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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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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부부’의 금실이 부럽네~

등록 2005-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손발 맞춰 성공 일궈내는 남녀 동료들… 복합적인 파트너쉽이 신선한 자극과 안정감 줘

▣ 이미경/ 자유기고가 friendlee@hani.co.kr

강석씨와 김혜영씨가 문화방송 라디오 <강석 김혜영의 싱글벙글쇼>를 진행한 것은 올해로 19년째다. 1월11일 낮 서울 여의도 문화방송 사옥 7층 라디오국 생방송 현장. 두 사람이 한창 목소리를 변조해가며 주거니 받거니 콩트를 하고 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소품을 두드려 효과음을 내고 상대방의 말에 추임새를 넣었다. 한 몸처럼 손발이 척척 맞았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매일 낮 12시30분부터 2시까지 진행되는 생방송을 요철처럼 맞물려 채워넣는 두 사람의 완벽한 호흡 덕분에 <∼싱글벙글쇼>는 부침이 심한 방송가에서 강산이 두번 바뀌는 세월을 거뜬히 견뎠다.

‘베테랑 강연자’와 ‘숫자의 달인’이 만나

두 사람이 얼마 전 오스트레일리아 공연을 갔을 때다. 오랜 팬이라며 김혜영씨에게 악수를 청한 노인이 “이렇게 외국에 나와 있으면 애들은 누가 키우느냐”고 물었다. “시어머니가 도와주신다”고 대답하자 노인이 말했다. “그러니까 김혜영씨는 강석씨 같은 남편 만난 거 고마워해야 해.” 김씨는 웃음이 터졌지만 굳이 해명하려 애쓰지 않았다. 두 사람이 살아온 모양이 여느 부부와 다를 바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매일 돌아가는 라디오 생방송으로 19년을 동고동락했으니 남들이 진짜 부부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란다. 김씨는 “사실 남편과 찍은 사진보다 강석씨와 찍은 사진이 훨씬 많다”고 귀띔한다. 그의 집 곳곳에는 강씨와 함께 찍은 사진이 놓여 있고, 아이들도 그걸 당연히 받아들인다고 한다. 15년 전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회의를 마치고 결혼식장으로 달려가던 김혜영씨의 손을 잡고 뛰어준 이도 강석씨였다. 결혼식 사회를 봐주고, 결혼식 직후 생방송 시간에 맞춰 방송국으로 달려오던 김씨의 옆에서 함께 달려준 이도 강씨였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활발하고 직장에서 남녀간에 강력한 파트너십을 요구하는 일이 많아진 요즘, 손발 맞춰가며 일하다 베갯머리 송사에 버금갈 정도로 흉금을 터놓는 ‘사회적 부부’ 사이로 발전한 남녀 직장인들이 늘고 있다. ‘직장 부부’들이다. 회사 동료나 사업 파트너가 자신과 잘 맞는 업무 스타일과 자신을 북돋워주는 능력을 갖고 있음을 발견할 때, “유레카!” 소리가 절로 난다. 험난한 경쟁의 바다를 헤엄칠 강력한 구명조끼이기 때문이다. 이런 안정감은 실제 배우자에게서도 얻기는 쉽지 않다.

한국리더십센터 김경섭 대표와 고현숙 부사장은 업계에서 소문난 찰떡궁합이다. 경영 컨설턴트이자 리더십 교육 전문가인 김 대표는 학문과 강연에는 베테랑이지만 수 개념에는 섬세하지 않다. 예를 들어 김 대표가 고 부사장에게 “올해는 강연료를 1천원만 받자. 목표는 100만명이다”라고 말하면, 고 부사장은 이 말을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저렴하고 대중적인 교육 프로그램으로 승부하자”는 말로 ‘알아서’ 이해한다. 사업의 수익성과 리스크 등을 꼼꼼히 검토한 뒤, 고 부사장이 김 대표에게 “1천원은 어렵고 1만원이면 될 것 같다”고 보고하면 그걸로 그만이다. 김 대표는 조직의 인력 운용과 자금 집행에 대한 실질적인 권한을 일찌감치 고 부사장에게 일임한 터다. 지난 4년 동안 두 사람이 이런 방식으로 호흡을 맞춘 결과, 회사는 매년 150%의 초고속 성장을 거듭했다. 두 사람의 파트너십은 회사 경영에 국한되지 않는다. 김 대표는 가정경제에 관한 자문을 구하고, 고 부사장은 아이들 교육 문제를 수시로 상의하면서 남다른 ‘금실’을 자랑한다.

