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호르몬 피해다니지 않고 자궁 질환을 예방하는 적극 방어전은 없을까…내면세계와 연결된 자궁에 귀기울여 몸과 마음이 화해하는 소리 듣기를…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나 죽기 싫어! 자궁암이면 어떻게 하지? 나 자궁 들어내기 싫어! 나 아기도 못 낳아보고 빈궁마마 되기 싫어!!!”
드라마 속 법적·생물학적 처녀 고병희(33)는 생리과다와 심한 생리통으로 산부인과를 찾았다가 자궁근종이 있다는 의사의 얘기를 듣고 이렇게 외친다.
의사는 자궁근종이 8cm로 생각보다 커서 혹시 자궁암일 수도 있으니 검사를 해보자고 말했을 뿐인데 병희는 ‘자궁근종=자궁암=빈궁마마’이라는 공식에 억지로 끼워맞추더니 참도 서럽게 울어젖힌다. 그렇게 울다가 9살 연하의 남자 철수와 하룻밤을 보낸 뒤 결국 사랑에 빠진다. 드라마 속에서 병희의 자궁근종은 곧 사랑의 씨앗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잠시 병희와 산부인과 의사의 진료실 대화로 화면을 돌려보자.
자궁 질환은 여성 책무 소홀이다?
“예? 자궁근종이요?”(병희) “쉽게 말하자면은 자궁점막이나 근육층에 생기는 양성 종양인데, 여자들에게는 흔히 있는 거예요.”(산부인과 의사) “어떻게 한 번도 (성관계를) 안 했는데, 어떻게 그런 게 생겨요?”(병희) “한 번도 안 했든 100번을 했든 자궁 질환은 여자의 숙명이에요. 그래서 정기검사가 필요한 거구요.”(산부인과 의사)
‘여자의 숙명’인 자궁 질환이 젊은 여성들에게 사랑의 씨앗이 아닌 눈물이 씨앗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자궁 질환으로는 자궁경부암과 자궁내막증, 자궁근종 등이 있다. 생리통과 생리전 증후군도 자궁 질환에 속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자궁 질환의 가장 큰 특징은 발병 연령대가 낮아졌다는 점이다. 아이를 낳고 40~50대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여겨져왔던 자궁 질환은 20~30대에서도 자주 발견되고 있다.
원인은 다양하다. 자궁경부암은 성관계로 인해 감염되는 인유두종바이러스(HPV)가 주요 원인이다. 성개방 풍속과 함께 20~30대가 자유로운 성관계를 즐기고 있어 자궁경부암 발병률 역시 높아지고 있다. 가임기 여성에게서 많이 발견되는 자궁근종과 자궁내막증은 여성호르몬과 환경호르몬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이에 발맞춰 신문과 방송 등은 큰 목소리로 자궁 질환의 심각성을 일깨우며 “건전한 성생활을 하고 플라스틱 등 환경호르몬 유발 물질을 멀리하라”고 입을 모은다.
물론 발병 원인을 차단하는 예방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아무리 예방이 중요하다고 HPV가 무섭고 자궁경부암이 두려워서 성생활을 끊고 생리통의 원인이라는 환경호르몬을 피해다니느라 매사에 신경을 곤두세울 수는 없다. 자궁에서 이상 징후가 나타날 때마다 자궁적출 수술을 한 빈궁마마가 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 수는 없다. 자궁은 위나 장 같은 신체기관이지만 성생활, 여성호르몬, 임신, 출산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자궁은 사회적 시선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출산중심주의·남성중심주의적 시각은 자궁 질환을 ‘생산’을 담당하는 여성이 자신의 책무를 소홀히 했다는 증거로 여기기도 한다. 질병과 책임이 두려워 모든 것을 멀리하는 수동적인 방어전은 또 다른 스트레를 낳는다. 몸과 자궁에 대해 잘 알고 이해하면서 즐길 수 있는 적극적인 방어전은 없을까?
1. 몸이 전하는 메시지에 귀를 열어라
의학적인 관점에서 자궁을 바라보기보다 과정의 관점에서 자궁을 바라보자. 몸이 세균과 질병 등에 취약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 의학적 관점이라면 몸은 자기치료 기능을 갖고 있고 질병은 내면의 인도자가 전해주는 신호라는 것이 과정의 관점이다. 자궁내막증, 자궁근종 등의 질병을 단지 의학적 사안과 치료해야 할 질병으로 취급해 적대적으로 대하지 않고 우리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몸이 전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질병이 생기는 이면에는 심리적인 요인이 있다. 20~30대 여성에게 점차 더 많이 나타나는 자궁 질환을 단지 외부적인 요인에서 찾기보다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보면서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미국의 의학박사인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여성의 몸이 갖고 있는 지혜를 이렇게 구분했다.
2. 몸을 움츠리기보다 움직여라
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서 ‘혹시 어디 아프지는 않을까’ 걱정할 시간에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명상이나 자궁을 위한 체조를 해보자. 한의사 이유명호씨는 (웅진닷컴 펴냄)에서 자궁 근력 키우기 체조를 제안한다. 첫 번째 동작은 요가에서 고양이 체위와 비슷한 동작으로 엎드려서 팔을 쭉 뻗고 가슴과 배는 바닥에 붙힌 채 엉덩이는 최대한 들어올려 고양이처럼 우아하게 스트레칭을 한다. 이 상태로 10초간 머물다가 한쪽 다리를 뒤로 최대한 든다. 양다리를 번갈아 해준다. 자궁과 내장하수, 치질 등에 효과적이다. 두 번째 동작은 반듯이 누워서 무릎을 세우고 엉덩이를 들어올리는 자세다. 복부, 엉덩이 등에 탄력을 준다.
