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이 가을에 절절하게 다가오는 사랑의 시와 사랑에 목맨 시인들
데이비드 보위부터 신동엽까지 쓸쓸함을 견디게 하는 노래여</font>
▣ 신현림/ 시인
어떤 이에겐 대수롭지 않은 가을바람이 다른 이에겐 절절하게 와 닿는다. 어떤 이에게 대수롭지 않은 노래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절절히 와 닿은 노래였다.
지금 내 방식으로 해석한 노랫가사는 한 편의 시로 다가온다. 좀더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은 이 노래가 시는 아니라 할 것이다. 그래도 나는 가슴을 울렁거리게끔 문학적인 향기가 조금이라도 배여 있으면 시로 생각한다. 그리고 시는 노래로 불려질 때 더욱 의미 있으므로.
몸 밖으로 거친 바람 소리가 흐르고, 마음을 휘감는 노래가 조금씩 사무쳐온다. 수증기처럼 젖어드는 슬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데이비드 보위의 <와일드 이즈 더 윈드>.
<font color="008080"> 나를 사랑해주세요./ 나로 하여금 당신과 함께/ 멀리 날아가게 해주세요./ 당신과 날아가고 싶은데/ 사랑은 바람과 같은 것이죠./ 그 바람은 거칩니다./ 좀더 나를 애무해주고/ 나의 갈망을 채워주세요./ 그 바람이 당신의 심장으로 날아들게 해주세요./ 바람이 거칩니다/ 당신이 나를 만집니다 만돌린 소리를 듣습니다/ 당신의 키스로 나의 삶은 시작됩니다./ 당신은 나에게 봄입니다./ 나에게 모든 것입니다./ 당신은 모르시나요./ 당신은 삶 그 자체라구요./ 내 인생의 전부입니다./ 나무에 나뭇잎이 매달린 것처럼./ 나에게 다가오세요. 나에게서 떠나지 마세요./ 우리는 바람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죠/ 바람이 거칠어요. </font>
봄으로 오는 당신. 스스로에게 모든 것인 당신은 언제나 누구나 꿈꾸는 대상일지 모른다. 지금보다 더 나이를 먹어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돼도 사랑이란 접어둘 수 없는 그리움일 텐데, 사랑의 대상을 만나기도 힘들지만 오직 사랑만을 열망하기엔 삶이 여유롭지 못하다. 그래도 이런 간절함이 밴 노래를 듣고 천천히 노랫말을 헤아리게 되면 가슴이 벅차도록 격정이 몰려온다. 이것 자체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자기 생긴 대로 사랑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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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크 록의 개척자들이자 내가 시인이라 생각하는 이기 팝과 루리드. 데이비드 보위는 그들과 견줄 새로운 생명력을 갖기 위해 실험적인 음반들을 만드는 데 전력을 다한 영국 가수였다. 그가 부른 위의 노래는 실험성보다 대중적인 친밀감이 큰 작품이다. 팝의 세계에서의 시적 감성과 문학 속의 시적 감성이 어떻게 다른지 그 미묘하고 절대적인 차이가 분명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세상의 시를 살펴보겠다. 특히 몹시 가을을 타는 사람들에게 그리운 시집과 시들은 뭐가 있을까. 그래도 내겐 랭보와 보들레르, 파블로 네루다, 김소월과 백석, 김수영과 신동엽 등의 시들을 꼽고 싶은데, 여기선 다 소개해드릴 수 없음이 아쉽다.
<font color="008080"> 나는 당신에게
이 뿌리 젖은
바다의 가을을 선물받았소
포도와 같은 안개와
야생의 우아한 태양도 당신이 준 것이오
모든 고통이 잊혀지는
이 말없는 상자도 당신이 내게 준 선물이오
고통을 잊고 당신의 이마에는
즐거움의 꽃이 피어나지
이 모든 행복은 당신이 내게 준 것이오 </font>
이렇게 파블로 네루다의 시 ‘가을의 유서’를 읽다 보면 유서를 쓰듯이 절절하게 온 마음을 다해야 사랑임을 새삼 깨닫는다.
잉크가 아닌 피로 쓰인 시라는 네루다의 시를 읽다 보면 웬만한 시가 눈에 안 들어온다. 스케일 면에서나 상상력과 감성의 크기가 신적인 것과 연결된 것만 같다. 거대한 영혼의 울림이 느껴지는 그의 시. 숭엄한 삶과 사랑 앞에 인간의 기품이나 품위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내 생활의 콘셉트가 ‘기품 있게, 품위 있게’란 대목이어선지 모르나 아주 깊은 혼의 골짜기에서 길어올린 듯이 기품 있는 영혼의 시. 언제나 열렬히 압도해온다.