이런 ‘직장 부부’들은 기존의 파트너십이나 솔 메이트와는 다른 빛깔을 보인다. 성적 긴장감이 없다는 점에서 일반 연인 관계와도 다르다. 그러나 성별 차이에 따른 자극은 충분히 나눌 수 있다. 이것은 업무 호흡이 맞거나 정서가 일치하는 정도를 넘어서는 새롭고도 신선한 자극이다. 서로의 매력은 물론 일상적 습관까지 익숙하게 알고 이해하며, 그 존재로 위로와 안정감을 갖는 ‘복합적인’ 사이라고 자타가 공인할 때 이 타이틀을 얻을 수 있다.

‘부부싸움’에도 흔들리지 않는 신뢰감

자타가 공인하는 ‘직장 부부’들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가 관계를 유지하는 최고의 비결이라고 입을 모은다. 강석씨는 두 사람의 19년 우정이 “처음부터 마이크 다툼을 안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생방송 중간에 상대방의 발을 세게 밟는 ‘반칙’을 해가면서 마이크 욕심을 내는 진행자를 간혹 보았는데, 결국 공동 진행에 실패하고 프로그램도 막을 내리더라”는 것이다. 한국리더십센터 고현숙 부사장은 “인력과 자금을 통째로 맡기는 김 대표의 전폭적인 신뢰 때문에 없는 능력도 발휘해야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들도 당연히 실제 부부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부부싸움’을 한다. 혹은 싸우면서 ‘부부’로 발전하기도 한다. 한 식품가공업체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이정은씨는 식품 연구개발을 담당하는 정상우씨와 일할 때마다 꼭 한번씩 소리를 지르게 된다. 이름난 맛집을 찾아다니다 “그래, 이 맛이야”라고 의기투합할 때까진 분위기가 좋다. 그러나 일단 상품 제작에 들어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맛이 좋으려면 이런 원료와 성분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연구원과 “원가 경쟁력이 없으니 대안을 찾아야 한다. 그 정도 관록이면 이젠 제발 소비자 관점에서 생각하라”고 쏘아붙이는 마케터의 눈에는 각각 핏발이 서고 사방으로 불꽃이 튄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신제품이 출시되고 반응이 괜찮으면, 두 사람은 밤새 소주를 퍼마신 뒤 이튿날에는 더없이 살가운 표정으로 식당가를 누빈다. ‘우리는 맛을 찾아 방랑하는 운명’이라는 둥 ‘내 여자친구는 순대국을 안 먹어서 괴롭다’는 둥 ‘김 부장은 꼭 나만 찍어 괴롭히는데 이유를 모르겠다’는 둥 인생사 크고 작은 희로애락을 음식과 함께 씹어넘긴다.

하루의 절반 이상을 꼭 붙어다녀야 하는 이들이 가족끼리도 알고 인생관도 같다면 더없이 행복한 경우다. 민주노동당 강화지구당 최미란 위원장과 오영호 부위원장은 원래 ‘이웃사촌’이었다. 8년 전 강화에 살던 오 부위원장은 부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강화로 이주한 최 위원장을 공동육아모임에서 만났다. “말이 통하는 사람”이라고 반가워서 가족 모임도 자주 가졌다. 민주노동당 창당 작업에 관여한 것이 본격적인 인연의 시작이었고, 2002년 대선 당시 권영길 민주노동당 후보 선거운동을 하면서 비로소 죽이 척척 맞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치는 별것이 아니다. 강화 사람들이 부딪치는 생활 문제를 정치적으로 실현하는 게 정치다. 우리 둘이서 강화지구당을 한번 만들어보자.” 그렇게 시작한 정치 활동이 2003년 총선까지 이어졌다. 낯가림을 하는 오영호 부위원장은 정책과 홍보를 맡고, 웅변 실력이 탁월한 최미란 위원장이 후보로 출마해 환상의 팀워크를 자랑했다. 주변에서는 10살 연하의 여성 후보를 적극적으로 보좌하는 오 부위원장을 ‘배알 없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했지만, 오 부위원장에게는 “권위와 위계를 따지면 남녀는 결코 동지가 될 수 없다”는 소신이 있었다. 아직은 당직자가 위원장과 부위원장 둘뿐인데도 두 사람이 ‘희망찬 미래’를 낙관하는 것은, 생활공동체와 풀뿌리 정치활동을 거치면서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깊은 까닭이다.

신규 사업에서 만난 두 과장, ‘부부’될까?

