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쥐어뜯던 낮이 지나면 새 책 냄새와 함께 어둠이 찾아온다
▣ 이현화 한길사 편집부 차장
PC를 켠다. 나의 아침은 이메일 확인에서 시작된다. ‘사랑은 비를 타고’가 아니라 수많은 이메일이 인터넷을 타고 온다.
(수신) “000입니다. 제목안은 다시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꼭 제 의견대로 해달라는 건 아니지만 그 제목만큼은 고려해주셨으면 합니다.” (회신) “제목 짓는 것이 참 쉽지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맘에 드는 제목’이란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하는 생각이 늘 이맘때면 든답니다.
저도 다시 생각해볼 테니 선생님도 긍정적으로 다시 생각해주세요.”
(수신) “아무래도 약속보다 원고가 늦어지겠구려. 일본책에서 옛날 유럽 인지명은 늘 어렵기만 하다오. 저자와 직접 연락하고 싶으니 연락처를 알려주시우. 또 연락하리다.” (회신) “에 이어 또 어려운 책을 부탁드렸네요. 선생님께는 일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늘 배우게 됩니다. 일본 저자의 연락처는 ×××××××입니다. 부디 건강 살피시길.”
지중해가 일렁거리는 교정지에 코를 박는다. 그 바다에 온 정신을 쏟고 싶지만, 전화벨이 울리고 또 울린다. 이거야, 원. 일을 할 수가 있나. 전화가 없으면 세상은 어떻게 돌아갈까. 아차, 어젯밤 생각해둔 기획서를 써보자. 그럴싸했는데~. 어라, 왜 쓸수록 재미가 없지? 머리를 쥐어뜯고 싶다. 왜? 왜! 이 일은 할수록 더 어려워지는 걸까.
(수신) “책에 오자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자 알려주면 선물 안 주나요.” (회신) “지적해주신 건 다음 쇄에 꼭 고치겠습니다. 그런데 어쩌죠. 따로 ‘선물’을 드리기는 어려운데요. 대신 더 열심히 만들겠습니다. 그 열심을 선물 대신 받아주세요. ^^;; ”
(수신) “원고를 보냅니다. 출간이 될 수 있는지 한번 살펴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회신) “원고는 잘 받았습니다만 저희가 출간하기에는 아무래도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저희보다는 실용서를 많이 내는 출판사로 연락을 해보시는 것이 어떨는지요.”
필름 들어오다. 시작부터 지금까지 1년 반이 걸린, ‘노가다’와 ‘삽질’의 결정판. ‘한국미술 100만 년’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712쪽 올컬러. 자꾸 만지작거릴수록 책은 좋아진다는 건 맞다. 아~ 그래도 정도껏이죠, 라고 같이 일하는 친구가 비명을 지른 바 있다. 한국미술사의 기념비적인, 전무후무한 책이야, 왜 이러셔! 말은 이래도 그 비명은 내 속에서도 울렸다. 그저 탈없이 흠없이 세상빛을 보거라, 비는 맘 간절하다. 산처럼 쌓인 필름 앞에 서 있으니 적진 앞에 선 장군이 된 것 같다. 음하핫.
(수신) “을 읽었습니다. 역시 브로델이군요. 좋은 책 잘 읽었습니다.” (회신) “고맙습니다. 덕분에 책 한 권 붙잡고 3년여 동안 보낸 세월이 헛고생은 아니었구나, 어깨에 힘이 저절로 들어갑니다.”
(수신) “□□□입니다. 드디어 원고를 보냅니다. 저는 이제 좀 쉬렵니다.” (회신) “고생하셨어요.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군요. 선생님의 휴식이 부럽네요. 달콤한 시간 되시길.”
필름을 다 보고 나니 눈이 빠질 것 같다. 드디어 끝난 거야? ‘100만 년’의 역사가? 진정? 뭐지, 이 허탈함은? 온몸을 비틀며 기지개를 크게 켠다. 고단한 하루였다. 휴~.
P.S. 차창 밖으로 보이는 출판도시의 밤은 유난히 검다. 제본소에서 들어온 새 책의 앞뒤를 두 손바닥을 넓게 펴 찬찬히 쓰다듬는다. 배꼽부터 목까지 따뜻한 기운이 차오른다. 이 느낌을 사랑한다. 누군가 다시 돌아가도 책을 만들 거냐고 묻는다면 답 대신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아주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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