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시민의 발’ 시내버스는 어떻게 진화했나…‘마차형’ 콩나물시루에서 저상버스까지</font>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시내버스가 바뀌고 있다. 최근 서울·인천 등에서 운행되는 저상버스를 타본 사람들은 실내 환경이 쾌적해지고 승차감이 좋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이제야 ‘서민의 발’이 제대로 된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시내버스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서울을 중심으로 시내버스의 역사를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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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60년대 <font color="#C12D84"> ‘원시버스’ 세대</font>
“버스를 싫어하지마는 편리 때문에 버스를 타고 날마다 이 불결하고 추하고 까불고 낮은 버스를 안 타자고 맹세하면서도 날마다 타고…”(이광수 수필 <나의 하루>)
서민의 발은 시작부터 천대받았다. 러시아워 때는 발 디딜 틈 없는 만원버스로 운행되기 일쑤여서, 출퇴근길 서울 거리를 ‘전시와 같은 살풍경’이라고 묘사한 신문도 있었다.
한국 시내버스의 시초는 1928년 경성부 부영버스다. 일본에서 만든 ‘우즈레’가 쓰였으며, 버스보다는 마차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하지만 부족한 노선과 비싼 요금 때문에 시민들은 전차를 선호했다. 부영버스는 1932년 전차 운영업체인 경성전기에 인수돼 전차의 보조수단으로 이용됐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1960년대 중반까지는 마이크로버스와 미군 트럭을 개조한 ‘짜깁기 버스’가 시내를 누볐다. 서울 시내버스 승객은 지속적으로 늘어 1957년부터 전차를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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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font color="#C12D84"> ‘프런트 엔진’ 두짝 문 세대</font>
국산 시내버스 최초의 모델은 신진자동차(대우버스의 전신)가 개발한 ‘FB100LK’였다. 1967년 출시된 이 모델은 1970년대까지 시내버스로 각광받았다. 차 바닥에서 천장까지 높이가 185cm로 키 큰 사람은 구부정하게 서야 했고, 좌석은 지하철처럼 창문을 따라 길게 배열돼 있었다. 전장(버스 길이)은 요즈음 버스보다 1~2m 적은 9m밖에 안 됐지만, 이러한 구조 탓에 ‘콩나물 시루’가 되기 쉬웠다.
당시의 시내버스는 ‘프런트 엔진’ 방식으로 엔진이 앞에 있었다. 운전석 옆에 유선형의 엔진룸이 튀어나와 있었다. 엔진룸은 여름엔 짐 보관대로 쓰였고, 겨울엔 옹기종기 앉아 따스한 엔진 열을 쬘 수 있는 ‘난로’가 됐다. 1970년대 후반 들어 버스의 문은 두개로 늘었다. 이전엔 문이 차체 가운데에 하나만 있는 게 보통이었다. 1970년대에 개발된 대우의 BF101과 현대의 HD170은 주요 차종으로 채택돼 1980년대 중반까지 인기를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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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전차 운행이 중단돼 시내버스는 1976년 서울시 수송분담률 80%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이 시대를 풍미했다. 그만큼 버스는 항상 만원이어서 출퇴근 시간에는 ‘조리질’ 운전이라는 게 있었다.
“차장은 차가 떠나는데도 (승객이 많아서) 문을 닫지 못하자 손으로 문짝을 쳐서 구조 신호를 보낸다. 운전사는 곧은 길인데도 급히 핸들을 꺾는다. 승객들이 차 안쪽으로 쏠린다. 차장은 그 틈에 문을 닫는다.”(<서울신문> 1974년 12월5일)
●1980년대<font color="#C12D84"> ‘리어 엔진’과 자동문 세대</font>
프런트 엔진 버스는 저상고도(땅 바닥에서 실내 바닥까지의 높이)가 1m가 넘었다. 노인이나 어린이 같은 교통 약자는 ‘등산’하듯이 버스를 타야 했다. 그러다가 엔진이 뒤에 붙은 ‘리어 엔진’ 버스가 나오면서 교통 약자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엔진이 뒤로 가면서 차체 앞 부분의 높이가 낮아진 것이다. 리어 엔진 버스의 앞문 승차구 높이는 80cm대로 프런트 엔진보다 20cm나 낮았다.
