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 온도가 40도예요.”
8월1일 오후 2시 반, 아파트 25층 공사 현장을 찾은 최승훈(33·가명)씨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얼굴 표정이 차갑게 굳으면서 눈빛이 흔들렸다. 49시간 전 이곳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도중 쓰러진 아버지 상헌(66·가명)씨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콘크리트의 숨이 죽기 전에 일을 끝내려다 사람의 숨이 먼저 끊어졌다.
승훈씨는 관계자들에게 “아버지가 계셨던 곳이 어디냐”고 물으며 아버지의 동선을 따라 걸었다. 작은 흔적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사진을 찍었다. 이따금 알아듣기 힘든 혼잣말을 내뱉었다.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에 우뚝 솟은 그곳은 25층만큼 태양에 가까웠다. 5분 남짓 서 있었을 뿐인데 현기증이 났다. 매미의 잿빛 울음소리에 귀가 먹먹해졌다. 높푸른 하늘과 짙푸른 무등산은 시퍼런 멍 같았다.
‘사상 최악의 폭염’이라는 보도가 연일 쏟아지는 2018년 여름. 사람들이 손선풍기를 붙잡고 계절을 건널 때, 승훈씨는 ‘사망 원인 미상’ 이라는 시체 검안서의 한 줄 문장을 붙잡고 씨름했다. 기저 질환이 없었던 상헌씨가 폭염 뙤약볕에서 일하다 세상을 떠났지만 온열질환 사망자 35명에 들지 못했다. 부검까지 했으나 여전히 온열질환 입증은 어려운 상황이다.
이 상헌씨의 신체가 아닌 그의 삶을 들여다보고 ‘사회적 부검’을 시도하는 이유다. 그의 사망 원인은 ‘폭염’이라는 환경적 원인만 있는 게 아니다. 공사를 빨리 마치려고 작업을 강행한 건설사, 비슷한 사고가 계속됐지만 구체적인 안전 대책을 세우지 못한 정부의 책임도 크다.
“사람보다 공사가 먼저였다”고 몇 번을 한탄하는 그에게 “양지바른 곳에서 영면에 드시기를 바란다”는 말은 건넬 수 없었다.
7월30일 낮 1시.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 폭염 경보가 내렸지만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선 작업이 한창이었다.
최상헌(66·가명)씨 등 다섯 명은 한 조를 이뤄 일사불란하게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하루 레미콘 40대 분량 작업은 거뜬히 해냈지만 이날은 콘크리트 물량이 평소의 반밖에 되지 않았다. 아침 8시에 25층에 올라간 상헌씨 일행이 그늘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오지 않고 작업을 강행한 이유다. 넉넉히 오후 2시면 하루 치 일을 끝내고 퇴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낮 1시30분 콘크리트 고르다 ‘철퍽’고용노동부가 건설 현장 노동자들의 온열질환을 예방하기 위해 2017년 12월 개정해 현장에 배포한 ‘열사병 예방 3대 기본수칙 이행 가이드’는 이곳에서 무용지물이었다. 가이드에 따르면 폭염 특보(경보, 주의보)가 뜨면 폭염 경보 때는 1시간에 15분, 폭염 주의보 때는 1시간에 10분 휴식시간 제공, 현장 그늘막 설치 등을 해야 한다. 가이드 내용이 잘 지켜지지 않으면 사업주는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처벌받는다. 하지만 아파트 25층의 바닥 공사 현장에는 그늘막이 없어 노동자들은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다. 시간에 맞춰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이날 광주의 낮 최고기온은 36도. 상헌씨는 밀대를 들고 쏟아지는 콘크리트를 매끄럽게 다지고 있었다. 구름 틈새로 쏟아지는 햇볕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발아래에서는 혼합물과 반죽이 된 콘크리트가 열을 뿜어냈다. 공사 현장의 체감온도는 40도에 육박했다. 콘크리트 작업은 일단 시작하면 중간에 멈출 수 없다.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일을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1시간에 15분 휴식은 언감생심이다. 아무리 버거워도 현장을 떠나면 안 된다. 상헌씨는 이날 어지럼증을 호소하지 않았다. 동료들보다 나이가 많은 편이었던 상헌씨는 작업장에서 동료들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고 늘 솔선수범했다. 30년째 손발을 맞춘 동료들은 그가 힘들다 내색하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철퍽!’ 상헌씨가 열심히 다지던 콘크리트 위에 고꾸라진 건 오후 1시30분. 작업 종료를 15분 남겨둔 시간이었다. 놀란 동료들이 달려가 상헌씨의 얼굴을 씻기고 24층으로 내려가 심폐소생술을 했다. 콘크리트가 굳기 전에 작업을 마치려던 상헌씨의 몸은 콘크리트보다 먼저 굳었다. 이날 아침 승강기를 타고 공사 현장에 올라갔던 상헌씨는 타워크레인(탑 모양의 기중기)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출동한 구급대원이 심폐소생술을 하며 병원으로 옮겼지만 그의 숨은 돌아오지 않았다.
