에 위치하는 까닭에 다른 이의 시선이 닿는 확률 또한 구두나 핸드백에 비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여름이면 어때, 머리와 목을 동여매
어느 순간부터인가 스카프와 머플러는 계절의 한계를 뛰어넘는 액세서리가 되어버렸다. 가을의 초입부터 겨울이 끝나기까지 보온의 목적으로 착용하는 액세서리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다. 사시사철 안개가 끼고 부슬비가 내리는 런던이나, 하루에도 몇 번씩 추웠다 더웠다를 반복하는 파리뿐 아니라 4계절이 뚜렷한 서울에서도 언제부터인가 스카프는 1년 열두 달, 어느 때고 착용할 수 있고, 또 멋쟁이로 불리려면 착용해야만 하는 아이템이 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지난여름의 홍익대 앞으로 돌아가보자. 30도를 넘는 폭염에도 니트 비니로 머리를 감싸고, 리넨 소재의 스카프로 목을 동여맨 청년들로 그 거리는 북적댔다. 아가씨들은? 말할 필요도 없지. 백화점에서든 노점에서든, 3천원짜리든 30만원짜리든 지난여름, 모든 패션 아이템을 통틀어 가장 많이 팔려나간 것 중 하나가 에스닉한 느낌의 셰마그(shemagh) 스카프였으니까.
따지고 보면 스카프는 원래부터 힘이 센 액세서리였다. 접으면 손바닥만 한 크기의 클러치 백에도 쏙 들어가는 이 붙임성 좋은 액세서리는 때로 모직 재킷 못지않은 보온 효과를 내고, 내세울 만한 별다른 매력이 없는 여성에게 우아함을 부여해주며, 접는 방법에 따라 홀터넥 블라우스나 진짜 스커트 부럽지 않은 1회용 스커트로 변신하기도 한다. 영화에선 또 어땠나? 에서 추적자들을 따돌려야만 했던 오드리 헵번을 도왔던 것도, 에서 오드리 토투의 귀엽고 깜찍한 캐릭터를 공고히 했던 것도 스카프였다. 그런가 하면, 어떤 영화감독들은 종종 스카프를 향한 조소의 눈길을 서슴없이 드러낸다. 어리숙하고 촌스럽기 그지없는 여자 주인공이 한껏 멋을 낸 차림- 그러나 실제로는 조금도 멋있지 않은 모습- 으로 등장하는 장면에 빠지지 않고 스카프가 등장하는 것이 그 예. 그렇게 스카프를 머리에 둘러쓰고 등장한 어리숙한 여자 주인공들의 대부분은 또, (하필이면!) 오픈카에 탔다가 스카프가 바람에 날아가는 수모를 겪는다. 여자 주인공의 당황하는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면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오고…. 인류가 기억하는 최고의 무용가이자 스카프의 열렬한 애호가였던 이사도라 덩컨이 자기 키보다 더 긴 스카프를 하고 있다가 그 스카프 자락에 목이 졸려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비극보다는 희극으로 다가오는 것이 바로 그런 장면들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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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카프가 지금과 같은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된 것은 누구나 별 부담 없이 멋스럽게 착용할 수 있는 셰마그 스카프가 유행하면서부터였다. 아랍 지역 주민들이 건조한 모래 바람으로부터 얼굴을 보호하기 위해 쓰고 다니는 셰마그라는 천에서 비롯된 이 스카프는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실크 스카프에 비해 훨씬 소박한 느낌을 주는 면과 리넨 소재로 만들어지는데다(물론, 실크 스카프에 비하면 값도 훨씬 싸다) 스카프 가장자리가 프린지 디테일로 되어 있어 에스닉하면서도 캐주얼한 느낌이 강하다. 셰마그 스카프가 반듯한 느낌의 정장 차림보다 청바지나 미니스커트 같은 차림에 더 어울리는 것도 그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주목받는 디자이너 중 한 사람인 발렌시아가의 니콜라스 게스키에르는 조퍼스(우리가 흔히 ‘승마바지’라고 부르는, 엉덩이와 허벅지 부분에는 볼륨감이 있고 종아리 부분은 슬림한 실루엣의 팬츠)와 몸에 꼭 끼는 프레피 스타일의 블레이저에 에스닉한 스카프를 매치함으로써 포인트를 주었는데, 그가 보여준 다양한 스타일링 방법 또한 셰마그 스카프를 활용하는 데 좋은 팁이 된다. 니콜라스 게스키에르의 스타일링에서도 드러나는 것처럼 셰마그 스카프를 갖고 있거나, 장차 포인트 액세서리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는 이들이 잊지 말아야 스타일링 포인트는 이 스카프의 에스닉한 느낌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 여러 겹으로 접어 목에 두를 것이 아니라, 한 번 정도만 대각선으로 접어 어깨 전체를 감싸도록 과감하게 펼쳐서 매야 한다는 것. 날씨가 추운 날 보온용으로 활용하거나, 옷차림에 무심한 태도를 연출할 때에는 목 부분 위주로 여러 번을 휘감는 것도 나쁘지 않지만 이때에도 가장자리의 프린지가 눈에 잘 띄도록 매야만 에스닉한 매력이 살아난다.
