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을 초토화시킨 FTA 출판사 식구들 얼굴에 생기를 사라지게 만든
▣ 김현경 그린비 편집주간
“우리 출판사 식구들 얼굴에 생기가 사라졌어요. 이래저래 FTA 나빠요-_-^” 사무실 막내인 영업부 직원이 3주 전쯤 사내 자유게시판에 남겨놓은 글이다. 를 만드느라 편집부 전 직원과 사장님까지 총 6명이 열흘간 하루에 3~4시간도 채 못 자는 강행군을 하고 있을 때였다.
평소 애교 많고 성대모사가 뛰어난 막내 직원은 사무실의 활력소 노릇을 톡톡히 했는데, 이 기간만큼은 그의 장기를 펼칠 수 없었다. 다들 퀭한 눈으로 정말 숨쉴 틈도 없이 교정지와 컴퓨터만 뚫어져라 보고 있으니 넉살 좋은 그로서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평소 우리는 책 한 권 만드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생산력이 그렇게 낮은데 먹고사는 게 용하다는 소릴 심심찮게 들어왔다. 그런 우리가 728쪽이나 되는 책을 열흘 만에 만들어내야 했던 이유는 7월10일부터 서울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2차 본협상이 열리기 때문이었다.
비록 초특급 태풍처럼 사무실을 초토화시켜 놓긴 했지만, 는 내게 ‘언론으로서의 출판’의 역할을 해냈다는 뿌듯함을 안겨주었다. 사실 단행본은 방송이나 신문·잡지 못지않은 언론매체로서, 한 이슈에 대해 비교적 지면과 시간의 제약을 덜 받고 자신의 생각을 풀어낼 수 있다는 뛰어난 장점이 있다. 단행본의 이런 장점을 깨달은 언제부턴가 나에게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안들에 대해 뒷북치지 않고 바로 그 현안이 문제되는 시점에 맞춰 여론을 형성하고 선도하는 책을 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겨났다.
한-미 FTA도 그런 현안 중 하나였다. 그러나 좀처럼 욕망을 실현할 기회를 잡지 못해 얼마쯤 좌절하고 있던 차에 우연히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와 연이 닿게 되었다. 이곳에서 국민보고서에 대한 출간을 제안받았을 때 무리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받아들였던 것은 그렇게 내내 내가 바라왔던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편집부의 팀워크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없었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 내리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열흘 동안 편집부 동료들은 이런 내 믿음이 착각이 아니었음을 온몸으로 보여주었다. 한마음으로 책을 만들던 우리는 한-미 FTA가 농업이나 의료뿐만 아니라 에너지, 물, 지적재산권, 환경, 노동, 교육 등 우리 삶의 모든 부문들에 미칠 영향에 대한 구체적 보고들을 보면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다들 교정지에 얼굴을 묻고 있는 한밤의 사무실에는 이따금 “미쳤어” “뭐야?” “휴~” 하는 소리만이 적막을 깨곤 했다.
지난 7월12일, 평소 같으면 영업부 직원들이 외근 나가고 가장 나른하고 조용했을 시간인 오후 2시 무렵, 모두가 모여 있는 사무실 안은 시끌벅적 떠들썩했다. “비옷 몇 벌 사와요?” “문구는 이걸로 하면 되나?” “글씨는 너 말고 편집장이 쓰는 게 낫지 않을까?” 등 산발적으로 터져나오는 질문과 엇갈린 대답들이 오가는 가운데 누구는 하드보드지에 글씨를 쓰고, 누구는 매직을 들고 왔다갔다 하고, 누구는 그 시끄러운 와중에 거래처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목소리를 높였다. 우왕좌왕하던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4시를 20여 분 남겨둔 때, 사무실의 막내가 사온 비옷과 비닐에 싼 피켓을 챙겨서 사장님을 포함한 전 직원이 사무실을 나섰다.
이날은 ‘한-미 FTA 체결 반대를 위한 제2차 범국민대회’가 시청 앞에서 열리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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