“아버님이 쓰러지셔서 심장이 멈춘 상태에서 병원에 왔습니다. 상황이 안 좋습니다.”
상헌씨의 큰아들 승훈(33·가명)씨가 병원에서 전화를 받은 시각은 오후 2시15분. 그도 건설노동자다. 한참 공사 현장에서 일하던 시간이었다. 젊은 승훈씨에게도 여름 햇살이 뜨겁기는 마찬가지였다. 목에 건 수건으로 수시로 땀을 닦아내도 계속 땀이 흘렀다. 그러다가 몸에 수분이 다 빠졌는지 땀이 흐르지 않으면 피부가 긁힌 것처럼 따가웠다.
공사 현장 관리직으로 일하는 승훈씨는 인부들을 보면서 늘 아버지를 생각했다. 자신은 현장을 돌아다니다가 힘들면 잠시 그늘에서 쉴 수 있었지만, 노동자들은 그러지 못했다. 승훈씨는 아버지 같은 노동자들에게 늘 깍듯했고 무리한 노동을 요구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공부를 많이 하지 못했지만 좋은 사람이었다.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고, 무엇보다 정말 부지런했다. 젊었을 때부터 운수업을 해서 다섯 식구가 굶지 않게 했다. IMF 외환위기 사태 이후 수입이 떨어지자 건설 현장 일을 시작했다. 일종의 ‘투잡’이었다. 아버지는 부지런히 일해서 매달 300만~400만원은 꼭 벌어왔다. 그렇게 누나를 결혼시켰고, 승훈씨 대학을 보냈다. 아버지는 한 달 전 운수일을 그만뒀지만 일주일에 한두 번 나가는 건설 현장 일은 그만두지 않았다. 승훈씨와 11살 터울인 막내가 아직 대학을 졸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셋이나 되는 손자들에게 무엇이든 사주고 싶어 했다. 누나는 지난해 셋째를 낳았다.
온열질환 사망 결론 못내상헌씨가 쓰러지기 전날인 7월29일에도 충청북도 음성군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을 하던 노동자(51)가 폭염에 쓰러져 목숨을 잃었다.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한 28번째 온열질환 사망자다. 건설 노동 관계자들은 폭염 특보가 내린 무더운 날에는 콘크리트 작업을 되도록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콘크리트가 굳으면서 뜨거운 열을 내뿜기 때문에 다른 노동보다 위험하다고 했다. 광주광역시에서 콘크리트 타설을 하는 한 노동자는 “콘크리트 반죽은 밑에서 60도 이상의 열이 올라온다. 혹한의 겨울에도 콘크리트 타설을 하면 따뜻하다. 날씨가 더운 날에는 콘크리트가 더 빨리 굳어서 더 빨리 작업해야 한다. 한번 시작하면 4~8시간씩 쉬지 않고 일하는 게 예사다. 최근에 폭염이 한 달 가까이 계속되면서 대규모 공사 현장은 한 시간 작업하면 15분씩 쉬는 곳도 있는데, 중소 규모 공사 현장은 종일 일해도 10분도 못 쉰다”고 설명했다.
“협심증 흔적은 있지만 혈전이나 심근경색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8월1일 광주광역시 전남대학교 대학병원에서 상헌씨의 사망 원인을 밝히기 위해 부검했지만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이라는 결론을 내지 못했다. 상헌씨의 시체검안서 사망 원인 칸에는 ‘미상’으로 기록됐다. 전남대 병원은 아버지 부검 자료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보내 정밀조사를 의뢰하고, 한 달 뒤 최종 사망 원인을 판단할 계획이다.
온열질환으로 인한 죽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사망 전후의 직장 온도를 재는 게 중요한데 상헌씨는 체온을 재지 못했다. 너무 늦게 병원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한 법의학자는 “폭염으로 사망하면 시신의 온도가 주변의 환경에 맞춰 변하기 때문에 지금처럼 무더운 시기에는 온도가 올라가기도 한다. 사망한 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체온이라고 할 수 없어 아예 측정을 않는 경우가 많다”며 상헌씨의 경우는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 판단이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상훈씨는 황망했다. 아버지가 역대 최악의 폭염이라는 2018년 여름날 건설 현장에서 비명에 횡사했지만 온열질환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술도 잘 드시지 않는 아버지는 이전에 아프다는 말 한마디 한 적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과 폭염의 인과관계를 밝히지 못해 노동부 규정을 어기고 공사를 강행한 건설사의 책임도 묻기 쉽지 않았다. 폭염이라는 무서운 자연재해 앞에 가족이 쓰러졌고, 모든 책임은 살아남은 가족이 져야 했다.
