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반노동 행보가 다시 떠오른다. ‘미르·K스포츠재단’을 매개로 한 정치권력과 기업들의 결탁이 끈끈해지는 시점이 친재벌 정책에 가속도가 붙던 시점과 정확하게 일치하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무슨 대가를 바라고 미르·K스포츠재단, 이들 재단의 ‘닮은꼴’인 청년희망재단에 기부금을 내고 최순실 쪽에 각종 특혜를 줬을까.
미르재단이 문화예술계, K스포츠재단이 스포츠계를 노렸다면 청년희망재단은 고용시장을 노렸던 것일까. 청년희망재단이 ‘노동판(版) 미르·K스포츠재단’이라는 의혹이 확산되고 있다.
청년희망재단은 설립 시기부터 펀드 모금 과정까지 여러모로 두 재단과 닮은꼴이다. 지난해 9월15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청년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청년희망펀드’를 조성하자고 제안했다. 박 대통령은 “저부터 단초 역할을 하겠다”며 2천만원을 기부하는 ‘1호 기부자’를 자처했다. 매달 대통령 월급의 20%에 해당하는 320여만원도 내겠다고 했다. 이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를 이뤄낸 것에 화답하는 차원이었지만, 청년 구직자 지원과 일자리 창출에 정부 예산을 투입하지 않고 민간에 책임을 떠넘기려 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청년희망재단에도 ‘문화창조융합’ 그림자펀드의 관리와 운영은 비영리 민간재단인 청년희망재단을 설립해 맡기기로 했다. 대통령 지시 덕분에 재단이 제 꼴을 갖추기도 전부터 돈이 쏟아져 들어왔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에 제공한 청년희망재단 이사회 회의록을 보면, 2015년 10월19일 첫 이사회 때 이미 약 56억원이 모금됐다고 적혀 있다. 이때는 재단 설립신고는 물론이고 재단 사무실에 입주하고 사무국 직원을 채용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특히 재계의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10월22일 200억원을 입금한 이후,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150억원), 구본무 LG그룹 회장(70억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50억원),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30억원) 이름으로 고액 기부가 이어졌다.
에서 보듯 ‘큰손’ 기부자 대부분은 재벌 총수였다. 당시 최태원 회장이 구속 중이라 임직원들 명의로 기부한 SK그룹 등 몇몇 기업을 제외하고는 총수 개인 명의로 기부가 이뤄졌다. ‘기부금’ 형식을 취했지만, 내용상으론 대통령 뒤를 따라 ‘갹출’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시중은행을 포함한 몇몇 기업에서는 직원들에게 기부를 강요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이렇게 불과 한 달 만에 800억원대 기부금이 모였다. 현재까지 모인 기금은 1454억원에 이른다.
재단 이사에는 친박근혜 인사들이 포함됐다.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장인 황철주 주성엔지니어링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 취임 직후 첫 번째 중소기업청장으로 내정됐다가, 지명 사흘 만에 자진 사퇴한 바 있다. 반도체장비 전문 기업을 운영하는 벤처 사업가로서, 700억원대에 이르는 회사 주식을 매각하거나 백지신탁해야 하는 공직자윤리법에 부담을 느꼈던 탓이다.
류철균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교수도 초대 이사였다. ‘이인화’라는 필명으로 더 유명한 류 교수는 소설 이 박정희 전 대통령을 미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류 교수는 2014~2015년 대통령 소속 문화융성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에도 자주 얼굴을 비쳤다.
나머지 초대 이사는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장의성 재단 사무국장(전 서울지방노동청장) 등 모두 노동계, 경영계 인사였다. 황철주 이사장은 지난 5월, 류철균 교수는 지난 7월 이사직에서 자진 사퇴했다.
문체부가 홈페이지 초기 운영청년희망재단 사업에 ‘최순실·차은택’의 그림자가 드리운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된다. 지난해 10월19일 청년희망재단 첫 이사회 보고 안건을 보면, 재단 출범 이후 추진할 2~3개 시범 프로그램의 하나로 ‘문화콘텐츠 관련 강좌: 문화창조융합센터와 협업하여 인기 분야 강좌 개설’이라고 돼 있다.
차은택씨는 지난해 4월부터 문화창조융합본부 단장을 맡으며, 문화체육관광부의 ‘문화창조융합벨트’ 사업에도 관여했다는 논란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실제 진행된 사업은 CJ E&M 소속 방송작가 특강 세 차례를 진행하는 데 그쳤다. 청년희망재단 쪽은 “문화창조융합센터와는 전혀 관련 없이 담당직원이 해당 작가와 PD를 섭외했다”고 밝혔다.
초기에 청년희망펀드 홈페이지를 제작·관리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 재단이 꾸려지기도 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홈페이지 제작을 ○사에 의뢰하고, 이후 재단이 청년희망펀드 홈페이지 구축비로 1억2천만원을 ○사에 지급했다. ○사는 2012년 대통령선거 때 박근혜 후보 캠프의 온라인 배너광고와 후보자 유세 차량 영상을 제작한 업체다. 홈페이지는 2015년 10월14일 재단 발기인 총회가 열리기도 전인 9월30일 오픈됐다.
문체부는 이용득 의원실에 보내온 답변서에서 “국무조정실 주관 관계부처 회의에서 재단이 출범하는 시점까지 초기 홈페이지 운영을 문체부가 지원하기로 논의됐고, 지난해 11월30일 재단에 운영 업무를 넘겼다”고 밝혔다. 청년희망재단은 2016년 예산에도 홈페이지 유지보수·운영비(1억원), 청년희망펀드 홈페이지 연계 등 위탁사업비(2억원), 홈페이지 구축 용역개발비(3억1800만원) 등을 잡아뒀다. 한 온라인 광고 관계자는 “보통 홈페이지 제작·운영비는 5천만원 안팎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화려한 모금 실적과 달리, 재단 운영은 주먹구구식이었다. 비영리 민간재단이라고 했지만, 재단 설립 초기 고용노동부와 정부 산하기관 직원들이 재단 정관 작성과 사업계획 등 업무 대부분을 담당했다. 재단 이사조차 모르는 사업 계획이 언론에 먼저 배포되기도 했다. 박병원 이사(경총 회장)는 지난해 이사회에서 “재단에서 어떤 사업을 할 것인가를 이사회에 상정도 안 하고, 사전 협의도 없이 언론에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청년 일자리 지원 사업의 실효성도 의문이다. 만 34살 이하 미취업자를 해외 법인에 인턴으로 보내는 ‘청년글로벌 보부상’ 사업은 글로벌 청년 사업가를 키운다는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 ‘케이무브(K-MOVE) 스쿨’ 사업과 거의 유사하다. 게다가 재단과 공동으로 사업을 운영하는 사단법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는 정부의 케이무브 스쿨 사업도 맡았다.
10월 청년실업률 17년 만에 최고치이용득 의원은 “청년희망재단은 순수한 민간재단이 아니라 미르·K스포츠재단과 마찬가지로 ‘기업 팔 비틀기’를 통해 모은 펀드를 졸속 집행하는 정부 주도 재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년희망재단은 지금까지 4만5972명에게 취업지원 서비스를 제공했지만, 이 가운데 2.5%가량인 1172명만 취업에 성공했다. 지난 10월 청년실업률은 8.5%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8.6%) 이후 17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년희망재단에 물어야 한다. #그런데_청년실업은?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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