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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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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는 ‘침실’에 집중한다

등록 2006-07-13 00:00 수정 2020-05-03 04:24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고만고만한 인테리어는 이제 그만… 자연주의·재즈·중국풍… 옷 한 벌 마련하듯 유쾌하게 욕망을 드러내자

▣ 김주원 (주)이몽기가 대표·소장 jwkim@imgg.co.kr

내 절친한 친구 동생이 어느 날 나에게서 받은 사소한 도움에 대한 감사의 표시라며 물건 하나를 주려고 했다. 까만 비닐봉지 안에 신문지로 꽁꽁 싸둔 그 물건들 중 하나를 내게 골라 가지라고 내밀었는데, 소중한 보물 다루듯 조심스럽게 펴든 그것은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 아닌가.

유적 발굴 조사에서 주워들고 온 그 파편들은 그 아이에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물건임이 틀림없겠지만, 나로서는 표정관리가 안 되는 곤혹스러운 순간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 녀석은 깨어진 도자기 파편이 세상의 전부가 될 수도 있는 전혀 다른 세상 하나를 내게 내민 것이었다. 자기만의 세계를 나와 나누어가질 요량으로.

당신은 특별한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는 세계의 주인으로 오롯한가.

거실·주방에 몰리는 인테리어 우선순위

주거공간 인테리어를 의뢰하는 사람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우선순위가 있다. 거실과 주방, 욕실이 순위의 첫머리에 놓이고, 그 다음이 침실이다. 기준은 명확해 보인다.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공간에 가장 집중하며, 개인의 공간들은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그렇게 우리들의 침실은 고만고만해진다. 침대 하나, 붙박이장 하나, 화장대 하나, 책상 하나.

침실은 가장 사적인 공간으로 알려져 있으며, 여기에 반박하기란 쉽지 않다. 침실의 주인이 각기 다른데 왜 침실은 모두 고만고만한 모습으로 떠오르는가. 더구나 개성을 강조하는 시대다. 일견 개성적인 모두가 같아 보여서 헷갈리는 시대다.

어른들은 요즘 사람들은 너무 개인적이 되어서 문제라 말씀하신다. 개인적이라… 우리가 진정 개인적인 적이 있었던가. 오히려 지극히 개인적이지 않은 사고가 온통 개인의 삶을 지배하며, 사회적 관습과 관계를 벗어나 오롯이 자신과 맞닥뜨리는 기회가 너무 적었던 것이 아닐까. 침실을 꾸밀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주어진다 한들, 우리가 유행을 참조하지 않고 3.5평 공간을 채울 수 있을까. 그리고 그 공간에 나와 관계되는 특별한 의미의 이름을 지어 부를 수 있을까.

침실을 포함한 주거공간의 인테리어란 일종의 욕망이다. 욕망이란 단어를 이렇게 쉽게 내뱉게 되기까지 참 오래 걸린다. 그것을 삶의 유쾌한 동인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위선을 걷어내야 하는지. 그렇게 발가벗겨진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고, 기꺼이 즐겨라.

욕망의 과정은 깨닫는 것과 드러내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욕망을 드러내기에 앞서 내 속의 그것을 끄집어내 깨달을 때 그것은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다. 이것 없이 드러냄만 있는 욕망이라면 ‘유행’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욕망이 갖고 있는 긍정적 에너지의 기반은 깨달음이다. 나를 찾아가는 과정, 나와 관계를 구성하는 헤게모니를 깨닫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솔직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일련의 행위. 욕망이 긍정될 수 있는 이유다.

