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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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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정유라 ‘승마공주’ 만들기 도왔나

상주 전국승마대회 둘러싼 경찰과 문체부의 수상한 조사

대한승마협회와 회장사인 삼성에도 의혹의 눈길
등록 2016-11-02 21:42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font size="4">3부_파국의 시작 정유라</font>
정유라를 둘러싼 의혹을 밝히는 과정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정유라를 국가대표로 만들고 대학에 입학시키는 과정에 최순실 주도로 승마계와 정부, 이화여대가 함께 치밀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font>
최순실씨가 마장마술 대회 도중 정유라씨에게 음료수를 건네는 모습. 정윤회씨는 승마장에 자주 오지 않았지만 최순실씨는 대회 때마다 승마장을 찾았다고 한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최순실씨가 마장마술 대회 도중 정유라씨에게 음료수를 건네는 모습. 정윤회씨는 승마장에 자주 오지 않았지만 최순실씨는 대회 때마다 승마장을 찾았다고 한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지금 이 모든 사달이 다 정유라 때문 아닌가. 결국 정유라한테 올림픽 금메달을 안기고 싶었던 부모 욕심이 빚은 참사 아닌가.”

한 사립대 체대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20년 정치인생에서 ‘최순실’ 이름 석 자는 언제나 숱한 의혹의 배후 이름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다 이 지경까지 이른 것은 결국 최순실의 딸 정유라, 그녀의 말, 그리고 올림픽을 향한 탐욕 때문이었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운동을 시키는 학부모에겐 두 가지 공통된 욕망이 있다. 우선 자식을 좋은 대학에 입학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유라를 향한 최순실의 ‘무리수’는 이 두 대목에 집중된다. 정유라가 이화여대에 입학하는 과정, 그리고 이후 본격적인 성인 선수로 올림픽을 준비하면서부터 사달이 생겼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승마대회 심판진 경찰 조사도 정유라 때문? </font></font>

정유라가 애초부터 말을 잘 못 타던 선수는 아니었다. 어릴 적부터 그를 지켜봐온 승마계 인사는 “2012년까지 고교 랭킹 1위였다. 청담고 시절에는 줄곧 또래 중에 제일 잘 타던 선수였다”고 말한다. 정유라의 승마 실력 자체를 폄훼할 건 아니란 얘기다. 물론 다른 시각도 있다. 또 다른 승마계 인사는 “말을 못 탄다고까지 할 순 없겠지만, 국가대표가 될 기량은 분명 아니었다. 워낙 좋은 말을 탔다. 그래서 ‘좀 있는 집 아이인가보다’ 싶었다”고 말한다.

승마는 종목 특성상 선수가 많지 않고 저변도 넓지 않다. 정유라는 꾸준히 성적을 거둬왔지만, 기량으로 돋보이던 선수는 아니었다. 정유라의 아버지 정윤회는 이에 대해 “5살 때부터 새벽부터 가서 (승마 훈련하느라) 엉덩이에 진물이 나고, 그렇게 실력을 인정받았다”(채널A 인터뷰)고 말했다. 선수로서 열심히 운동했다는 것인데, 뒤집어 얘기하면 부모와 대한승마협회의 비호 속에 학교 출석을 하지 않고 말만 타도 되던 시간이 길었다.

여하튼 본인의 노력과 부모의 압도적 지원 속에 고교 랭킹 1위를 달리던 정유라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어쩌면 생애 첫 좌절이었을지 모를 패배를 당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 해인 2013년 4월 경북 상주에서 열린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서 정유라는 김혁 선수에게 지며 대회 2위를 한다.

결과를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정유라는 “울고불고 말을 그만 탄다”고 난리를 폈다. 최순실 역시 채점 결과에 강하게 항의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잘 아는 승마계 관계자는 “단언컨대, 승부 조작은 아니다. 그냥 정유라가 졌을 뿐이다. 승마를 하는 집안들이 다 만만치가 않은데, 대학 진학과 올림픽을 앞두던 대회에서 채점 조작을 하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대회 심판진은 협회 감사도 아닌 경찰 조사를 두 차례나 받았다. 경찰 조사는 최순실의 항의 대목에 집중됐다. 동시에 문화체육관광부는 전격적으로 상주대회 전반과 대한승마협회에 대한 조사를 단행했다. 문체부가 개별 경기협회를 조사하는 것도 이례적인데, 당시 조사 역시 ‘채점 결과’에 집중됐다. 한 문체부 관계자는 “승마협회가 문제가 많으니 조사하라는 지시가 청와대로부터 직접 내려왔다”()고 말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최순실 측근, 승마협회 배후 실력자로</font></font>

이 무렵,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괴담’이 승마계에 돌기 시작한다. 이른바 ‘박원오 살생부’다. 박원오는 승마협회 전 전무로 건설 관련 일을 했다는 정도 외에 뚜렷하게 알려진 이력이 없는 인물이다. 1990년 학생승마협회 실무자로 시작해 승마협회 관련 일을 해오다, 배임 및 횡령 혐의로 징역 1년6개월, 추징금 6억7천만원 선고를 받은 이후 지금까지 승마협회의 공식 직함은 없다.

