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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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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개의 카페에 100개의 문화가!

등록 2007-04-12 00:00 수정 2020-05-03 04:24

전세계 매장에 같은 음악이 흐르는 ‘스타벅스’의 획일화를 넘어서 다양성을 추구하는 작은 카페들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대형 커피체인 스타벅스. 나른한 목소리의 노라 존스의 노래 가 흐른다. 매장은 서너 개의 푹신한 소파 테이블과 열 개가 넘는 딱딱한 의자 테이블로 구성돼 있다.

스타벅스는 이 시대의 아이콘이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트렌드를 보여주는 기호다. 미국 뉴욕에서, 타이의 방콕에서, 대한민국 서울에서 스타벅스는 (본사가 보내준) 똑같은 커피 맛과 (본사가 지시한) 똑같은 디자인과 (본사가 선곡한) 똑같은 음악으로 손님을 맞는다. 그렇기에 스타벅스 안에서 커피를 홀짝이다 보면, 메트로폴리탄이 된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스타벅스에선 대한민국 서울의 평범한 직장인도 뉴요커가 될 수 있고, 의 캐리가 될 수 있다.

‘편리’ 대신 ‘윤리’를 찾는 사람들

“손님들이 카페에 들어오자마자 카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대형 커피체인처럼 셀프서비스인 줄 아는 거죠.”

서울 인사동 쌈지길의 카페 ‘숨’을 운영하는 이주은(36)씨는 쓰나미처럼 다가온 커피 문화의 변화를 이처럼 표현했다. 셀프서비스와 테이크아웃으로 대변되는 에스프레소 커피 전문점의 시대는 스타벅스가 열어젖혔다. 스타벅스가 1999년 서울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개설한 뒤, 커피 빈, 자바, 홀리스 등 대형 커피체인이 잇따라 문을 열기 시작했다. 대형 커피체인의 선두주자 스타벅스는 4월5일 서울 이태원에 200호점을 열었다.

스타벅스로 대표되는 커피 문화는, 그러나 아래서 차츰차츰 바뀌고 있다. 획일화와 규격화의 정신으로 세계 자본주의 질서에 ‘복무’하는 대형 커피체인을 멀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주은씨는 자신의 카페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커피’를 판다.

“‘히말라야의 선물’이라는 커피예요. 네팔 농부들이 유기농법으로 정성스레 키운 콩을 사와 끓여내는 거죠.”

히말라야의 선물은 ‘공정 무역’으로 수입된 커피다.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몇몇 글로벌 기업에 의해 좌우되는 낮은 커피 가격으로 인해 대다수 소규모 커피 농부들의 삶은 피폐해지고 있습니다”는 ‘비판적’ 설명문이 카페 숨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다. 반면 히말라야의 선물은 가난한 농부들의 노동에 합당한 값을 치르고 사온 커피다. 한국의 아름다운가게가 네팔 농부들에게 커피를 사오고, 이주은씨는 아름다운가게에서 커피를 사와 내놓는다. 사람들도 ‘편리’ 대신 ‘윤리’를 찾는다. 이씨가 말했다. “가게 손님 가운데 4명 중의 한 명 정도가 히말라야의 선물을 찾아요.” 히말라야의 선물은 부드러우면서도 시지 않고 그윽했다.

작은 카페들의 철학은 다양성이다. 전세계에서 커피 제국을 확장하고 있는 대형 커피체인과 정반대의 철학에 서 있다. 스타벅스가 좀더 싼 값에 커피를 들여오기 위해 최빈국의 하나인 에티오피아 정부와 상표권 분쟁을 하고 있을 때, 작은 카페들은 공정 무역 커피에 관심을 보인다. 스타벅스가 가게마다 똑같은 인테리어를 고집할 때, 작은 카페들은 자기 철학이 담긴 공간을 디자인한다.

서울 서교동의 카페 ‘언두’는 홍익대 앞 거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갤러리 카페다. 카페 주인 강영의(31)씨는 한 달에 한 번씩 사진·미술작가를 초청해 전시회를 연다. 십여 평밖에 되지 않는 작은 카페에 걸 수 있는 작품은 몇 점 안 되지만, 그는 이미 여덟 차례 옹골찬 전시회를 이어왔다. 강씨 역시 아마추어 미술 관람객일 뿐이지만, 줏대 있게 작가와 작품을 선정한다. 카페 언두는 그가 만드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치열한 작가의식을 가진 사람을 선정해 전시회를 연다”고 말했다.

“내 방을 카페에 옮겨왔어요”

카페 언두에 들르는 손님들은 스타벅스의 메트로폴리탄과 다르지 않다. 스타벅스가 손님들에게 혼자 노는 문화를 가르쳐줬다면, 이들은 거기서 진화해 다양한 공간을 스스로 찾아 혼자 놀기 시작했다. 카페 언두에서 어떤 이는 노트북을 펴놓고 인터넷을 즐기고, 젊은 여성 서넛은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떤다.

카페 언두가 대형 커피체인과 다른 점은 주인 강씨의 취향과 손길이 공간 속에 묻어난다는 것이다. 손님들이 첫 번째로 꼽는 매력은 카페 왼쪽에 자리잡은 나무다. 강씨는 커다란 난로를 테이블로 개조한 뒤, 테이블 가운데에 의 행성을 연상시키는 나무를 세웠다. 그리고 나뭇가지에다 손수 잎을 붙였다. 손님들은 나무에 붙어 자기 일거리에 열중한다.

