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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여’ 배우의 투쟁

등록 2006-03-18 00:00 수정 2020-05-03 04:24

<수잔 서랜던> 불같은 행동주의의 원천을 살펴보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2000년 미국 대선에서 수잔 서랜던이 앨 고어가 아니라 랄프 네이더의 손을 들어주고 욕을 얻어먹은 것은 그의 역사에서 ‘결정적 장면’이었다. 선택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는 할리우드의 아름답고 평온한 자유주의 취향에 선을 그었다. 그에 대한 세간의 의문들은 이것으로 요약된다. “대체 어디서 이런 ‘물건’이 나왔을까?”

‘행동주의’와 ‘할리우드 배우’의 결합은 늘 낭만적이거나 희극적이다. <수잔 서랜던>(마크 샤피로 지음, 손주희 옮김, 프로메테우스 펴냄)은 ‘행동주의자 할리우드 배우’ 수잔 서랜던을 꽤 객관적으로 살펴본 평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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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평이한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한 배우에 대한 통찰이 아니라 정보다. 보수적인 가톨릭 가정의 맏딸로 태어났고, 당연히 불화를 겪었고 “한 번도 배우가 되고 싶었던 적은 없었지만” 뉴저지 땅을 벗어나기 위해 워싱턴 D.C.의 가톨릭대학에 입학해 연극을 전공했다. 자신에게 성을 준 ‘크리스 서랜던’이란 배우를 대학에서 만난다. 그리고 여기서 미국의 베이비붐 세대가 받은 68혁명의 물결을 맞는다.

배우로서 수잔 서랜던의 삶은 끊임없는 ‘불화’다. 그는 안전하고 수입이 보장되는 프로젝트를 외면하고 말썽 많은 작품들만 골라냈다. 그리고 자신의 캐릭터를 위해 제작사나 감독과 충돌을 거듭했다. <조> <록키호러픽처쇼> <델마와 루이스> 등등. 그는 귀엽고 순종적인 캐릭터뿐 아니라 자신이 페르소나가 되기에 적합해 보이는 판에 박힌 활동가 여성의 캐릭터도 거부했다(그러나 오스카 트로피를 안겨준 작품은 결국 <데드맨 워킹>이었다). 그리고 그가 원하든 원하지 않았든 늙을수록 예뻐지는 배우가 되었다.

행동가로서 수잔 서랜던의 삶은 뜨거운지 알면서 불 속에 뛰어드는 이상주의자의 모습이다. 그 첫 전기는 니카라과 콘트라반군 지원반대 투쟁이었다. 이때부터 그는 철저히 문제를 파악하고 뛰어드는 원칙을 세우기 시작한다. 에이즈 퇴치운동이나 동성애 인권운동, 랄프 네이더 선거운동에 이르기까지 그는 배우로서의 명성을 운동에 이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여기서 한 가지. 아룬다티 로이가 자신의 이름 앞에 붙은 투사의 수식어를 거부하고 ‘작가’임을 주장했듯, 수잔 서랜던도 배우다. 배우는 대중에게 카타르시스와 웃음뿐 아니라 진실도 보여준다. 또 한 가지. ‘여’배우가 자신의 정치적 주체를 드러내는 것은 할리우드에서도 악재다. ‘봉사’가 아니라 정치 말이다. 그는 아마도 최초일 것 같은 전형을 만들어냈다. 그가 할리우드의 아주 작은 면죄부든, 어떻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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