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편집자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은 3년
▣ 문선휘 책세상 편집장
요즘처럼 눈이 부시게 하늘이 파래지면 모두들 그렇듯 나 역시 반복되는 일상에서 탈출하는 꿈을 꾼다. 마감이나 회의를 호기 있게 제쳐두고(이 부분이 중요하다!) 고즈넉한 호숫가 같은 곳에 자리를 펴고 앉아 바람에 일렁이는 물결을 느긋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편집자의 일상은 활자와의 싸움에서 시작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교정지와의 씨름에서 벗어나 이제 끝났구나 하고 한숨 돌리고 나면 어느새 다른 원고를 손에 쥐고 있다. 마치 에셔의 (Drawing Hands)처럼 말이다. 이렇게 반복되는 일상은 염증으로 이어지고 이 염증은 간혹 사람을 슬럼프에 빠트려 급기야 책이 좋아 출판사에 들어왔다는 사람의 마음에 책에 대한 미움을 심어놓기도 한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책 만들기 과정에서 수공업적 특성을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유일한 부분이 아마도 좁은 의미의 편집, 사람이 직접 읽고 만져야 하는 부분일 것이다. 흔히 사회 초년생에게 하는 말(이것도 아마 일상에서 느끼는 지겨움에서 비롯된 말이 아닐까 싶다) 중에 사회생활 첫 해 1년이 가장 힘들고 그 다음이 3년, 6년, 9년째가 힘들다는 말이 있다. 출판계는 여기에 하나가 더 덧붙여진다. “한 사람의 편집자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3년이 필요하다.”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차이가 날 수 있지만 대개 3년이 소요된다. 3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이 기간 동안 반복되는 편집의 일상들이 켜켜이 쌓여 편집자는 비로소 혼자서 책을 만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장기 때 뼈는 아주 빠르게 성장하는 데 반해 뼈 주변의 근육과 인대는 상대적으로 느리게 성장해 근육과 힘줄이 당겨져서 생기는 통증을 성장통이라 한다. 나는 반복되는 일상이 주는 염증과 싸우는 과정이 한 사람의 편집자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한다.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맞춤법을 잘하는 방법, 무식할 정도로 무작정 외워라. 그리고 책 많이 읽어라.” 처음 이런 이야기를 듣는 신입사원의 얼굴은 ‘뭐 별거 아니네’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막상 몸으로 부딪히기 시작하면 해사했던 얼굴빛은 점점 짙어지는 다크서클로 인해 칙칙해져간다. 그리고 ‘나는 왜 이리 무식할까’라는 반성에서부터 자괴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정서적 추락을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신체적·정서적 성장통을 겪으면서 신입 편집자는 한 사람의 전문가로 성장하게 된다.
예전에 후배들과 저녁을 먹다가 어느 한 후배가 반복되는 편집의 지겨움을 토로하면서 너무 힘들어 그만두고 싶다고 말했다.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다른 후배가 이렇게 말했다. “그것조차 즐겨야 진짜 프로인 거야.” 편리와 속도가 미덕인 시대이긴 하지만 지루할 정도로 반복되는 훈련의 과정, 그 과정 속에서 아주 천천히 습득하게 되는 재미를 즐길 수 있게 될 때 비로소 자신이 바라는 가치를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 친구는 이 한마디로 표현해낸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지루한 일상을 자신의 에너지로 전환하는 멋진 방법이 아닐까 싶다.
출판사에 다닌다고 인사를 할라치면 종종 듣는 말이 있다. “정말 편집자처럼 생기셨군요.” 편집자에게 편집자답다고 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존중과 인정(認定)의 말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말이 왠지 듣기 불편하다. 이 말은 내게 ‘당신은 앞뒤가 꽉 막힌 재미없는 사람이군요’로 들린다. 나는 어쩌면 아직까지 편집 일을 제대로 즐기는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지금은 듣기 싫은 이 말을 언젠가는 즐길 수 있는 날이 오리라. 오늘도 하늘은 푸르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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