서울에선 1988년 올림픽을 앞두고 도시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버스 개혁이 이뤄졌다. 그 핵심은 선진국처럼 안내양 없는 ‘원맨 버스’를 만드는 것이었다. 버스 여기저기에는 ‘앞문승차 뒷문하차’ 스티커가 붙었고, 1985~86년에는 뒷문이 자동문으로 바뀌었다. 승객의 동선은 앞에서 뒤로, 요금은 후불에서 선불로 바뀌었다. 인터넷 버스동호회 버스마니아 안정섭씨는 “버스 안내양은 1984년부터 사라지기 시작해 서울에선 1988년 김포교통을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췄다”고 말했다. 한때 3만여명에 이르던 여성 노동자의 ‘정리해고’에 대해 아무도 뭐라 못했던 80년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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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font color="#C12D84"> 에어컨 세대</font>
1990년대 초반만 해도 여름엔 좌석버스가 붐볐다. 돈을 좀 내고서라도 ‘냉방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1995년 좌석버스에만 설치됐던 에어컨이 일반 버스에도 생겼다. 뒷부분 의자도 2명이 앉을 수 있도록 교체해 좌석이 22석에서 26~29석으로 늘어났다.
저상고도도 낮아졌다. 두 계단을 올라야 하는 이상 진짜 ‘저상버스’는 아니지만, 자동차업체들은 ‘시내 저상형’이라는 이름으로 모델을 내놓았다. 1991년 출시된 대우 BS106의 앞문 높이는 73.5cm, 뒷문은 84.4cm로 1980년대 모델보다 10cm가량 줄었다. 버스 외관은 부드러운 유선형에서 딱딱한 사각형으로 바뀐다. 이때부터 주종을 이루던 대우의 BS106 시리즈와 현대의 에어로시티 시리즈는 지금도 운행되고 있다.
서울에선 1992년 심야좌석이 운행된 데 이어 이듬해에는 고급좌석 버스가 다녔다. 1천번대의 번호를 가진 고급좌석은 빨간색과 파란색의 몬드리안식 대비로 세련된 디자인이 돋보였다. 1996년에 선불형 교통카드가 도입되고 이어 신용카드로도 결제가 가능해짐에 따라 토큰과 회수권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1998년 시내버스의 수송분담률은 29%까지 떨어져 지하철이 시내버스를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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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font color="#C12D84"> 저상버스 세대</font>
앞으로의 버스는 저상버스와 굴절버스의 시대가 될 것 같다. 버스와 정보통신 기술이 결합한 지능형 교통시스템(ITS)으로 빠르고 정확한 첨단교통으로 거듭난다는 희망도 있다.
저상버스의 저상고도는 40cm가 채 안 된다. 계단은 없다. 한 걸음만 디디면 버스 안이다. 장애인을 위한 리프트가 설치돼 있고, 보도가 없을 때는 차체를 땅바닥쪽으로 기울일 수도 있다. 승차감도 좋다. 강철 스프링이 아닌 공기를 이용한 ‘에어 서스펜션’이 차체를 떠받치기 때문이다. 원료도 기존의 디젤이 아닌 친환경적인 천연가스를 쓰는 게 대부분이다. 현재 서울에선 100대의 저상버스가 다닌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추진해온 버스 체계 개편에 따라 2012년까지 매년 100대씩 도입한다는 목표다.
서울시가 수입해 20대가 시범운행 중인 굴절버스는 대량 수송의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굴곡이 많고 정체가 심한 한국 도시 실정에 맞는지는 좀더 두고 봐야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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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상버스와 굴절버스의 대중화 여부는 가격에 달렸다. 지자체가 일부 지원하긴 하지만, 1억원 안팎의 일반버스에 비해 각각 1억9천만원과 5억6천만원에 이르는 높은 가격 때문에 운수업체가 사기를 꺼려 하기 때문이다. 이미 현대·대우가 저상버스를 판매하고 있고, 현대 굴절버스가 곧 출시될 예정이다. 하지만 에어 서스펜션 등 주요 부품이 국내에서 대량 생산되지 않아 생산 단가가 높다.
저상버스가 보급되려면 국내 도로 여건도 개선돼야 한다. 높은 과속방지턱과 들쭉날쭉한 높이의 인도는 저상버스에 치명적이다. 전영선 자동차문화연구소장은 “저상버스가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20~25cm로 인도 높이를 규격화하고, 교통신호제어기 등 각종 시설물들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버스문화도 승객 중심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2기 지하철 완공으로 버스의 경쟁력이 지하철에 밀려나면서 운수업체들이 서비스로 눈길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서울의 운수업체인 한국BRT의 시내버스는 승객이 자리에 앉은 뒤 출발한다. 쾌적한 차 안에는 쓰레기통도 있다. 이제야 승객이 버스의 주인 자리를 되찾아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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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장인’이 본 진화의 조건</font>
“프런트 엔진이 그래도 차가 여물어요. 아직도 아랍에미리트에 스쿨버스로 수출하고 있는 걸요.”