<font color="008080">아아, 불을 퍼뜨리는 카아네이션의 화살이여,
나는 그대를 소름의 장미나 토파즈처럼은 사랑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무언가 어슴프레한 것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도 남몰래, 그림자의 영혼의 갈림길에서 그대를 사랑한다
꽃을 피우지 않고 그 꽃의 빛을 몸 안에
숨기고 있는 나무와 같은 그대를 나는 사랑한다
그리고 그대의 사랑 덕분에 나의 몸 안에서는
땅 속에서 떠오른 짙은 향기가 아련히 숨쉰다
왜, 언제, 어디인지 모른 채 그대를 사랑한다,
아무런 의문도, 오만도 없이 주저 없이 그대를 사랑한다 </font>
이 시에서 “사람들이 무언가 어슴프레한 것을 사랑하는 것”이란 시귀는 사랑의 핵심으로 보인다. 다 알면 뻔하고 심드렁해진다. 연막탄이 터져 연기가 다 사라지기 전 아련한 상태까지 사랑의 신비가 아닐까. 솔직하게 사랑하되 다 보여주지 말 것. ’의문도, 오만도 없이 주저 없이‘ 사랑하되 매력을 잃지 말 것. 이렇게 사랑에 대해 아는 게 많은 것처럼 보이는 자가 실전에 약할 수 있다. 이도 저도 머리가 아프다 싶으면 자기 생긴대로 사랑하면 된다. “다른 방법으로 사랑할 줄 모르므로.”
서정시인 신동엽
네루다는 스무살 때, 슬픈 사랑의 시, 버림받은 남자의 노래인 <스무편의 사랑의 시와 하나의 절망의 노래>를 썼다. 그로부터 30년 지난 뒤에 쓴 <사랑의 소네트>. 위 시는 그 소네트 중의 한 편으로 네루다 초기의 육감적이고 열정적인 사랑과는 달리 짙은 향기가 아련히 숨쉬는 사랑을 찬미했다.
1904년 칠레에서 태어나 솟구쳐오르는 격정과 폭발적인 상상력으로 라틴아메리카 민중의 꿈과 현실을 그려 노벨문학상을 탔다. 가난하게 살았고 매우 서민적인 분위기에서 사춘기를 보냈으며 어른이 되어 도시의 비인간화를 뼛속 깊이 체험한 그의 감각과 감성의 뿌리가 민중에 내리뻗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사랑의 대상은 그의 연인이기도 하지만 조국이나, 민중, 대자연이기도 하다.
아주 오랫동안 내 방엔 네루다가 그의 세 번째 부인 마틸데 우르티아와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우르티아와 네루다가 포옹을 한 채 서로 응시하는 표정엔 끈끈하고 신비스런 애정이 느껴져 아름다웠다.
우리나라의 신동엽 시인의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엔 내가 사랑하는 시들이 있다. 다음 시 한 수가 이 가을에 친구처럼 동병상련이 될지 모른다.
<font color="008080"> 들길에 떠가는 담배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 갔네// 사랑하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머릴 놓고/ 나는 바라보기만/ 했었네/ 들길에 떠가는/ 담배연기처럼/ 내 그리움은 흩어져갔네// 위해주고 싶은 가족들은/ 많이 있었지만/ 어쩐 일인지// 놓고 생각만 하다. 말았네// 아, 못다 한 / 이 안창에의 속상한/ 드레박질이여// 사랑해주고 싶은 사람들은/ 많이 있었지만/ 하늘은 너무 빨리/ 나를 손짓했네// 언제이던가/ 이 들길 지나갈 길손이여// 그대의 소매 속/ 향기로운 바람 드나들거든/ 아파 못다 한/ 어느 사내의 숨결이라고/ 가벼운 눈인사나/ 보내다오</font>
마치 자신의 죽음을 예비하고 쓴 것처럼 마음 아프게 한다. 더 많이 사랑하지 못한 슬픔이 깃을 치고, 아무 욕심도 없이 세상을 떠나겠다는 마음이 비단결처럼 스치고 간다. 믿기 힘들 정도로 아주 가까이 느껴지는 시다. 누구나 공감할 만큼 비슷한 감정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껍데기는 가라’란 시에서 보여주는 정의롭고 민족적이고 의분에 넘치는 시인의 모습이 아니다. 서정에 가득 찬 소시민의 초상이 엿보여 시가 더 가깝다.
랭보의 열정, 베를렌의 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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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가을을 타는 사람들이 랭보의 시 ‘고아들을 위한 선물’을 보면 자신의 외로움이나 쓸쓸함이 반은 줄어들 것이다. 고아원에 버려지는 아이들이 늘어가는 세상이라 눈여겨보고 버려지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겠다.
<font color="008080">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의 북풍은 문간을 두드리며,
방 안에 음산한 바람을 가득히 불어넣는다.
