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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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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 쉼터 어딘지 아무도 모른다

폭염 취약계층 특성 고려 않고 지정된 무더위 쉼터…

미국·캐나다는 쿨링센터까지 무료버스 운영도
등록 2018-08-07 16:08 수정 2020-05-03 04:29
무더위 쉼터 75.5%가 경로당을 포함한 노인시설이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시설은 안내판을 게시해야 한다 류우종 기자

무더위 쉼터 75.5%가 경로당을 포함한 노인시설이다.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시설은 안내판을 게시해야 한다 류우종 기자

정자마다 노인들이 쓰러지듯 누워 있다. 39도. 노인들은 손수건으로 목덜미를 몇 번이고 닦지만 흘러내리는 땀은 멈추지 않았다. 공원의 노인들은 따가운 햇살을 맨몸으로 버텼다. 111년 만의 폭염이 덮친 8월1일 오후 4시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의 풍경이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라고 홍보하지만 이들은 왜 공원에서 더위를 피하고 있을까.

“집이 더워서 공원은 나을까 싶어 왔는데 여기도 더워요.”

“무더위 쉼터 어디 있는지 모른다”

오후 1시부터 공원에 있었다는 장선주(73)씨에게 무더위 쉼터는 공원의 정자였다. 정부는 전국 4만5284곳의 무더위 쉼터를 운영한다. 하지만 장씨는 무더위 쉼터를 알지 못했다. 쉴 새 없이 땀을 훔치는 장씨에게 경로당과 주민센터가 무더위 쉼터라는 사실을 알려주자, 그는 “경로당은 어디 있는지 몰라요. 주민센터는 앉아 있기 부담스럽고…”라고 말했다. “내일은 시내버스 타고 주민센터나 가봐야겠어”라고 말한 그는 다음날인 8월2일에도 효창공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송경임(68)씨는 효창공원 벤치에서 연신 부채질을 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송씨는 무더위 쉼터는 알지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른다. “경로당은 회원제고 70살 넘어야 가요. 무더위 쉼터라도 눈치 보여요. 회원인 사람은 떳떳한데 아닌 사람은 미안해요.” 송씨는 무더위 쉼터보다는 지하철을 애용한다. “지하철 탈 일이 있으면 한 바퀴 더 타요. 에어컨 바람 쐬려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이 2016년 8월4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종로구 41~90살 성인 44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무더위 쉼터를 이용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가까운 무더위 쉼터 위치를 모르기 때문(57%)”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금도 비슷하다. 무더위 쉼터의 정확한 위치를 사실상 인터넷으로만 알 수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서울 시민은 서울안전누리 누리집에서 현재 자기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무더위 쉼터를 확인할 수 있다. 서울 시민이 아니라면 국민재난안전포털에서 검색할 수 있다.

하지만 무더위 쉼터가 가장 필요한 고령층이 접근하기는 쉽지 않다. 지자체별로 무더위 쉼터 이용을 홍보하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게다가 서울안전누리 지도만 보고 무더위 쉼터를 찾기도 쉽지 않다. 서울안전누리 지도를 보고 마포구 공덕동에 자리한 무더위 쉼터를 찾아갔다. 누리집 지도에서는 큰길가에 있는 것으로 나왔지만 골목 안으로 60m 들어가야 했다. 설사 무더위 쉼터 위치를 알아도 접근이 어렵다. 현재 무더위 쉼터는 대부분 폭염 취약계층이 이동 가능한 거리를 고려하지 않고 지정됐기 때문이다.