모피 강세 속 실크 인기도 여전
에스닉한 느낌의 스카프와 더불어 이번 시즌에는 모피 머플러 또한 자주 눈에 띈다. 모피는 중·장년층에게나 어울리는 소재라는 생각이 사그라지는 것과 때를 같이해 등장한 모피 머플러는 젊은 느낌의 옷과 잘 어우러지도록 단순한 모양으로 디자인된 것이 대부분. 모피 소재의 아이템을 착용해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처음엔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지만 이런 모피 머플러는 사실, 스포티한 느낌의 블루종부터 코트까지 다양한 느낌의 아우터에 두루 어울리는 ‘팔방미인’형 액세서리다.
인정 많은 누군가의 머릿속에서는 ‘셰마그 스카프와 모피 머플러가 유행’이라는 말을 듣는 것과 동시에 클래식한 실크 스카프에 대한 걱정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이제 클래식한 사각형 실크 스카프는 어떻게 되나? 새로운 스카프들에 가려 빛을 잃는 것인가?’ 그러나 걱정 마시라. 어떤 스카프가 어떻게 유행하는지와 무관하게 클래식 실크 스카프는 굳건하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그건 원더걸스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동안에도 비틀스 음반이 꾸준히 팔려나가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사각형 실크 스카프는 언제, 어디에, 어떤 옷과, 어떤 식으로 매치해도 평균 이상의 점수를 받는 클래식 아이템인 것이다. 올겨울 클래식 스카프를 활용하는 방안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슈트나 아무런 무늬가 없는 니트처럼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옷차림에 원래 실크 스카프가 갖고 있는 이미지대로 클래식하게 착용하는 것이다. 바이커 재킷이나 스포츠 점퍼, 패딩 점퍼 등 스포티하고 남성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의상에 대조적인 느낌을 가미하는 요소로 활용하는 것은 두 번째다. 실크 스카프는 매는 방법에 따라 그 느낌이 천차만별이고 활용법 또한 수십 가지이므로, 주변에 스카프 매는 법을 다양하게 아는 사람이 있다면 틈틈이 배우고 연습하는 것이 좋다. 손놀림이 둔해서 스카프를 잘 매는 데 자신 없는 사람들이라면 스카프 링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 스카프 링이 있다면, 스카프를 목에 두른 다음 양쪽 끝을 링 사이에 끼우기만 하면 끝. 전체적으로 반듯한 모양으로 접은 다음 링으로 마무리하면 우아하고 깔끔해 보이지만 굳이 공들여 접지 않고 정리가 덜 된 상태에서 양끝을 스카프 링에 끼워도 색다른 느낌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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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트·모직 머플러 다양하게 연출하기
그런데 남자들도 실크 스카프를 매도 될까? 글쎄,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실크 스카프로 두껍고 멋스러운 매듭을 만들어 셔츠를 장식하거나 드리스 반 노튼의 쇼에 등장한 모델들처럼 삼각형으로 접은 스카프를 어깨에 두르고 앞에서 묶음으로써 보이스카우트 같은 분위기를 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렇게 하고 원만한 사회생활이 가능할지에 대해서는 장담할 수 없다. 디자이너들은 남자 모델들의 목을 어떻게 장식했나 보려고 여러 패션쇼를 찾아봤는데, 그 과정에서도 이렇다 할 정답은 발견되지 않았다. 깨달은 것이 있다면 서정적이고 섬세한 파리 컬렉션의 디자이너들이 남자 모델들에게 클래식한 실크 스카프를 매주거나 두꺼운 머플러를 다양한 방식으로 매주는 데 조금의 거리낌도 없어 보이는 것과 달리, 밀라노 컬렉션의 디자이너들은 머플러나 스카프 활용에서 좀더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는 것. 파리에 비하면 ‘반듯한 남자’를 현현하려는 성향이 짙은 밀라노 디자이너들의 스카프 활용법은 대개 모직이나 니트 소재의 직사각형 머플러를 길게 늘어뜨리거나, 세로로 한 번 접어 목에 두른 다음 한쪽 끝을 접을 때 생긴 구멍에 집어넣는 정도에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모험을 하지 않으면 얻는 것은 줄어드는 법. 그렇다고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드리스 반 노튼 쇼에 나온 모델들처럼 섬세하기 그지없는 실크 스카프로 목을 장식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구찌 쇼에 나온 모델들처럼 섹시한 모피 머플러를 아무렇지 않게 하고 다니는 남자나 주황색 실크 스카프를 맨 남자는 우리와는 너무 까마득히 먼 이야기일 것 같고, 폴 스미스가 사용한 방법 정도면 우리나라의 ‘일반’ 남자들도 부담 없이, 그리고 즐겁게 따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 방법이란 두꺼운 니트나 모직 머플러를 매되 다양한 모양의 매듭이나 끝단 처리 방법을 시도하는 것. 아주 간단하다. 새 머플러를 살 필요도 없다. 집에 있는 겨울용 머플러를 다양한 방법으로 묶는 연습만으로도 겨울 옷차림은 180도 달라진다. 어떤가? 부담도 없고 어렵지도 않고, 성가시지도 않다. 모름지기, 남는 장사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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