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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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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구름 온다, 빨래를 걷어라

등록 2005-10-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아직도 가을 하늘 구름을 파란색 도화지의 흰 그림 보듯 하시나요
입체적 메커니즘을 알면 평면적 아름다움 넘는 황홀경이 발견된다

▣ 글·사진 이대암/ 일본 동아천문학회 회원·<구름 쉽게 찾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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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이라는 가을에 대한 상투적인 수식어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다. 예전에는 이때쯤이면 어느 글이건, 인사말이건 그리고 방송용 멘트에서도 빠지지 않는 문구였다. 이 말은 ‘가을이 되면 하늘이 높아지고 말이 살찌듯이 여름내 더위로 잃었던 식욕이 되살아난다’는 뜻이다. 이처럼 가을의 단골 수식어가 서서히 사라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나라 인구의 3분의 2 이상이 하늘이 항상 뿌연 대도시에, 그것도 종일 지하도와 사무실, 앞뒤가 꽉 막힌 아파트에서 살다 보니 하늘이 점점 높아지는지 어쩐지 알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말(馬)이 살찐다’는 말(言) 역시 자동차 문화의 전성기에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정서적으로 잘 어울리지 않아 어느덧 ‘사어’의 길로 접어드는 것 같다.

하늘이 높다? 대기 투명도가 높다!

그건 그렇다 치고, 가을이 되면 진짜 하늘이 높아지는 걸까? 사실 하늘이 높아진다는 것은 문학적 표현일 뿐, 과학적으론 가을이 되면 여름철보다 대기 투명도가 더 높아진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또 여름 내내 남태평양 상공에서 발달해 올라온 고온 다습했던 공기가 점차 시베리아쪽에서 밀려오는 찬 공기에 밀리면서 하늘에 떠다니는 구름의 모습도 많이 바뀌기 때문이기도 한데, 즉 가을 하늘이 높게 느껴지는 이유는 여름철의 고온 다습한 수증기가 만들어냈던 낮은 구름들이 점점 높은 구름들로 바뀌면서 하늘 끝이 더 아득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계절에 따라 하늘에 출현하는 구름의 종류가 전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구름의 모습이 밤하늘 별자리처럼 계절에 따라 일정한 모습으로 달라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단지 발생 빈도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여름철 구름의 대명사인 뭉게구름이 겨울에 전혀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며, 여름에도 대기 조건에 따라서 권운처럼 높은 구름이 나타나는 일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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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의 세계기상기구(WMO)는 구름의 종류를 크게 10가지로 나누고 있는데, 구름이 형성되는 높이를 기준으로 한다. 2km 이하의 낮은 하늘에서 형성되는 구름을 난층운과 층운, 층적운으로 나누고, 2∼7km의 하늘에서 발생하는 중간층의 구름을 고적운과 고층운으로, 그리고 7∼13km 최상층의 구름을 권운, 권층운, 권적운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적운이나 적란운처럼 구름이 수직으로 형성되는 것은 별도로 구분하기도 한다.

사실 지상에서 13km 상공에 걸쳐 여러 층으로 형성되는 구름을 인간의 눈만으로 어떤 높이의 구름인지를 판가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구름을 자연의 오브제로만 가치를 부여하는 낭만적인 사람들에게 세세한 구분은 오히려 불필요한 작업일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눈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지 않던가? 파란색의 도화지 위에 흰색 연필로 그린 것처럼 느꼈던 평면적 아름다움은 구름 형성의 입체적 메커니즘을 알고 나면 마치 ‘요지경 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이런 표현도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다) 황홀하고 경이롭기 그지없다.

구름의 높이에 따른 위계관계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방법은 비행기를 타고 하늘에서 관찰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민간 항공기는 안정된 항로에서 고도 8km 부근을 나는데, 이 높이는 높은 구름과 중간층 구름의 사이로서 권운과 고적운을 관찰하기에 최적의 방법이다. 즉, 비행기보다 높은 곳에 있는 구름은 권운 계통이고, 비행기 바로 아래에 형성된 구름이 보인다면 그것은 고적운이다. 실제론 고적운이나 권적운은 구름 모양이 거의 같기 때문에 지상에서는 운편(구름 조각)의 크기로 구분해야 하는데, 형태가 거의 같으면서 운편의 크기만 다른 것을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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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 자주 출현하는 구름 중에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양떼구름은 거의 고적운에 속하며, 조개구름(또는 비늘구름)은 권적운과 고적운에 모두 해당되기 때문에 헷갈리기 쉽다. 이때는 운편의 크기도 판단 기준이 되지만 운편의 밝기를 보면 권적운의 운편이 훨씬 반짝거림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도가 높을수록 구름의 입자가 물방울이 아닌 빙정에 가까운 상태여서 금속적 광택을 띠기 때문이다.

