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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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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에 일하다 숨졌는데 산재 아니다?

열사병 산재 인정 기준 없다보니 사안별로 고무줄 적용…

공단과 법원 판결 엇갈리기도
등록 2018-08-07 13:53 수정 2020-05-03 04:29

온열질환은 일터에서 많이 생긴다. 응급실을 찾은 온열질환자를 살펴보면 셋 중 한 명은 ‘작업장’에서 온 환자다. 질병관리본부가 전국 517개 응급실로부터 자료를 수집해 매일 공개하는 온열질환자 진료현황 잠정통계를 보면, 올해 5월20일부터 7월31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응급실을 찾은 사람이 2355명에 이르는데 이 중 33.7%인 793명이 ‘작업장’ 발병자다(실외 646명·실내 147명).

최근 열사병 산재 43건 중 38건 승인
노동자가 온열질환으로 신체적 피해를 입어 산업재해보상보험을 신청할 경우, 승인은 잘 이뤄지는 편이다. 근로복지공단이 8월1일 에 제공한 일사병·열사병 통계자료를 보면, 2014년부터 올해 6월까지 열사병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한 43건 중 38건이 승인됐다(질병 32건 중 29건 인정, 사망 11건 중 9건 인정). 전체 업무상 질병 승인율(2017년 52.9%)에 비하면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다만 산재신청 건수가 한 해 8건에 불과해 작업장에서 발생한 온열질환자가 실제 산재 신청까지 하는 경우는 극소수다.
일각에서는 “열사병으로 인한 산재 인정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제문 한음노무법인 대표는 “근로복지공단에 기준이 없다보니 똑같이 산업재해를 겪고도 누구는 인정받고, 누구는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고 말했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은 “덥고 뜨거운 장소에서 하는 업무로 발생한 일사병 또는 열사병”에 보험 적용을 할 수 있다고만 언급하고, 그 온도와 작업 강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현재는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의 판단으로 폭염 산재인정 기준을 어렴풋이 짐작할 뿐이다. 사고 당시 온·습도 등 작업환경, 업무가 평상시보다 과중했는지 여부, 기존 질병, 사용자의 예방 조치 등이 참고 사항이다.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의 판결이 엇갈리는 경우도 가끔 있다. 2013년 8월 자동차 공장 신축 공사장에서 최고기온 33.9도 폭염 속에서 일하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한 A(55세)씨의 경우, 근로복지공단에선 ‘특별히 작업환경의 변화나 과로, 스트레스 등은 보이지 않고 개인 질환의 악화로 보인다’며 산재 인정을 거부했다. 하지만 서울행정법원은 ‘발병일 전부터 총 6일간 폭염이 이어졌고 A에게 음주, 흡연력이나 고혈압 치료력도 없는 점, 휴무 없이 6일 연속 야외 근무를 했고 발병 전날에는 결원 상태로 업무가 과중했던 점’ 등을 고려해 산재로 인정했다.
2012년 8월 청주 신축 건물 공사 현장에서 쓰러져 하반신 마비 증상을 겪은 B(67세)씨 역시 근로복지공단에서는 ‘기존 질환이 자연적인 경과로 발병한 것’이라며 거부했지만, 청주지법 행정부에서는 산재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원고에게 흡연이나 고혈압 등의 위험 인자가 있었더라도 공사 현장에서 뜨거운 햇볕에 노출된 채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뇌경색이 자연적인 진행 경과를 넘어 악화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밝혔다.

‘고온 노출 기준’을 산재 인정 기준으로
신명근 광주광역시 노동센터장은 “작업환경이 고온으로 위험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구체적 기준이 필요하다”며 “고용노동부 고시에 노동자의 건강이 위험해지는 수준을 뜻하는 ‘고온 노출 기준’이 있는데, 이를 산재 인정 기준으로 삼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고용노동부 고시 제2018-62호 ‘화학물질 및 물리적 인자의 노출 기준’에는 “근로자의 보건상 유해하지 아니한 기준”이 명시돼 있다. 그중 ‘고온 노출 기준’ 항목에는 작업 강도에 따라 위험하지 않은 범위의 작업 휴식시간비를 명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곡괭이질·삽질 등 시간당 350~500kcal의 열량이 필요한 ‘중작업’이면, 열사병 온도지수(WBGT)로 30도를 넘으면 매시간 25%(15분)씩 일하고 75%(45분)씩 쉬는 수준이다.

변지민 기자 d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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