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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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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주자여, ‘패션 전략’을 세우라

등록 2007-04-06 00:00 수정 2020-05-03 04:24

기자와 스타일리스트의 ‘대선주자 패션전략 발전을 위한 보고서’… ‘의상을 잘 아는’ 박근혜 전 대표와 ‘두 벌 신사’ 권영길 대표가 베스트드레서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악마는 프라다를 입고, 낸시 펠로시 미국 하원의장은 아르마니를 입고,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부 장관은 페라가모 신발 마니아이다. 여기서 잠깐! 명품 브랜드 나열에 거부감을 느꼈을 독자 여러분께 드리는 퀴즈 하나. 프랑스의 세골렌 루아얄 사회당 대통령 후보는 무엇을 입을까? 샤넬? 버버리? 루이뷔통? 땡! 정답은 ‘비키니’이다. 시사넌센스도 아니고, 당황하고 있을 독자들께 드리는 보너스 퀴즈 하나 더. 낸시 펠로시, 세골렌 루아얄, 그리고 명품과는 거리가 먼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의 공통점은 뭘까? 바로 ‘패션 센스’이다.

할인매장에서 50% 세일해서 산 옷인데…

‘패션도 전략’이라는 광고 카피는 이미지 시대에 진부한 진리가 된 지 오래다. 특히 많은 사람들과 접촉하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 정치인들에게 패션은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 정치인들의 패션이 세간에 화제가 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 점에서 위에 나열한 정치인들은 패션 전략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화사한 파스텔톤 정장을 입은 루아얄은 부드러운 이미지를 통해 여성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파격적이지만 비키니를 입은 사진은 유력 잡지의 표지를 장식하면서 대중 친화력을 높였다는 평을 듣고 있다. 낸시 펠로시도 패션 감각으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빨간색 정장과 숄을 소화해내는 펠로시는 화려하면서도 당당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상징한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패션 전략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센스는 어느 정도일까? 〈한겨레21>은 강주연 패션칼럼니스트, 심정희 〈W korea〉 패션에디터, 채한석 스타일리스트, 서은영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대선 주자들의 패션을 분석했다. 분석 결과 전문가들은 여성 베스트드레서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남성 베스트드레서로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단 대표와 이명박 전 서울시장을 뽑았다.

권 대표는 단 두 벌의 양복으로 베스트드레서가 되는 영예(?)를 얻었다. 권영길 의원실의 이호성 보좌관은 “권 대표는 할인매장에서 50% 세일할 때 산 진한 감색과 옅은 감색 양복 두 벌밖에 없고, 두 벌을 번갈아가면서 입고 있다”고 말했다. ‘두 벌 신사’ 권 대표가 베스트드레서가 될 수 있는 비결이 뭘까? 셔츠와 넥타이를 다양하게 코디했기 때문이다. 권 대표는 하늘색 셔츠에 자주색이나 분홍색, 연두색 등 밝고 화려한 색의 넥타이를 즐겨 맨다. 권영길 의원실 배지영 보좌관은 “민주노동당의 강성 이미지를 고려해 세련되고 친화력 있는 권 대표의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패션에 신경을 쓰는 편”이라고 설명했다. 스타일리스트 채한석씨는 “권 대표의 경우 감색의 원톤 컬러 슈트를 입는데 스트라이프 셔츠를 입고 적당히 강한 색의 넥타이를 매 포인트를 줘 화려하면서도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한다”고 분석했다. ‘세련되고 친화력 있는 이미지’ 전략이 성공한 셈이다. 이렇게 단 두 벌의 정장으로 화려한 코디를 구사하는 권 대표의 내공은 두 번의 대선을 거치면서 쌓였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경우 전문가들로부터 ‘세련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 전 시장의 장점으로는 좋은 피트감(옷이 몸에 꼭 맞는 정도)과 다양한 패션 연출력이 꼽힌다. 스타일리스트 서은영씨는 “고급스러우면서도 자기 몸에 딱 맞는 의상을 입는다”며 “짙은 슈트에 붉은색이나 노란색 계열의 화려한 타이를 매서 여러 느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다만 채한석씨는 “이 전 시장이 다소 날카로워 보일 수 있는 인상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부드러운 이미지를 연출하는 패션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전 시장은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셋째딸 수연씨가 코디에 조언을 해주고 쇼핑을 통해 아버지 옷을 직접 사기도 한다. 지난해 이 전 시장이 독일을 방문했을 때 두른 연두색 체크 목도리도 수연씨가 선물한 것이다. 이 전 시장은 단골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 입거나 제일모직 등 기성품을 구매한다.