얼핏 ‘낭인’에 불과해 보이는 이 인물은 2013년부터 승마협회 행정 전반에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는 배후 인물로 재등장한다. 최순실 곁에 바짝 붙어선 이후다. ‘박원오 살생부’에 대해 한 승마인은 “정유라가 누구인지, 얼마나 대단한지를 보여줬다”고 평한다.

박원오 살생부의 내용은 사실 별것 없다. 승마협회 간부와 지역 협회장, 그리고 국제심판 이름이 적힌 쪽지였다. 이 쪽지가 문체부에 전달됐는데, 놀랍게도 이후 여기 적힌 인사들이 직책에서 물러나거나 경기 배정을 받지 못했다.

승마협회 한 전직 임원은 “두 사건은 이후 정유라의 승승장구에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 됐다. 그 사건으로 정유라의 인생이 달라졌다”고 잘라 말했다. 2013년 상주대회 전까지 승마계 인사들은 정유라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 그냥 서울 강남의 부잣집 딸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다 두 사건을 통해 정유라의 부모가 누군지 정확히 알게 됐다. 좋은 말 타던 청담고 승마선수 정유라는 이때 비로소 ‘비선 실세’ 정윤회·최순실의 딸로 승마계에 각인된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정유라의 별명은 ‘승마공주’다.

이후 전개는 이미 유명한 얘기다. 상주대회에서 채점 조작은 없었다는 것이 승마계의 중론이다. 하지만 윗선의 지시를 받은 문체부는 어정쩡한 양비론적 결론을 냈다. 타협적 결론이었다. 정유라가 누구 자식인지 드러났고, 그 힘이 어느 정도인지 확인된 상황에서 이쯤에서 덮고 넘어갔으면 됐는데 다시 한번 전개가 꺾인다.

뜻밖에도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등장한다. 박 대통령은 문체부 조사의 실무 책임자인 노태강 전 문체부 체육국장과 진재수 전 체육정책과장을 콕 찍어 “아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한다. 둘은 바로 좌천됐다. 하지만 이후 박 대통령은 “아직도 그 사람들이 있어요?”라는 말을 하고, 둘은 아예 옷을 벗게 된다. 그 뒤 많은 승마인들이 “국가대표가 될 실력인지는 미심쩍다”던 정유라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치명적 실수를 했음에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단체전 국가대표로 선발된다. 아시안게임에선 다른 선수들의 활약에 힘입어 무난히 금메달을 거머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승마협회 회장사는 왜 삼성으로 바뀌었을까</font></font>
정유라씨가 독일 예거호프 승마장에서 훈련받는 모습. 이 훈련 기간에 정유라씨는 국가대표 자격으로 대한승마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노웅래·김현권 의원실 제공

정유라씨가 독일 예거호프 승마장에서 훈련받는 모습. 이 훈련 기간에 정유라씨는 국가대표 자격으로 대한승마협회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노웅래·김현권 의원실 제공

정유라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뒤 2014년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승마협회의 무리수가 시작된다. 이 무렵 승마협회는 중요한 변화를 겪는다. 한화가 맡고 있던 회장사가 전격 삼성으로 교체된다. 그 맥락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승마계 안팎의 평가가 엇갈린다.

어떤 이들은 2014년 이른바 ‘십상시 파문’으로 청와대 정보가 한화로 흘러 들어간다는 것을 알게 된 청와대가 진노해 한화가 발을 뺐다고 말한다. 정유라의 아버지 정윤회와 한화의 밀착설이다. 또 다른 시각은 엇비슷한 시기에 있었던 한화의 삼성그룹 석유화학·방산 부문 4개사 인수를 꼽는다. 두 사건의 시기는 2014년 11월로 겹치는데, 무엇이 진짜 이유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큰 판’을 컨트롤할 수 있는 조직은 딱 한 군데밖에 없다. 삼성의 승마협회 진출에 정지 작업을 했던 이영국 삼성전자 글로벌 마케팅실 상무(전 승마협회 부회장)는 과의 통화에서 이에 대해 “드릴 말씀이 없다”며 “하라고 해서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회장사가 바뀐 이후 승마협회는 ‘대한승마협회 중장기 로드맵’(2015)을 세운다. 올림픽 출전이 유력시되는 승마선수들을 선발해 ‘2016년 1월1일부터 2020년 7월30일까지 독일 전지훈련 캠프에 장기간 상주하는 방식으로 훈련을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2020년 올림픽은 도쿄에서 열린다. 개최국 일본은 승마에서 자동진출권을 갖는다. 늘 일본에 밀려 올림픽 출전조차 좌절됐던 한국 처지에서 장기간 유럽 전지훈련은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졌다.