1972년부터 대우버스에서 30년 넘게 일한 최용기(57)씨는 한국 시내버스 역사의 산증인이다. 미군 폐차를 이용해 ‘짜깁기 버스’를 만들다가 최초의 기성품이 나온 게 1967년이었으니,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모델이 드물 정도다.
‘버스의 진화’는 도로 여건에 따른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비포장 도로가 많았던 1960~70년대엔, 프런트 엔진이 한국 지형에 가장 강한 차였다는 것이다. 인도나 동남아 같은 저발전 국가에 아직 프런트 엔진이 많고, 도로 여건이 좋은 유럽과 미국에선 리어 엔진이 대부분인 것과 같다.
“프런트 엔진은 차가 튼튼하고, 진흙탕 같은 데에서 박차고 나오는 힘이 좋거든요. 리어 엔진으로 그때의 시골길을 달렸다간 차가 성하지 않았을 거예요.”
그래서 요즈음도 자동차업체들은 주문한 곳의 도로 여건에 따라 시내버스 사양을 달리하기도 한다. 실제로 도로포장률이 100%에 가깝고 도로 굴곡이 적은 서울시에 공급되는 시내버스의 저상고도는 다른 시·군에 공급되는 것보다 10~20cm 정도 낮다. 반면 강원도 산골엔 아직 프런트 엔진 버스가 다니는 곳도 있다.
최씨는 대우버스에서 차체 조립을 맡아왔다. 정비대대에 있었던 군대 경험을 살리기 위해서 들어왔다가 어느새 버스의 다양한 모델을 사랑하게 됐다.
“장애인 같은 교통 약자를 위해서는 저상버스를 많이 만들어야죠. 옛날 할머니들 장 보따리 지고 버스 오르느라 얼마나 힘들었어요? 오르자마자 엔진룸에 지쳐 쓰러지셨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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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시대를 연 그레이하운드</font>
‘그레이하운드’를 아시는지? 지금도 미국에서 운행 중인 대륙횡단 고속버스 그레이하운드는 1970년대 고속도로 시대 개막과 함께 한국을 누볐다.
신동규(65)씨는 고향인 원주 가는 길이면 서울역 앞에 있는 전용 터미널에서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잡아탔다.
“그때는 모두들 그레이하운드 한번 타보는 게 소원이었어. 서울에서 원주까지 2시간이면 거뜬했고 부산까지도 6시간이면 갔지. 지금과 얼마 차이가 없었어.”
화장실까지 딸려 있었던 ‘2층 버스’ 그레이하운드는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버스 측면에는 날렵하게 생긴 사냥개가 그려져 있었다. 앞문을 통해 버스에 오른 뒤 다시 계단을 올라야 좌석이 있었고, 2층의 맨 앞자리는 시야가 트인 ‘파노라마 데커’로 조망이 좋았다. 그레이하운드는 (주)코리아 그레이하운드가 1970년 미국 본사에서 중고 버스 40대를 들여와 운행됐다. (주)코리아 그레이하운드는 1978년 중앙고속에 인수·합병돼, 한국을 달리던 미국 고속버스는 역사 속에 묻혔다.
1970년 경부고속도로 개통으로 본격적인 고속도로 시대가 열렸지만, 막상 한국의 자동차업체들은 고속버스를 제작할 능력이 없었다. 이에 따라 삼화·동양·한진·천일·한일고속 등 고속버스 회사들은 경쟁적으로 외국 버스를 수입했다. 독일의 벤츠, 일본의 후소 등 1969년에 69대, 70년에 325대가 도입됐고, 이후 신진자동차와 현대자동차가 고속버스를 하나둘 내놓으면서 국산 버스가 대세가 됐다.
빠름을 자랑하는 만큼 고속버스 회사들은 각각의 상징물을 내세웠다. 사자(중앙고속), 천마(동양고속), 표범(삼화고속), 매(한진고속), 제비(한일고속) 등 대부분 날쌔고 빠른 동물이었다. 다만, 광주고속(현재의 금호고속)은 거북이었다.</font></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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