박 대표님, 플레어스커트는 그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분위기와 장소에 따라 다양한 스타일의 의상을 적절히 선택할 뿐 아니라 자신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의상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잘 알고 있는 정치인으로 꼽혔다. 심정희 패션에디터는 “허리에 벨트가 달린 빨간 사파리 재킷, 검정색 같은 모노톤 정장에 레드나 블루 컬러 셔츠를 매치해서 단정하고 카리스마 있는 느낌을 준다”고 평했다. 그러나 심 에디터는 “어머니 육영수씨의 이미지가 중첩돼 박 전 대표의 나이와 무관하게 ‘올드’한 느낌을 주는 것 같다”며 “대담한 디자인의 귀고리나 과감한 컬러를 쓸 것”을 조언했다. 서은영 스타일리스트도 “플레어스커트를 가끔 입는데, 신뢰감이 감소되는 느낌이 있다”고 분석했다.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베스트드레서라 할 순 없지만 무난한 패션을 연출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강주연 칼럼니스트는 “남자들은 대부분 싱글버튼 재킷을 입지만 손 전 지사는 더블 재킷도 입는다”며 “마음만 먹으면 더욱 멋있어질 것”이라며 발전 가능성을 높게 봤다. 한명숙 총리의 경우 “외모에서 풍겨나오는 우아한 이미지가 있지만 투피스 정장의 옷차림에서 깐깐하고 무서운 교감 선생님의 이미지가 느껴진다”고 심정희 에디터는 밝혔다. 심 에디터는 “깃이 부드럽게 디자인된 블라우스를 고르고, 브로치나 스카프 등 액세서리를 착용하면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넥타이를 잘 고르지만 블랙 슈트와 화이트 셔츠를 주로 입어서 단조로운 느낌이 있다”는 평을,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패셔너블한 편이지만 넥타이가 느슨하게 매였거나 흐트러진 부분이 눈에 띈다”는 지적을 받았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과 노회찬 의원은 정치인의 이미지를 대중들에게 각인시킬 만한 패션 컨셉도 모호하고 다른 대선 주자에 비해 패션 센스가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았다. 심정희 에디터는 “심상정 의원이 젊고 여성스러운 매력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채한석 스타일리스트도 “젊은데 나이 들어 보이는 다크 블루 컬러를 선호하는 것 같다. 트렌치코트를 입거나 진주귀고리 같은 액세서리만 해도 훨씬 이미지가 부드러워 보일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노회찬 의원은 옷을 못 입는 게 아니라 개성이 없고 무난한 게 흠”이라며 “피부톤이 어두운데 옷도 어두운 색이 많다”고 지적했다. 대중들에게 각인시킬 만한 자신만의 이미지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전문가들의 지적에 대해 민주노동당 내부에서도 패션에 좀더 신경써야 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노회찬 의원실에서 보좌관으로 일했던 신민영씨는 “정치인이 패션을 통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치인은 연기자이다. 연기를 잘해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부분도 있지만, 미디어를 통해 대중과 만나기 때문에 외모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너도나도 빨간 넥타이, 주의할 점은

그래도 심상정, 노회찬 의원 모두 최근 패션에 조금씩 관심을 기울이면서 예전보다 많이 좋아졌다는 칭찬도 나온다. 심상정 후보 캠프 관계자는 “얼마 전 TV 토론회에서 시장에서 산 파란색 리본 블라우스가 정장과 잘 어울렸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한편 정치인이 빨간 넥타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뭘까. 서은영 스타일리스트는 “요즘 정치인들이 빨간 넥타이를 매면 야심차 보인다고 생각하는지 너도나도 빨간 넥타이를 매는데, 붉은색도 여러 가지가 있다. 셔츠 컬러도 생각하지 않고 붉은 계열의 넥타이를 맬 경우 시골에서 막 상경한 아저씨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강주연 스타일리스트는 “레드 컬러는 정치인의 강인한 이미지를 연출하는 데는 효과적”이라고 붉은색의 인기 이유를 설명했다.

채한석씨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는 자리나 TV 토론회 등 국민의 시선이 집중되는 자리에서는 특히 신경 써서 입어야 한다. 그리고 대선 출마 선언 이후에는 계속 카메라가 따라다니게 되므로 적극적인 패션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2007년 ‘여의도 컬렉션’이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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