피부관리에 좋은 찜질과 팩을 자궁을 위해서도 할 수 있다. 팥은 어혈과 부종을 제거해 염증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 먼저 팥 500g을 준비해 면자루에 담는다. 면자루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중간 정도의 온도에서 3~4분 정도 돌린다. 따끈해진 팥주머니로 아랫배를 찜질하면 생리통에 효과적이다. 난소 질환에도 좋다. 생리통이나 자궁근종에는 피마자유 팩도 좋다. 모나 면 조각을 네 번 정도 접어서 차갑게 만든 피마자유가 스며들게 한다. 피마자유가 스며든 천조각을 아랫배 위에 직접 갖다대고 그 위를 플라스틱 조각으로 덮어준다. 그다음 더운 물병 등으로 가열한 뒤 담요 등을 이용해 식지 않도록 하고 한 시간 정도 가만히 있는다. 일주일에 2~3번씩 아랫배에 피마자유를 이용한 팩을 하면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과 느낌, 이미지에 집중하면 효과를 볼 수 있다.
3. 고기 대신 채소를, 유제품 대신 과일을
자궁과 관련된 대부분의 질환에는 육류와 유제품이 ‘줄여야 하는 음식’으로 분류된다. 생리통을 앓는다면 유제품과 아이스크림, 요구르트 등을 끊는 것이 좋다. 육류나 달걀 노른자도 가능한 한 줄이거나 먹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궁내막증이나 자궁경부암 등의 질환에도 육류와 유제품은 좋지 않다. 육류와 유제품이 없어진 자리에 채소와 과일을 가져다놓자. 자궁내막증에 브로콜리, 양배추, 순무 같은 야채들이 효과적이다. 두부 등 콩제품도 효과가 있다. 자궁근종에는 과일과 야채 등 자연식품 위주의 식습관이 좋다. 이러한 식습관은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루에 1~2끼 정도 2~6개월 동안 지속하면 자궁이 천천히 변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식습관을 바꾸는 것이 힘들다면 복합비타민제라도 빼놓지 말고 복용하는 것은 필수다.
4. 1년에 한 번, 친구들과 산부인과 가는 날
병원 중 가장 문턱이 높은 병원이 바로 산부인과다. 산부인과에 들어가는 여성을 바라보는 묘한 사회적 시선 때문에 많은 젊은 여성들이 산부인과를 선뜻 찾지 못한다. 그래서 자궁에서 보내는 신호를 제때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무시하게 된다.
산부인과 전문의는 자궁에 관해 어떤 얘기든 나눌 수 있는 상대다. 속으로만 삼키지 말고 누구에게든 자궁의 신호를 전해야 한다. 산부인과의 문턱이 낮아지면 정기검진 역시 쉬워진다. HPV가 원인이 되는 자궁경부암은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가 가능하다. 1년에 한 번씩 정기검진만 꾸준히 받는다면 자궁 질환에 대한 두려움 역시 해소할 수 있다. 혼자 가는 것이 두렵다면, 매년 하루를 정기검진 받는 날로 정해놓고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는 것은 어떨까.
한 달에 한 번씩 신호를 보냈는데…
드라마 속 병희는 자궁근종이라는 얘기를 듣고 병원에서 피를 뽑으며 이렇게 혼잣말을 한다. “내 안에 자궁이 있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 내 안에 이렇게 중요한 게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자기를 봐달라고 신호를 보냈었는데….” 자궁이 보낸 신호는 ‘여기 이 부위에 지금 문제가 있어’라는 신호이기도 하지만 ‘너에게 요즘 뭔가 문제가 있어’라는 신호이기도 하다.
자궁은 단지 임신과 출산을 위한 기관이 아니다. 자궁은 여성의 내면세계와 강하게 연결돼 있고 자궁의 건강상태는 자신의 감정상태를 반영한다. 20~30대라고, 아직 젊다고 자궁이 보내는 신호를 그냥 넘기면 안 된다. 자궁에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몸과 마음이 화해하는 소리가 들릴 테니까.
도움말: 안산 한도병원 산부인과 안성탁 과장, 참고자료: (크리스티안 노스럽 지음, 강현주 옮김, 한문화 펴냄), (이유명호 지음, 웅진닷컴 펴냄), (존 리 등 지음, 이재철 등 옮김, 명상 펴냄>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경찰 투입해 언론사 봉쇄…윤석열, 이상민에 직접 지시”
[단독] 김용현, 군에 “계엄 불응하면 항명죄…대통령 뜻 받들어 명령”
구준엽 사별...23년 걸려 이룬 사랑과 “가장 행복”했던 3년
민주 박선원, 노벨평화상에 트럼프 추천…“한인 추방당할 판인데”
언론노조 “MBC 거악 맞선다며 차별 외면, 오요안나 유족에 사과해야”
구준엽 아내 서희원 숨져…향년 48
‘마은혁 불임명 선고’ 미룬 헌재...절차 완결성 갖추려 신중 행보
막무가내 대통령에 국가폭력 떠올려…“이건 영화가 아니구나”
미, 멕시코 관세 부과 한 달 연기…국경 보안 강화 합의
이상민은 계속 “행복”할까…포고령에도 없는 ‘단전·단수’ 들통 이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