인테리어를 소비와 직결되는 욕망의 코드로 보는 시각은 유용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집에 관련된 생각은 다분히 보수적이어서, 인테리어를 소비재로 생각하게 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셈이다. 집의 개념이 소유에서 거주로 바뀌면서 인테리어는 드디어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졌다. 다시 말해 ‘집=부동산=재산’이라는 등식에서 ‘집=삶의 그릇=즐겁게 소비함’이라는 코드로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바깥 세계와의 단절, 둔탁한 덧문으로

‘짜장면’과 ‘탕수육’이라는 단어는 내 어린 시절 욕망의 기호다. 이 국적 없는 중국 음식이 가지고 있는 60, 70년대 욕망의 대표성, 그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더 넓은 범위로 확산되어간다. 몸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에서 몸에 걸치는 물건들로 욕망의 배출은 자리를 옮긴다. 80년대 초, ‘나이키 운동화’가 갖고 있던 엄청난 매력을 기억하는가. 이후 오늘날의 명품 열풍까지, 몸에 걸치는 물건들과 조금씩 몸에서 떨어져나온 물건들에 이르기까지 욕망의 표현은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몽블랑 만년필과 호두나무 원목책상이 놓인 서재, 이런 것들이 단순히 필기구와 책 읽는 곳이라고 생각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물건들은 성공한 남자의 상징처럼 인식되는 것이어서, 곧 자신을 정의하는 확장된 범위에 속한다. 욕망이란 자기의 드러냄과 다름없다.

이런 맥락에서 이해하자면 인테리어는 신체에서 떨어져나와 있으되 그 소유자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제일 큰 껍데기 같은 것이다. 하물며 인생의 3분의 1의 시간을 기거하는 침실의 공간환경이란 곧 ‘나 자신’이라고 할 만하다. 중요한 것은 본질적으로 옷 한 벌과 마찬가지로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껍데기’라는 것이다.

나는 훌륭한 침실의 첫째 조건으로 외부 세계와의 차폐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가 없는가를 꼽는다. 침실의 인테리어를 위해 내가 권하는 첫 번째 아이템은 덧문이다. 블라인드처럼 생긴 목재 갤러리는 날개의 각도에 따라 햇빛뿐 아니라 전망을 조절하며, 무엇보다도 그 뒤쪽에 있는 창과 바깥 세계를 연상시키지 않는다. 목재 갤러리를 움직일 때 내는 조금 둔탁한 ‘찰칵’ 소리도 훌륭하다. 꼭 이런 방식이 아니라도, 침실은 언제든지 원할 때 바깥 세계로 향한 출구를 닫을 수 있어야 한다.

침실의 스타일을 결정할 때, ‘집중’의 원칙을 들고 싶다. 무엇이든 한 가지 원칙을 세워 그것에 집중하라. 편안한 휴식을 위한 자연주의를 침실의 테마로 정했다면, 베개에 넣는 솜까지 100% 자연에서 온 물건이어야 제격이다. 1920년대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벽면을 새까맣게 칠한 뒤 당시의 풍경이 담긴 흑백사진들을 걸어놓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리라. 붉은 공단이 머리 위로 드리워진 침대의 주인을 만난다면, 나는 그녀를 고대 중국 공주의 환생으로 여기리라. 스타일은 선택과 결정의 문제다. 집중하여 완성하자.

침실의 기능에 대해서도 한번 생각해보자. 명칭으로만 본다면 거실은 ‘머무는 곳’임에 비해 침실은 ‘잠자는 곳’이다. 거실에 있다가 잠자기 위해 침실로 갔는데, 잠 못 드는 밤이면 어떻게 하나. 잠이 올 때까지 양 한 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되뇔 필요는 없다. 침실을 또 하나의 거실로 생각하면 조금 더 풍족한 아이템을 침실로 끌어들일 수 있다. 붙박이장의 일부를 미니 서재로 변형해 침실을 서재로 겸용해 쓰는 것도 최근의 변화다. 물론 넉넉하지 못한 공간을 쪼개 쓰다 보니 생긴 현상이겠지만. 다목적은 한 가지 목적에 비해 복잡하다. 그리고 표방하는 ‘많은’ 목적 중 어느 한 가지도 만족스럽지 못할 위험성도 있다. 침실을 다목적으로 사용하는 경우라면, 단순히 여러 가지 목적이 섞여 있는 것 이상의 배려가 필요하다. 가장 쉬운 솔루션은 천장에 있는 침실등을 떼어내는 것이다. 온 방을 밝히고 있는 천장등을 떼어낸 다음, 침대 머리맡을 밝히는 조명, 특별한 작업을 위한 곳을 밝히는 작업등, 침실 한켠 반쯤 드러누울 수 있는 의자 옆에 서 있는 플로어스탠드 등. 불을 밝히는 것에 따라 ‘현재 작동 중이지 않은 기능’을 어둠 속에 잠시 묻어둘 수 있다.