한 차례 휘둘러보기만 하여도 무엇이 부족한지는 누구나 알 수 있다.
이곳에 있는 두 어린아이에게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사랑 가득한 미소로, 자랑스런 눈빛으로 어린아이들을 지켜보는 어머니가 없는 것이다.
(중략)
어린이들 몸 위에 이불을 자상하게 덮어주는 일도 잊었단 말인가.
“미안하다!”라고 한마디 말한 다음, 떠나기 전에,
새벽녘의 추위로 어린아이들이 감기 들지 않도록
문을 꼭꼭 닫아주어 찬바람을 막아주는 일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머니의 꿈, 그것보다 더 따뜻한 침구도 없을 것이다.
아름다운 새들,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몸의 균형을 잡고 있듯이
손발이 얼어버린 어린아이들은,
아름다운 환영으로 가득 찬 감미로운 꿈을 장만한다. </font>
1854년 벨기에 국경 근처 아르덴 지방 샤를빌에서 태어난 아르투르 랭보. 그는 어려서부터 매우 조숙했던 천재로서, 오늘날 남아 있는 작품들은 유년 시절의 습작까지 포함해서 모두 15살부터 20살 사이에 쓴 것들이다. 중학교 선생님의 영향을 받아 시를 쓰기 시작했다. 평범하고 비참했던 가정과 시골생활에 대한 반항심에서 전쟁의 와중에서도 문학과 혁명에 매혹됐다. 그리고 세번이나 가출했던 경험이 부조리한 세상과 모순투성이의 삶을 눈뜨게 했을 것이다. 랭보의 시를 처음 인정한 사람은 당대 시단의 주류에 속한 폴 베를렌였다. 그의 초청으로 온 파리에서 10년 연상인 그와 동성애로 발전해 베를렌은 신혼의 아내에게마저 등돌리고 랭보와 방랑생활을 하였다. 서로가 약물과 술로 찌들게 되면서 랭보가 결별 선언을 하자 분노한 베를렌이 총기를 들었다. 랭보는 가벼운 부상을 당하고 베를렌은 투옥돼 관계가 끝나게 된 에피소드는 이미 많이 알려졌다.
<font color="008080"> 내 알 길 없어라/ 쓰라린 내 마음/ 불안하고 미친 듯한 날갯짓으로 바다 위를 나는 까닭을</font>
위 시처럼 베를렌의 시들은 우수에 차고, 섬세한 마음의 떨림이 무척 매혹적이다. 그가 쓴 시들은 자서전적인 메아리였지만, 랭보의 시는 생생하고 역동적이고 어떤 신비로운 아름다움으로 그 자신을 넘어선다. 짓눌렸던 유년기와 편집증이나 정서불안, 동성애나 힌두교, 신비주의나 마술적인 요소들이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매혹한다.
“동방의 빛이 온통 주위를 둘러싸는 나의 장엄한 거처에서 나는 나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하고 나의 영광스런 은둔생활을 보냈다”는 그의 글도 참 마음을 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세계문화기행을 통해 본 랭보. 그가 왜 스무살 이후에 시를 쓰지 않았느냐고 랭보 연구자에게 묻자, 그 대답은 무척 기운 빠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 프랑스 문단의 주류가 아니었기에 자포자기의 마음이었을 거란 대답이었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그런 경계선은 변하지 않나 보다. 어쨌든 37살에 요절한 랭보는 세계 문학사에 놀라운 감수성과 경이로운 독창성으로 거대한 향기를 남겼다.
무심하게 가을 보내기
<font color="008080"> 나는 떠났지. 다 헤진 양복을 걸치고
그 찢어진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시의 신이여! 나는 하늘 아래에 사는
당신의 충성스러운 신하.
오, 랄랄라. 내 얼마나 멋진 사랑을 꿈꾸었으리.
단벌 바지에 구멍이 났지
꼬마 몽상가라 길에서 운율을
훑었지. 내 주막은 대웅좌 운율에 있었어
하늘에선 내 별이 부드럽게 살랑거렸지.
길가에 앉아 나는 들었지.
아름다운 9월의 멋진 저녁소리를
이마엔
이슬방울 떨어졌어 힘나는 술같이.
환상적인 그림자 속에서 운을 맞추며
가슴 가까이 발을 대고 나도 리라 타듯
내 터진 구두의 구두끈을 잡아다녔지! </font>
자정이 넘은 이 시간. 서늘한 바람이 불어 좋은 밤. 내가 좋아하는 ‘나의 방랑생활’이란 시를 조그많게 읊조려본다. 조금은 슬프게, 조금은 무심하게 이번 가을을 보내리라 생각하면서.
세월이란 때로 얼마나 잔혹하고 허망한가. 그나마 그 허망을 꿰뚫고 나가는 시들이 있어 이 쓸쓸한 가을이 견딜 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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