상헌씨의 유가족은 산재 신청을 포기하고, 건설사와 합의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과 인터뷰하면서 자신도 건설노동자로서 아버지의 죽음과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다. “당신도 건설노동자이면서 아들이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게 힘들까봐 걱정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슬픕니다. 기온이 35도가 넘으면 콘크리트가 훨씬 빠르게 굳고, 노동자들은 더 빨리 일해야 합니다. 날씨 탓에 노동자는 일하기 어렵지만 건설사 입장에서는 콘크리트 타설을 하기에는 좋은 날인 겁니다. 건설 현장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먼저여야죠. 다시는 아버지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폭염 아래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 목숨을 잃은 노동자들은 더 있다. 7월17일 오후 2시께 전북 전주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건설노동자 박아무개(67)씨가 5m 높이에서 떨어져 숨졌다. 박씨의 부검 결과 사망 원인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땀을 많이 흘리면 체내 수분이 부족해져 동맥경화와 함께 심근경색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날 전주의 최고기온은 폭염 경보 기준온도인 35도를 웃돌았다. 박씨가 숨지기 전날이었던 7월16일 해당 건설 현장에서는 열탈진 환자가 발생해 현장 노동자들이 “하루만 쉬자”고 건의했지만 건설사는 “콘크리트 타설 날짜를 맞춰야 한다”며 공사를 강행했다.
넷 중 한 명이 야외 작업장에서 발생박씨와 함께 일했던 노동자는 과 한 통화에서 “우리가 속해 있는 하청업체가 원청사에 날씨가 너무 더워서 쉬자고 했는데 원청사는 되레 콘크리트 타설 날짜가 21일에서 19일로 당겨졌다며 독촉했다. 현장에서 계속 ‘너무 무리하게 일하는 거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는데 끝까지 외면당했다”고 했다.
건설노조가 7월20~22일 토목·건축 현장 노동자 230명에게 한 조사 결과를 보면 폭염 특보 발령 때 규칙적으로 쉬고 있다고 대답한 사람의 비율이 8.5%에 불과했다. 폭염 경보가 뜬 날 오후 2~5시에 작업을 중단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14.5%였고, 19.3%는 오히려 작업 중단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했다고 답했다. 건축 현장의 이런 열악한 노동환경 등이 보태져 야외 작업장은 온열질환 환자가 가장 많이 생기는 장소인 것으로 나타났다. 8월1일까지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한 온열질환 환자 2549명 중, 건축 현장 등을 포함한 야외 작업장에서 발생한 환자가 706명(27.7%)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는 한 달 내내 폭염이 이어지고 인명 사고가 속출하자 뒤늦게 대응에 나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8월1일 “정부·지방자치단체·공공기관 발주 건축·토목 공사 현장에서 폭염이 심한 낮 시간대에는 작업을 중지하고 덜 더운 시간대에 일하거나 작업을 며칠 연기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했다. 이 총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땡볕에는 집 밖 작업을 쉬시도록 거듭 말씀드린다. 지방자치단체 등 공공 부문은 즉각 시행해주시고 민간 건설회사들도 그렇게 해주시기 바란다”고 썼다.
총리의 당부에도 건설 현장의 울림은 크지 않았다. 일용직 노동자 비중이 큰 건설노동자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받을 수 없다.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 덥다고 쉴 수만은 없는 것이다. 일용 건설노동자들이 폭염에 노출되면 위험한 줄 알면서도 일을 계속하는 이유다. 김태범 건설노조 경기중서부건설지부장은 “실제로 총리 발언 이후 건설 현장에서 폭염에 쉬면 임금을 주느냐는 문의가 있었다. 건설노동자의 건강권을 위해 휴식을 권고하는 것은 좋지만 거기에 따른 임금 보전 대책도 같이 나와야 했다는 아쉬움이 있다. 앞으로 건설노조가 대정부 교섭 과정에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고 했다.
올해만 10명이 논밭서 쓰러져폭염은 기후의 급격한 변화에서 비롯되는 자연재해지만, 일용직 노동자와 같은 저소득층과 고령인구 등 취약계층의 건강에 더 위험하다는 점에서 사회적 재난이기도 하다.