나의 환경을 지배하길 두려워 말라

침실의 인테리어란 분명 존재한다. 그리고 두 가지 정도의 생각을 고쳐먹는다면, 당신의 침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당신답게 될 것을 확신한다. 첫째는 원하는 것을 행하라. 환경을 지배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시작이 바로 자신의 침실이다. 인테리어? 별거 아니다. 그저 옷 한 벌 정도에 불과한 나의 또 다른 껍데기일 뿐이다. 사실 ‘행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진 첫 번째 제안은 두 번째에 비하면 비교적 쉽다. 어려운 두 번째는 원하는 것을 행하라.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면, 나머지는 식은 죽 먹기다. 내 가장 내밀한 곳에서 웅크리고 있을 ‘나’를 정면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용기를 갖자. 이곳에서까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한 자아를 움켜쥐고 있을 필요는 없잖은가.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유쾌하게 욕망하라. 침실만이 가진 내밀한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라.



천장에 붙은 중앙등을 떼어내라

개성 있는 침실을 만드는 몇 가지 팁

1_ 천장에 붙은 중앙등을 과감히 떼어낼 것
우리나라 주택의 조도는 전반적으로 매우 밝은 편이다. 모든 곳을 밝히는 것은 아무 곳도 밝히지 않는 것과 같다. 중앙등을 떼어내고, 벽부등, 플로어스탠드, 독서등, 테이블스탠드 등을 이용해 조도가 필요한 곳을 국부적으로 밝혀보자. 조명만으로 침실 분위기가 훨씬 살아날 것이다.

2_ 벽지 선택은 생각보다 훨씬 과감하게
좁은 공간에는 밝은 벽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을 상식으로 알고 있겠지만, 의외로 짙은 색감의 벽지와 차분한 조명은 침실 분위기를 훌륭하게 변화시킨다. 침대 뒷벽 등 한 벽면만을 포인트벽지로 사용하는 예가 많은데, 오히려 포인트벽지로 써야 할 것 같은 과감하고 색감 있는 벽지로 침실의 사면 전체를 마감하는 게 색다른 느낌을 줄 수 있다.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과감하게 선택하는 것이 좋다.

3_ 디스플레이 공간 확보로 나만의 개성을
침실의 디스플레이 공간은 자기만족 같은 것이다. 한쪽 벽면을 이용한 갤러리, 침대 뒷공간을 이용한 소품 전시, 벽면 가구라면 중간 부분을 비워낸 형태, 벽에 거는 선반 등 디스플레이 공간을 만들자. 여기에 나의 분신과도 같은 수집품들을 멋지게 전시해보면 어떨까. 별도의 공간이 아니더라도, 낮은 서랍장 위에 우리 가족사를 담은 의미 있는 사진들을 작은 액자들에 넣어서 세워두는 것도 훌륭한 디스플레이다.

4_ 외부 세계와의 차단을 확실하게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양의 빛을. 내가 원한다면 나는 언제나 나의 둥지로 숨어들 수 있어야 하며, 그곳은 세속적 시공간과 동떨어지기를 바란다. 덧문을 달기 어렵다면, 커튼 선택에 신중을 기하자. 목재 갤러리로 만든 우드블라인드도 좋고, 셰이드와 롤블라인드 종류도 뒷면이 암막 처리돼 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제품을 권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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