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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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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징치(懲治)해야

“대통령의 ‘사과’는 자신의 헌법·법률 위반 ‘자백’

대통령은 재직 중 형사소추 받지 않을 뿐 수사 대상”
등록 2016-11-02 22:00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font size="4">5부_책임을 묻다 죄와 벌</font>
대통령의 경우 자신의 범죄를 은폐할 힘과 수단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에 수사는 빠를수록 좋다. 한국헌법학회 회장과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새누리당 의원은 저서 에 “시간이 경과하면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우므로 대통령의 재직 중에 행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언제나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적었다.</font>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태는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건 누구건 불법행위에는 정치적·법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수 기자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번 사태는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대통령이건 누구건 불법행위에는 정치적·법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수 기자

그가 옳았다.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은 공무원으로서 자신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하면서 헌정 문란과 국정 난맥의 현실을 경고했다. 그러나 목이 날아갔다. 당시 박씨가 터무니없는 소리를 한다고 비방, 조롱, 핍박한 자들은 이제 무슨 말을 할 것인가.

청와대 안팎에 포진한 최순실 일당이 재벌들 옆구리를 찔러 몇백억원을 모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악할 일이었다. 그런데 대통령을 ‘언니’라고 부르는 이 여인은 CF 감독, 전직 운동선수 등 측근과 함께 청와대 및 정부 고위직 인사, 정부조직 개편, 대북 접촉 등의 정보까지 청와대로부터 실시간 받아보며 국정을 주무르고 있었다. 대한민국이 최순실이란 ‘상왕’이 ‘수렴청정’하는 나라가 된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정희는 헌법 압살, 박근혜는 헌법 능멸</font></font>

최순실이 버리고 간 태블릿PC에서 나온 정보가 그 정도이니 챙겨간 정보, 파기한 정보는 얼마나 많을까. 이런 헌정 문란 작태는 대통령의 승인하에 이루어졌다. 그러니 집권여당, 청와대 민정수석실, 검찰, 경찰이 최순실 눈치만 보면서 꼬리를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참담하다. 기가 막힌다. 분통이 터진다. 박 대통령의 표현을 빌리면, 이건 “혼이 비정상”인 사람이 자행하는 일이 아닌가.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의 표현을 빌리면,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 아닌가.

대한민국의 공적 권력 구조와 질서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 나라의 운명이 정체불명, 자격전무(全無)의 사람들 손에 놀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범국민적 민주화투쟁으로 수립한 민주공화국이 이런 자들 손에 좌우됐다는 것, 참으로 치욕스럽다. 2013년 2월 이후 대한민국은 ‘입헌국’(立憲國)이 아니라 ‘무속국’(巫俗國)이었다.

필자는 2012년 12월3일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야당 후보를 지지하는 광화문 유세에서 “박근혜가 되면 이명박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 아닌 예언을 했다. 박근혜 정권은 이명박 정권보다 대한민국을 더 망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권은 대선 공약인 경제민주화를 파기했고, 그 결과 재벌 중심 경제정책이 강화됐다. 국가정보원과 국군기무사령부의 대선 개입이라는 헌정 문란 범죄에 솜방망이 처벌을 했다. ‘창조경제’라는 허울 좋은 구호 아래 양극화와 민생 파탄이 심화되고 있다.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건국절’ 추진을 통해 극우적 역사 왜곡이 추진되고 있다. ‘북한 붕괴’라는 희망적 사고가 지배하면서 개성공단이 폐쇄되는 등 남북관계는 냉전시대로 되돌아갔다. 반대 정파 지도자에게는 수시로 색깔 공세를 퍼부었다. 박 대통령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우주의 기운”을 모아 나라를 오물 구덩이 안으로 빠뜨린 격이다.

‘최순실 게이트’의 일각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박근혜 대통령은 황급히 개헌 카드를 꺼냈다. ‘최순실 게이트’로 분노하는 민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고 야권을 분열시키는 한편, 독자적 대권 주자가 없는 ‘친박’의 정권 재창출을 하겠다는 다목적용 카드였다. 헌법이 국정 문란 범죄자를 은폐하는 데 써먹는 도구가 된 것이다.

