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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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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에 생사 오가는 홀몸노인들

고립된 홀몸노인이 폭염 최대 취약계층…

돌봄 인력 확충·냉방비 지원 등 폭염 복지 갈 길이 멀다
등록 2018-08-07 07:11 수정 2020-05-02 19:29
7월31일 인천시 남동구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덜 뜨거운 밤시간을 이용해 폐지 등을 리어카에 싣고 있다. 류우종 기자

7월31일 인천시 남동구에서 혼자 사는 노인이 덜 뜨거운 밤시간을 이용해 폐지 등을 리어카에 싣고 있다. 류우종 기자

기후변화 시대 폭염의 최대 피해자는 노인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족이나 이웃과 왕래 없이 살아가는 홀몸노인이다. 더위에 숨이 막혀도 도움 청할 사람이 없어, 홀로 비극을 당하는 일이 많다. 부축해줄 이웃이 없어 에어컨 있는 쉼터를 찾아가지 못하는 이들도 곳곳에 있다. 공공복지의 ‘폭염 돌봄’ 시스템은 아직 갈 길이 멀다.

“거의 매일 전쟁을 치른다”

수은주가 39도까지 치솟은 8월2일 오후, 서울 구로구 고척2동의 심아무개(78) 할아버지가 얼음팩 하나로 찜통더위를 다스리고 있다. 골목길 도로 열기가 들어올세라 1층 단칸방의 바깥문은 꽁꽁 닫아두었다. 벽 한쪽에 달린 고물 에어컨은 비닐에 싸인 채 오랫동안 가동한 흔적이 없고, 흔한 선풍기 하나 보이지 않았다. 중풍을 앓은 뒤로는 왼쪽 다리가 불편해, 바깥출입을 거의 못한다고 했다. “4~5년 전만 해도 낚시를 다녔는데 이젠 방 안에서 주로 지내. 자식들 있냐고? 안 찾아와. 누가 에어컨 좀 손봐주면 좋겠어.”

고척2동의 서광민 복지플래너가 새 선풍기를 가져와 켜드리자 할아버지는 “소리 안 나고 시원해서 좋네”라며 고마워했다. 할아버지 방에는 습도·조도·온도 등으로 홀몸어르신의 동태를 살피는 감지기가 붙어 있다. 이상 징후가 감지되면 사회복지사가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하게 돼 있다. 복지플래너 서씨는 “서울시가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정책을 시행하면서 복지 인력을 2배쯤 늘렸고 동주민센터마다 전기차도 1대씩 배정받았다”며 “서울시는 다른 지역보다 홀몸어르신을 챙기는 환경이 나은 편”이라 했다.

7월31일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맞춤형 폭염대응 방안 마련’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 나온 세종시 재가노인지원센터의 손연서 사회복지사는 “거의 매일 전쟁을 치른다”고 했다.

“7월27일이었어요. 홀몸어르신 댁에 설치된 감지기에서 몇 시간 동안 ‘활동’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찾아갔지요. 가장 뜨거운 오후 2시쯤이었는데, 탈수와 고열로 쓰러져 계셨어요. 80대 후반 할아버지였죠. 체온이 39도였는데, 창문은 모두 닫혀 있더라고요. 문을 열 기력도, 문을 열어줄 사람도 없었던 거예요. 이틀 뒤엔 혼자 사시는 다른 할아버지의 전화가 와서 달려갔어요. 벌써 팔다리가 마비됐더라고요.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겼는데 뇌경색이었어요. 또 다음날엔 에어컨 있는 경로당에서 주무시던 어르신이 아침에 뇌졸중으로 쓰러지는 일이 있었고요.”

복지사 5명이 홀몸노인 1천 명 돌봄

손씨는 “요즘 같은 폭염에 하루 걷는 거리가 8㎞, 1만보에 이른다”고 했다. 홀몸어르신 1천 명을 사회복지사 5명이 관리하는데, 지금 같은 때는 더 가까이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어르신들의 방 안 온도를 보니 평균 35도예요. 선풍기를 틀지 않으면 40도도 넘고요. 다들 에어컨 없는 분들이죠. 식사도 잘 못 드시고 쉽게 기력이 떨어져요. 경로당에서 얼굴 안 보이면 집으로 찾아가고, 연락이 안 되면 밭에까지 찾아가기도 해요.”

손씨는 “어르신들 챙길 일은 점점 더 많아지는데, 사회복지사들 이직률이 높다”고 안타까워한다. 1년 단위 기간제 직원이라 해마다 근로계약서를 다시 쓰고, 자기 자동차 몰고 다니면서 유지비도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사회복지사의 신분과 근무 여건이 들쭉날쭉하다.

홀몸노인이 폭염 피해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노인 무더위 대책을 쏟아낸다. 대표적으로, 서울 노원구는 낮에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 외에 구청 대강당 등 6곳을 노인들이 저녁 8시부터 아침 7시까지 잠잘 수 있는 야간 무더위 쉼터로 7월30일부터 개방했다. 성동구는 한발 더 나아가 24시간 운영하는 무더위 쉼터 6곳을 8월2일부터 운영했다.

가난한 홀몸노인들에게 에어컨 설치와 전기요금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우리나라 노년층의 빈곤율은 45.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3.5%보다 압도적으로 높고, 홀몸노인의 월평균 소득은 18만7천원에 불과하다. 선풍기를 두고도 돈이 아까워 켜지 못하는 홀몸노인들이 적지 않은 현실이다. 일본은 올해 8월부터 에어컨을 생활필수품으로 인정해 생활보호대상자에게는 최대 5만엔까지 설치비용을 지원한다.

홀몸노인이 겪는 ‘사회적 고립’을 폭염 사망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고 촘촘한 대책을 마련했던 미국 시카고 사례도 주목받는다. 시카고는 1995년 폭염으로 700명의 시민을 잃었지만, 4년 뒤 더 심한 폭염이 닥쳤을 때는 110명으로 사망자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 폭염이 닥치자 에어컨이 작동하는 34곳의 쿨링센터를 설치해 누구나 갈 수 있도록 무료 버스를 제공했다. 또 혼자 사는 노인의 집을 경찰과 공무원이 일일이 방문해 쿨링센터로 안내하는 등의 능동적인 돌봄을 제공했다.

일본은 에어컨 생필품으로 지정

최영선 한국에너지재단 기획협력본부장은 “홀몸노인이 많은 쪽방촌에 가면 선풍기 놓을 곳도 제대로 없고, 에어컨을 달아준다 해도 전기요금을 감당 못해 켜지도 못한다”며 “당장 냉방 물품을 갖다주려 하기보다는 사회복지사들이 거동 불편한 노인들을 쉼터로 자주 안내하거나 샤워를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등 더 세심하게 챙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근본적으로는 어르신들의 부실한 주택 에너지 환경 성능을 높여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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