질병관리본부가 8월1일까지 파악해 공개한 온열질환으로 숨진 30명의 자료를 분석해보면 평균 연령은 66.17세로 노인인구가 절대다수였다. 빈곤율이 높은 노인층은 만성질환을 앓는 경우도 많아 폭염에 가장 취약한 계층이라 할 수 있다. 노인들이 온열질환으로 가장 많이 쓰러져 목숨을 잃은 장소는 논밭이었다. 8월1일에는 강원도 춘천의 한 옥수수밭에서 오후 6시께 옥수수를 따던 ㄱ(76)씨가 열사병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7월18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의 강아무개(86) 할머니가 집 앞 밭에서 풀을 뽑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 뒤 열사병으로 숨지는 등 올해에만 10명이 논밭에서 쓰러졌다. 폭염 경고에 무딘 이들이 무더위에도 논밭에 나가 작물을 돌보는 까닭은 가난한 살림에 보태려는 뜻이다.
홀몸노인의 죽음은 온열질환 사망자에 제대로 계산조차 되지 않는다. 고독사는 숨지고도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발견될 때가 많다. 이 경우 온열질환 발병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실제 온열질환으로 숨진 노인 수는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한 수치를 훨씬 웃돌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행정안전부가 추진 중인 ‘낮 시간(오후 2~5시)에 외출을 자제해야 한다’거나 ‘부모님에게 전화를 자주 드려야 한다’는 등의 개인적인 수준의 대책은 공허하다. 근본적으로 노인들이 무더위에는 밭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고, 지역 공동체와 어울려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노인 돌봄 현장에서는 당뇨나 고혈압 등 만성질환을 앓는 노인들은 폭염 자체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사회복지사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지적도 나왔다. 세종시의 한 홀몸노인 응급관리요원은 “홀몸어르신 댁에 이동을 감지하는 장비가 붙어 있는데 기온이 35도가 넘어가면 오작동이 급격히 늘어난다. 결국 폭염을 헤치고 현장을 다 방문하는 수밖에 없다. 폭염은 고령화와 직결된 문제인데 정부는 2012년부터 해마다 똑같은 대책만 내놓고 있다”고 했다.
슬그머니 꼬리 감춘폭염으로 한반도의 온도는 빠르게 올라가고, 온열질환자 수도 늘어나는데 정부의 대응은 되레 후퇴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질병관리본부는 1994년 이후 가장 더웠던 2012년 폭염 사망자가 14명에 이르자 를 만들었다. 백서에는 온열질환 사망자들의 월평균소득과 학력, 가족관계, 동거인 유무, 냉방기기 보유 수, 주거지 사진까지 상세하게 기록했다. 이런 내용은 폭염으로 인한 죽음의 사회적 원인을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다. 하지만 폭염 사망자의 이른바 사회적 부검 시도는 2015년 이후 슬그머니 조사를 중단한 뒤 재개되지 않았다.
폭염으로 벌어진 사회적 재난이 취약계층에 끼치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는 피해 사실을 좀더 면밀하게 조사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1995년 기록적 폭염으로 700명이 숨졌던 시카고에서는 시 당국과 대학 등이 나서서 폭염으로 숨진 사람들의 사회경제적 환경을 꼼꼼하게 조사했다. 조사 결과 인종, 연령, 빈곤율이 폭염으로 인한 사망에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경찰과 공무원들은 직접 취약계층의 생활환경 파악에 나섰다. 그 결과 비슷한 수준의 폭염이 찾아왔던 1999년에는 폭염 사망자를 110명으로 대폭 줄일 수 있었다.
질병관리본부가 파악한 올해 폭염 사망자 35명(8월3일 기준)은 최소치다. 건설 현장에서 숨진 최상헌씨와 박아무개씨도 이 통계에 잡히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가 집계하는 온열질환 사망자는 응급실 관리체계에 포함된 전국 519개 응급실을 통해서만 파악한 자료이기 때문이다. 폭염 때문에 기저질환이 악화해 사망한 것까지 포함하면 역대급 더위가 휩쓴 2018년 ‘폭염 사망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취약계층 특성 맞는 대책을”“기본적으로 한국은 폭염으로 인한 인명 피해가 제대로 파악이 안 되는 시스템이다. 폭염으로 단순히 몇 명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취약계층의 인구 특성에 맞는 대책을 세우고 1995년 폭염 사태 이후 시카고처럼 정부 당국이 적극 나서야 한다.” 장재연(아주대 교수)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의 말이다.
광주=이재호 기자 ph@hani.co.kr·폭염에 타들어간 타향살이
·34℃에 일하다 숨졌는데 산재 아니다?
·부채로 폭염과 싸우는 사람들
·무더위 쉼터 어딘지 아무도 모른다
·불타는 지구촌, 북극권도 30도 넘겼다
·폭염에 생사 오가는 홀몸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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