박정희가 ‘유신헌법’으로 헌법을 압살했다면, 박근혜는 ‘최순실 방패용 개헌’으로 헌법을 능멸하려고 했다. 법학자로서 헌법을 모독하는 정권에 대해 가슴 깊은 곳에서 분노가 일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대통령의 불법행위에 법적 책임 물어야</font></font>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더니, 부인할 수 없는 증거가 나오자 마지못해 일부 인정했다. 와 JTBC의 보도는 언론 자유가 왜 중요한지 생생히 보여주었다. 그리고 박근혜 정권이 왜 언론을 통제하고 지배하려 하는지 알게 되었다.

쓴웃음이 나는 것은, 박 대통령을 찬양하고 정권을 비호하는 데 급급하면서 뒤로 이권을 챙기던 자들이 대통령의 사과 이후 갑자기 ‘비판자’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가라앉는 배에서 탈출하는 쥐들의 모습이다.

박 대통령의 ‘사과’는 헌법과 법률 위반에 대한 ‘자백’이다. 그러나 이번 사태는 ‘사과’로 끝날 일이 아니다. 국민은 사상 유례없는 이 ‘게이트’의 전모를 알 권리가 있다. 그리고 대통령이건 누구건 불법행위에는 정치적·법적 책임이 따라야 한다.

현재 박근혜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탄핵’ ‘하야’라는 단어가 광범위하게 언급된다. 이제 대통령의 어떠한 발언과 행위도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없을 것이다. 행정부의 수장이자 국군통수권자로서 권위와 영(令)이 설 리 없다. 이 상황에서 경제위기와 안보위기를 극복하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 나라의 앞날이 걱정이다. 이에 다음과 같은 사항을 요구한다.

첫째, 청와대 비서실장과 수석 및 ‘문고리 3인방’을 포함해 ‘십상시’는 전원 사퇴하라. 자신의 무능으로 “봉건시대”가 만들어진 것도 몰랐고, “박 대통령도 피해자다”라는 황당한 변호를 한 이원종 비서실장은 국민 앞에 사과하라.

둘째, 국무총리 및 내각은 전원 사퇴하라. 뻔뻔하게도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유언비어 의법조치” 운운했던 황교안 국무총리는 국민 앞에 사과하라.

셋째, 후임 총리는 여야 공동 추천을 받아 임명하라. ‘협치’는 이럴 때 하는 것이다. 신임 총리는 실질적인 내각 제청권(헌법 제87조 1항)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최순실 게이트’의 혐의자이므로 모든 측면에서 자숙해야 한다.

넷째, 국회는 ‘최순실 게이트’ 특별검사제도(특검)를 발동하라. 대통령 사과 이후에야 비로소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 전국경제인연합회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검찰, 그리고 청와대 압수수색은 할 엄두도 못 내는 검찰로는 진실이 발견되기 어렵다. 이 특검의 경우도 박 대통령에게 면죄부를 주는 특검이라면 무의미하다. 상설특검법하에서는 대통령이 특검을 최종 선정하므로, 수사의 공정성과 엄정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특검을 국회에서 임명하도록 개별 입법을 만들어야 한다.

다섯째, 박근혜 대통령을 포함해 ‘최순실 게이트’ 관련자는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에 성실하게 임하라. 대통령도 수사 대상이 되며, 내란 또는 외환의 죄를 범한 경우를 제외하고 재직 중 형사상 소추를 받지 않을 뿐이다(헌법 제84조). 국정조사와 특검은 불법과 비리를 철저히 샅샅이 꼼꼼히 하나하나 차례차례 밝히고 징치(懲治)해야 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여야 추천 신임 총리에겐 내각 제청권을</font></font>

박 대통령에게 일말의 ‘애국심’이 있다면, 남은 임기 1년4개월 동안 나라가 어떤 꼴이 될지 생각해보고 이상의 요구를 실천하기 바란다. 자초한 ‘식물정권’의 운명을 겸허히 받아들이기 바란다. 국민의 분노는 비등점을 향해 끓어오르고 있다. 제대로 반성하지 않고 책임자 처벌을 회피한다면 국민은 임계점을 넘을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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