무더위 쉼터 이용 막는 문턱들
39도의 폭염 속에 노인들이 무더위 쉼터가 아닌 공원 정자에 앉아 있다. 류우종 기자

39도의 폭염 속에 노인들이 무더위 쉼터가 아닌 공원 정자에 앉아 있다. 류우종 기자

국민안전처에서 2015년 발표한 ‘무더위 쉼터 지정·운영 관리 지침’에 따르면 쉼터 지정 기준을 ‘평소 노인들이 자주 이용하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일상생활 공간에 위치한, 접근이 양호한 장소 지정’이라고만 밝히고 있다. 구체적인 기준이 없어, 기존 노인시설에 ‘무더위 쉼터’라고 이름 붙인 것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KEI의 ‘폭염 대비 무더위 쉼터의 실효성 제고 방안(2016)’ 보고서는 “무더위 쉼터 지정시 명확한 기준이 부재하며 취약계층 밀집지역, 접근성 등에 대한 고려가 미흡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외국의 무더위 쉼터인 ‘쿨링센터’와 달리 쉼터까지 이동수단이 제공되지 않는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은 무더위 쉼터에 가기를 포기할 수 있다.

게다가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경로당은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기에는 문턱이 높다. 행정안전부의 ‘2017년 무더위 쉼터 현황’을 보면 경로당을 포함한 노인시설이 전체의 75.5%를 차지한다. 아파트 경로당은 아파트 주민만 이용할 수 있고, 일반 경로당이라고 해도 회원제로 운영된다. 아파트 주민이 아니거나 회비를 낼 수 없는 노인은 무더위 쉼터가 된 경로당 이용이 어렵다. KEI 보고서도 “무더위 쉼터로 지정된 경로당의 이용자는 해당 시설을 무더위 쉼터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시설로 인식해 비회원이 이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경로당이 회원 정원 이상의 인원을 수용하는 것도 어렵다. 무더위 쉼터인 서울 마포구 공덕동 ㄱ경로당은 이용 가능 인원이 40명이다. ㄱ경로당 회원 수는 60명으로 회원 수만 해도 이용 가능 인원 20명을 넘긴다.

무더위 쉼터가 제대로 운영되면 폭염에 따른 온열질환자 발생 등의 피해를 줄일 수 있다. 미국 시카고가 폭염에 대처한 사례를 살펴보면 무더위 쉼터의 ‘효과’를 알 수 있다. 1995년 7월 시카고는 41도의 폭염이 한 달간 이어졌다. 700명이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4년 뒤인 1999년 7월 시카고에 다시 폭염이 찾아왔다. 시카고는 바로 에어컨이 작동하는 쿨링센터 65곳을 열었다. 이동이 어려운 주민을 위해 무료버스로 이동시켰다. 비슷한 수준의 폭염인데도 사망자가 110명으로 줄었다.

시카고 폭염은 다른 도시의 폭염 대책에도 영향을 줬다. 캐나다 토론토는 시카고 폭염 이후 ‘이상기온 경고시스템’을 개발했다. 토론토는 고온 경보가 발생하면 폭염 취약계층에게 무더위 쉼터로 이동할 수 있는 대중교통비를 준다.

쿨링센터와 무료버스… ‘폭염 패키지’ 제공

토론토 보건국은 2011년 폭염 취약성 지도를 만들기도 했다. 미국 디트로이트는 폭염 취약계층이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계산해 접근 가능한 쿨링센터를 지정했다. 32도 이상에서 15분 이상 노출되면 45분을 쉬어야 한다는 기준 아래 도보와 자전거로 15분 이내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를 계산했다. 디트로이트 시민 29%는 도보, 85%는 자전거로 무더위 쉼터에 갈 수 있다. 무더위 쉼터와 공공도서관·레크리에이션센터를 연계해 진입 장벽도 낮췄다.

올해 최악의 폭염에 한국도 지자체별로 무더위 쉼터의 실효성을 높이려는 노력이 이어진다. 7월30일부터 서울 노원구는 야간 무더위 쉼터를 운영한다. 저소득층 노인을 대상으로 폭염 특보 때 저녁 8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무더위 쉼터에서 잠을 잘 수 있다. 이동에 제약이 있는 노인을 위해 특별 수송대책도 계획 중이다.

곽효원 교육연수생 khw33033@gmail.com
참고 자료
(에릭 클라이넨버그·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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