서울 홍익대 정문 놀이터 근처의 카페 ‘커피 볶는 곰다방’을 운영하는 박준호(35)씨야 말로 주인의 취향으로만 카페를 꾸몄다. “내 방을 카페에 옮겨왔다”고 박씨는 말한다. “담배, 책, 음악과 커피를 좋아하거든요. 네 가지를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카페를 만들자고 생각했지요.”

대형 커피체인은 대부분 금연이거나 흡연자를 구석으로 몰아넣는다. 하지만 박씨가 보기에 “담배와 커피를 분리하는 건 흡연자에게 폭력”이다. 그래서 그는 곰다방을 흡연 자유구역으로 ‘선포’하고, 실내의 쾌적함을 위해 환풍기만 5개를 설치했다. 그래서 담배를 펴도 담배 냄새가 배지 않는다. 박씨는 부담 없이 담배를 피우라고 정태춘의 시 ‘담배’도 벽에 붙여놨다.

‘담배/ 아, 악마의 연기/ 이제 모든 건물들이 금연구역이고/ …/ 그나마 개미 똥구멍만 하게 만들어놓고는 억울하면 끊어라/ …/ 오 끊지 않느냐고/ 끊는 놈보다 더 독하다고 한다/ 미안합니데이/ 진실로/ 미안합니데이.’

그는 카페에 자신의 물건을 들여놓았다. 그가 읽던 책 100여 권이 책장에 꽂혀 있으며, 그가 즐겨 듣는 LP판 600여 장이 재생을 기다린다. 물론 대형 커피체인에 비치된 잡지나 그곳에서 들리는 ‘이지리스닝’ 계열의 음악에 비해 그의 책이나 음악 모두 대중적이지 않다. 그는 대형 커피체인과 카페의 차이점을 이렇게 말했다. “가급적 만들어진 공산품도 안 쓰고, 제가 직접 생두를 사다가 볶지요. 제 정성과 분위기가 반영됐으면 해요.”

갤러리 카페, 북 카페, 박물관 카페…

이런 개성 있는 카페는 지난해부터 홍익대 앞을 중심으로 부쩍 늘어나기 시작했다. ‘홍대 앞 카페 골목’이라는 말도 등장했다. 홍익대 앞에서 무료로 배포되는 문화잡지인 4월호도 이런 현상에 주목해 카페 30여 곳을 지도와 함께 소개하는 특집을 냈다. 전시회를 여는 갤러리 카페, 주인의 책을 갖다놓은 북 카페, 생활용품을 모아놓은 박물관 카페 등. 이런 작은 카페들은 다양한 공간이 주는 재미와 주인을 만나는 호기심을 충족시켜준다. 대형 커피체인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이런 ‘독립 카페’를 전전하며 탐험의 재미를 느끼고, 맘에 드는 곳을 발견해 단골로 삼는다. 이들에게 카페는 단지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사람을 만나기 위해 찾는 곳이 아니다. 100개의 카페에는 100개의 커피가 있고 100개의 문화가 있다.



양탕국에서 스타벅스까지

사람 만나는 곳에서 개인의 놀이터로 변화한 커피숍

커피에 대한 한국 최초의 기록은 유길준의 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한국인들이 숭늉 마시듯 서양인들이 커피와 주스를 마신다고 유길준은 기록했다. 구한말 자타가 공인하는 커피 애호가는 고종 황제였다. 그는 덕수궁에 ‘정관헌’이라는 서양식 정자를 짓고, 커피 마시기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당시 커피는 ‘양탕(洋湯)국’이라 불렸다.
일반인들이 커피를 접할 수 있게 된 건 1920년대가 지나서였다. 일제강점기, 다방은 지식인과 문화예술인들이 풍류를 즐기고 교류하는 장소로 애용됐다. 지식인이 나서 다방을 운영한 경우도 있었다. 소설가 이상은 무려 네 번이나 다방을 열었다고 한다.
커피가 대중화된 건 1970년대 이후였다. 동서식품이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1회용 커피믹스가 나온 덕분이었다. 커피 자동판매기가 일상화된 것도 이즈음이었다. 다방은 인스턴트커피에 설탕과 크림을 넣어, 이른바 ‘다방 커피’를 서비스했다.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애인을 기다리던 남자, 커피와 함께 DJ에게 신청곡을 부탁하던 여자 등이 이 시대 다방 풍경이었다.
1990년대 초반에는 ‘자뎅’ 등 셀프서비스형 저가 커피전문점이 출현했다. 원두커피도 보급되기 시작했다. 비교적 비싼 커피를 팔던 ‘방배동 카페 골목’ ‘청담동 카페’가 필수 데이트 코스로 떠오르기도 했다.
카페 문화의 지각변동은 1999년 스타벅스의 등장으로 시작됐다. 중앙에서 공급하는 표준화된 재료와 매장에서 언제 어디서나 높은 품질의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들이 제공한 건 에스프레소에 우유, 시럽, 향신료를 첨가한 일종의 ‘커피 음료’다. 카페라테와 카페모카가 1990년대를 풍미했던 원두커피 ‘아메리카노’의 자리를 이어받았다.
대형 커피체인은 카페 문화를 혁명적으로 바꿨다. 카페는 ‘사람 만나는 곳’을 넘어서 ‘개인의 놀이터’로 진화했다. 카페에서 노트북을 켜놓고 작업을 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거리 풍경을 감상하는 건 도시 문화의 세련된 이미지로 자리잡았다. 스타벅스 로고가 박힌 종이컵을 들고 출근하는 여성 직장인이 ‘라테 세대’의 표상으로 간주되기 시작했다. 당신이 마시는 커피가 당신의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시대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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