문제는 예산이었다. 승마협회는 ‘선수 1명당 말 구입(40억원)과 전지훈련비(10억원) 등 50억원’이 소요되는 원대한 규모의 예산을 짰다. 총예산 규모가 무려 608억1천만원에 이르는 매머드급 계획이었다. 말도 안 되는 규모였지만, 회장사가 삼성이다보니 그러려니 받아들여졌다.

이때 또다시 승마협회 안팎에 이상한 소문이 돈다. 정작 누굴 훈련할지 가리는 선발전을 치르지 않고 협회가 임의로 선수를 선발한다는 거였다. 한 승마계 관계자는 “계획 자체가 정유라를 보내기로 작심하고 작성된 것”이라며 “(최순실이) 1천억원 재단을 만들어 정유라가 금메달을 따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하고 다닌 것도 2015년이었다”고 말했다.

2015년 정유라와 승마협회의 행보는 여러 면에서 예사롭지 않다. 우선, 정유라는 이 무렵 말을 4마리나 추가한다. 2014년까지 정유라는 ‘Royal red’란 말을 주로 타고 대회에 출전했는데, 2015년부터 ‘FIFTY CENT6’ ‘SALATOR31’ ‘RAUSING123’ ‘VITANA V’ 등의 말을 더 보유하게 된다.

‘VITANA V’의 경우 유럽 그랑프리대회 우승마로 호가가 10억원 이상인 것으로 알려진다. 국제승마연맹(FEI) 홈페이지를 보면, 이 말들은 2014년 말부터 2015년 초에 정유라의 이름과 함께 처음 검색되는데, 이 말의 실제 주인이 정유라인지 아니면 누군가 구매한 것을 정유라가 ‘스폰 받아’ 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는다.

말의 진짜 주인이 누군지 확인하기 위해 국제승마연맹에 마주로 등록된 이들에게 메시지를 보냈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대답만 받았다. 이에 대해 한 승마인은 “그 말을 삼성이 사주지 않았으면 누가 샀겠느냐”고 반문하며 “그렇게 말을 사는 자금을 개인이 동원하긴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유라가 훈련한 장소 역시 미스터리다. 정유라는 2015년 국가대표 신분으로 지원을 받았다. 정유라는 예거호프(JAGERHOF) 승마장(10~11월), 호프구트(HOFGUT) 승마장(12월) 등을 훈련장으로 사용했다는 훈련 결과 보고서를 작성해 승마협회에 보고했다.

그러나 당시 정유라는 ‘임신 중’이었다. 그렇다면 훈련 결과 보고서는 날조됐을 가능성이 높다. 임신 중에 말을 타고 국가대표급 훈련을 받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국가대표 자격으로 독일에서 훈련한다는 명목으로 학교 출석을 면제받고, 국고로 지원된 돈까지 받았던 상황 자체가 허위였을 가능성이 농후하단 얘기다.

이 모든 상황을 승마협회는 몰랐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조력했다. 정유라의 독일행에는 승마협회에서 파견한 감독(박재홍 한국마사회 감독)이 함께했다. 정유라의 종목인 마장마술이 아닌 장애물을 주로 가르친 코치였지만 전문성과 상관없이 뽑혔다. 협회 쪽에선 김종찬 전무이사가 독일에 다녀오기도 했다. 승마계에서 최순실씨의 그림자로 활약한 박원오 전 전무 역시 독일에 오래 머물렀단 증언이 나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유라가 타는 10억원대 말의 진짜 주인은? </font></font>

2015년 이후, 정유라가 여전히 말을 타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독일 교민들은 도망자 신세가 된 정유라 가족이 ‘말 4마리와 개 10여 마리, 고양이 15마리 등을 데리고 다닌다’는 것을 조롱하는 의미로 ‘브레멘 악당들’이라고 부른다.

아직 폐쇄되지 않은 정유라의 페이스북 계정을 보면 정유라는 본인을 ‘랙돌(Ragdoll·고양이 품종명) 브리더(Breeder·사육사)’라고 소개하고 있다. 자기소개는 여전히 해맑다. “독일 오버우어젤에서 소규모로 랙돌을 사육하고 있다. 나는 랙돌을 사랑하고, 다른 동물들도 모두 사랑한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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