삼성전자 여성상담소 김현주 소장은 “사회적 인식과 문화적 차이 때문에 남녀가 직장에서 신뢰를 형성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일단 협력 관계가 되면 동성 파트너와는 만들 수 없는 시너지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남성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이야기에 섬세하게 귀기울이고 편들어주는 속깊은 상대가 있으니 좋고, 여성의 입장에서는 기업에 흔히 존재하는 남성들만의 공고한 네트워크를 내 것으로 만드는 묘수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소장은 “직장에서 남녀를 구별하는 것을 구시대적인 것으로 여기는 신세대 직장인들, 굴뚝기업보다는 정보기술(IT) 기업, 상하 관계가 분명한 상황보다는 직급이 엇비슷한 사람들끼리 부부애에 버금가는 신뢰를 쌓고 건강한 파트너십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다음커뮤니케이션 조경화 과장과 황현수 과장의 사례는, 필요에 따라 팀이 구성되고 프로젝트를 마무리할 때까지 강고한 파트너십을 구축해야 하는 기업 문화에서 새로운 유형의 ‘직장 부부’들이 각광받으리라는 사실을 예고한다. 두 사람은 지난해 말부터 ‘스카이프’(Skype)라는 신규 서비스 출범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에서 활동하고 있다. 조 과장은 신규 서비스를 고객이 얼마나 새롭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기획’ 업무를, 황 과장은 이 사업으로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고민하는 ‘전략’ 업무를 맡았다. 처음 업무를 함께 할 때, 황 과장은 조 과장의 태도가 약간 부담스러웠다. 조 과장이 “스카이프는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방식과 문화로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작은 아이콘이나 색상, 디자인까지 꼼꼼히 챙겨야 하는 이유를 시시콜콜 강조했던 것이다. 큰 이유 없이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던 두 사람은 솔직한 대화를 시도했다. 알고 보니 조 과장은 그간의 직장생활 경험을 통해 “남자들은 시스템에 오류가 없고 사용이 편리하기만 하면 성공적인 서비스라고 생각한다”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황 과장은 조 과장의 업무 능력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회사 입사 시기가 조금 빠르다는 이유로 텃세를 부리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다. 서로 조금씩 미안해하면서 대화를 마무리한 뒤, 두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팀워크를 발휘할 수 있었다. ‘직장 부부’로 가는 첫걸음을 내디딘 셈이다.



진짜 남편, 직장 남편 샘낼까?

환상적인 파트너십을 자랑하는 ‘직장 부부’에 대해 ‘진짜 부부’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지난 1월7일부터 12일까지 <한겨레21>과 잡링크가 직장인 10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에는 자신의 배우자(혹은 연인)가 ‘유능하되 외모는 출중하지 않은’ 이성 파트너와 일하기를 소망하는 직장인들의 열망이 담겨 있다.
자신의 배우자가 이성과 파트너를 이루어 일하게 됐다는 말을 들었을 때의 반응을 묻는 질문에는 “파트너가 능력이 출중해서 당신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한다”는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27.2%로 가장 높았다. 그러나 “파트너가 나보다 외모가 출중한지 궁금해한다”(24.5%)거나 “결혼을 했는지, 미혼이라면 연인이 있는지 확인한다”(20.2%)는 의견도 이에 못지않은 비중을 차지해 배우자의 이성 파트너를 잠재적 경쟁자로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 남성은 파트너의 결혼 여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 비해(22.1%) 여성은 파트너의 외모에 더 신경을 쓰는 것(24.5%)으로 나타나 대조를 이뤘다.
남녀 응답자의 반응이 가장 크게 엇갈린 대목은 배우자의 파트너가 배우자보다 능력이 뛰어날 경우에 대한 질문이었다. 남성들은 “아내가 나보다 남성 파트너를 존중하고 인정할 것 같아 불안하다”(31.2%)고 응답한 반면, 여성들은 “남편이 여성 파트너보다 능력 없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것에 대해 화가 치민다”(30.9%)며 분개했다.
배우자가 이성 파트너와 명절이나 연휴에 일해야 하는 경우 “같은 경우라면 나도 일을 할 테니 대범하게 생각하려 애쓴다”(29.6%)는 응답이 전체적으로 가장 많았으나 남성은 “업무를 위한 것이면 기꺼이 인정하고 받아들인다”는 답변이 2위를 차지한 반면, 여성은 “일하는 건 상관없으나 집안일을 떠안는 게 싫어 화가 난다”는 답변이 높았다. 한편 “조용히 연휴를 즐기고 싶었는데 차라리 잘됐다”는 응답도 총 109명으로 전체 응답자의 10.6%를 차지했는데, 이러한 반응은 특히 30대 남성들 사이에서 두드러졌다.
자신이 함께 일하고 싶은 이성 파트너를 묻는 질문에서는 “긴 설명 안 해도 매사에 죽이 척척 맞는 사람”(36.7%)이나 “개인적인 고민도 내 편이 되어 상담해주는 솔 메이트”(23.9%)가 나란히 1, 2위를 차지해 파트너의 업무 능력보다는 호흡이 잘 맞는 따뜻한 친구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자신의 배우자가 이런 파트너를 갖는 것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 인색한 반응을 보였다. 배우자의 이성 파트너로 적합하지 않은 사람을 묻는 질문에 “사적인 경조사까지 꼼꼼히 챙기며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가장 많이 꼽았던 것. 이 밖에도 휴일에 수시로 전화를 하거나 능력 있는데 외모마저 준수한 배우자의 파트너도 ‘경계 대상’으로 지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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