높이 따라 10가지, 모양 따라 양떼·조개

구름은 높이에 따라 크게 10가지로 구분되기도 하지만, 워낙 그 형태가 다양하고 재미있기 때문에 형태에 따른 변종도 각양각색이다. 꼬리가 길게 늘어진 꼬리구름(학명 vir)이 있는가 하면, 파도치는 모양의 파도구름(un), 렌즈 모양을 한 렌즈구름(len), 벌집구름(la), 동물의 젖꼭지 모양으로 생긴 유방구름(mam) 등이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형태적 특징을 기준으로 붙여진 이름이지만 사실은 기상현상을 그대로 반영해 일기예보를 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즉, 렌즈구름이나 벌집구름 등이 보이는 날은 기온이 내려가며 쾌청한 날을 예고한다. 유방구름이 목격되면 빨래를 넌 사람은 빨리 걷어야 하고, 소풍을 간 사람들은 서둘러 짐을 꾸려야 한다. 왜냐하면 유방구름은 구름 중의 물방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풍선처럼 부풀어 내려온 현상이기 때문에 이 물방울이 곧 떠지면서 지상으로 떨어지게 된다. 따라서 유방운이 발생하면 10∼20분 내에 반드시 소나기가 내린다는 징조다.

청운일까, 뜬구름일까… 꿈을 꿔보자

이와 같이 하늘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구름을 관찰하는 재미도 있지만, 구름으로 인해 만들어지는 다양한 광학적 현상을 찾아보는 것도 흥미롭다. 지난 9월15일 조계종 총무원장이었던 법장 스님의 영결식 때 나타나 화제를 모았던 햇무리는 권층운에서만 가능하다. 태양의 주위에 오색찬란한 원형 테두리를 만드는 풍경이다. 이 밖에 태양이 불기둥처럼 솟아오르는 태양주 현상, 태양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무지갯빛이 나는 환일 현상 등은 세심한 관찰력을 요하기도 하지만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기 때문에 행운이 따르지 않으면 볼 수 없다. 특히 환일은 5~6년에 한번 목격할 정도로 진귀한 현상이다.

무엇보다 전형적인 하늘은 구름 한점 없는 푸른 하늘이다. 그래서 가을은 구름을 관찰하기에는 어쩌면 가장 불리한 계절인지 모른다. 그러나 가을 하늘에 그려지는 구름들은 유난히 선명하고 화려하다. 오랫동안 우리는 인생의 꿈을 ‘청운’(靑雲)이라 표현해왔다. 그런가 하면 허황된 꿈을 일컬어 ‘뜬구름’이라 한다. 이 가을에 우리가 꾸는 꿈이 ‘청운’인지 ‘뜬구름’인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것은 자기가 꾸는 꿈은 청운이고 남이 꾸면 뜬구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가을에 우리 모두 하늘의 구름을 바라보며 멋진 꿈을 꿔보자.



멋진 구름사진 찍어보자

초보자는 20~80mm 줌렌즈, 웅장한 모습은 초광각렌즈로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구름은 총알처럼 빠르다. 뭇 사람들에게는 느려터진 게 구름이지만, 정작 카메라를 들고 달려들면 훌쩍 도망가버린다.
20년째 구름 사진을 찍으며 지난 7월 <구름 쉽게 찾기>라는 구름 도감을 낸 이대암씨는 “특히 노을에 물든 구름은 1~2분 만에 다른 분위기로 바뀌기 때문에 보는 즉시 찍어야 한다”며 “나는 좋은 구름이 보이면 곧바로 고속도로 갓길에 차를 세우고 찍을 정도”라고 말했다.
구름이란 피사체는 넓은 범위와 밝은 하늘을 배경으로 하기 때문에 스냅사진만으로도 좋은 작품을 만들 수 있다. 렌즈는 넓은 하늘을 잘 살리는 광각렌즈가 좋지만, 일반 줌렌즈나 표준렌즈도 괜찮다. 이씨는 “초보자에게는 20~80mm의 줌렌즈가 좋으며, 적란운처럼 거대하고 웅장한 모습일 경우 초광각렌즈가 유용하다”고 충고했다.
심도 깊은 사진을 위해서 조리개는 될 수 있으면 조인다. 입자가 고운 감도(ASA 50)의 필름이 구름의 디테일을 살려주긴 하지만, 흔히 쓰이는 ASA 100도 문제없다.
이도저도 복잡하다면 디지털 카메라가 최고다. 물론 기계식 카메라가 주는 사진의 입체감을 따라가진 못하지만 말이다. fand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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