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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유리 무전불리’의 부조리극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 의혹

최순실의 ‘작전’-이권에 눈먼 부도덕한 일부 교수들-돈줄로 대학 옥죈 정부 ‘합작’
등록 2016-11-02 20:50 수정 2020-05-03 04:28
3부_파국의 시작 정유라
정유라를 둘러싼 의혹을 밝히는 과정에서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열렸다. 정유라를 국가대표로 만들고 대학에 입학시키는 과정에 최순실 주도로 승마계와 정부, 이화여대가 함께 치밀한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이다.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10월17일 교내에서 열린 최순실의 딸 정유라 관련 특혜 의혹을 해명하는 교직원 간담회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최경희 이화여대 총장이 10월17일 교내에서 열린 최순실의 딸 정유라 관련 특혜 의혹을 해명하는 교직원 간담회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돈 앞에 대학 없다’. 제1125호(2016년 8월22일 발행)에 실린 한 기사의 제목이다. 당시 기사는 출생아 수가 급감한 2001~2005년생들의 대학 입학 시기를 앞두고, 대학 정원 감축을 유도하기 위해 교육부가 법률에 명시되지도 않은 비정상적 수단을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해당 기사의 한 대목.

“2012년 반값 등록금 정책으로 ‘국가장학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 대학의 등록금이 사실상 동결되면서 각 대학이 추가 수입을 올릴 수 있는 곳은 정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뿐이다. 대학교육연구소 자료를 보면, 2024년까지 대학 입학정원이 16만 명가량 줄어들 경우 사립대 1곳당 185억원 정도 등록금 수입 감소가 예상된다. 돈에 쪼들리는 대학이 학내 갈등을 무릅쓰고 대학 구성원의 동의를 얻지 못하는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학내 갈등에서 ‘최순실 게이트’로

기사가 실린 시점은 ‘최순실 게이트’가 언론에서 본격적으로 다뤄지기 전이었다. 최순실 관련 기사들은 9월 들어 폭발적으로 쏟아져나왔다.

‘이화의 난’으로 일컫는 이화여대 학내 갈등도 대학재정지원사업과 밀접히 연결돼 있다. 최경희 이대 총장은 교수·재학생·졸업생 등 학교 안팎의 여론을 무시한 채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미래라이프대학 설립, 지원금 30억원)을 밀어붙였다. 이에 반발한 학생들은 7월28일부터 집회와 본관 점거 농성을 벌였다. 결국 최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 설립 계획을 철회하겠다고 8월3일 발표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7월30일 밤 교내에 1600여 명의 경찰을 불러들인 총장을 겨냥해 퇴진 요구를 굽히지 않았다. 그 와중에 130년 이화여대 역사에서 최초의 승마 특기생으로 입학한 학생의 이름이 시민들에게까지 급속히 퍼졌다.

정유라(20). 박근혜 정권의 국정을 농단한 주범으로 지목된 최순실(60)의 외동딸이다. 이대의 정유라 특혜 의혹은 크게 입학과 출석·학점 문제 둘로 나뉜다.

먼저 입학 과정. 애초 정유라는 승마 특기생 입학 지원 자격 자체가 없었다. 2014년 9월 당시 이대 수시모집 요강에는 “원서접수 마감일(9월16일) 기준 최근 3년 이내 국제 또는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개인종목 3위 이내”로 명시돼 있다. 정유라가 인천아시안게임 승마 경기에서 딴 금메달은 개인 종목이 아닌 단체전(마장마술)이었다. 금메달 수상 시점도 원서 접수일을 이미 넘긴 9월20일이다. 이대 입학처 누리집 게시판에도 “개인 수상만 인정한다. 단체 수상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식 답변이 있었다.

그런데도 정유라는 서류전형을 통과했고 면접까지 치렀다. 면접 당일에는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수단복을 입고 자신이 딴 금메달을 들고서 면접장에 나타났다고 한다. 체육특기자 전형 경쟁률 18.5 대 1을 비웃듯 정유라는 합격했다. 정유라는 합격자 발표 뒤 특혜 논란이 일자 12월3일 이런 내용이 담긴 글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기도 했다. “능력 없으면 니네 부모를 원망해. 있는 우리 부모 가지고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고. 돈도 실력이야….”

입시 특혜 의혹을 두고 남궁곤 이대 입학처장은 “서류 (접수) 기한 이후라도 국제대회 입상자라면 점수를 줘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해명은 의혹에 더욱 불을 붙였다. 10월11일 입시 평가에 참여했던 한 교수는 이대 교수협의회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주요 내용은 이랬다.

“체대 평가장 입실 전 평가자들에게 안내할 때 입학처장 왈, 금메달을 가져온 학생을 뽑으라고 한 것이 사실.” “입학처장 발언에 일부 관리위원들의 항의가 있었고, 해당 지침과 무관하게 평가 진행하도록 재안내가 되었다.” “수많은 입시생 중 최순실의 딸 정모양이 특이하게 금메달과 선수복을 지참.” “이후 정상적 입시 절차로 모든 것이 진행되었으나 처장의 발언이 영향 없었다고는 말 못한다.”

청담고·이대 모두 첫 승마 특기생
10월18일 서울 이화여대 종합과학관 엘리베이터 옆 벽면에 최순실의 딸 정유라 특혜입학 의혹을 풍자한 말 머리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10월18일 서울 이화여대 종합과학관 엘리베이터 옆 벽면에 최순실의 딸 정유라 특혜입학 의혹을 풍자한 말 머리 모양의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한겨레 신소영 기자

이대에서 체육특기자 종목에 승마를 포함한 것도 당시가 처음이었다. 앞서 서울 청담고 또한 정유라가 지원하던 해 처음으로 승마를 체육특기자 종목으로 집어넣었다. 이 2011년 8월 작성된 서울시교육청의 ‘2012학년도 고등학교 신입생 전형요강’을 확인해보니, 청담고의 경우 남자는 없고 여자 1명만을 승마(마장마술) 체육특기자로 배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대가 체육특기자 종목을 11개에서 23개로 늘리면서 승마를 넣은 시점(2013년 5월 체육과학부 교수회의)도 미묘하다. 바로 1개월 전 경북 상주에서 열린 한국마사회컵 전국승마대회에서 정유라는 2위를 했다. 곧바로 대단히 이례적으로 경찰이 심판들을 소환해 조사했다. 이후 승마협회에 대한 정부의 대대적인 감사가 벌어지는 등 2014년 ‘정윤회 비선 실세 파문’으로 비화했던 사건의 시발점이다.

2013년 4~5월은 박근혜 정부 출범 직후였다. ‘정유라 특혜 의혹’은 사실상 박 대통령이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최순실의 ‘딸 대학 보내기 작전’은 이때부터 시작된 것 아닐까.

정유라의 대학 입시를 코앞에 둔 2014년 4월 최순실이 청와대 교육문화수석실에서 작성한 체육특기자 입시 문건을 미리 건네받았다는 의혹도 있다. 이 문건에는 ‘면접 비중을 줄이고 개인별 기록을 반영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입학 이후에도 비정상적인 학사 운영은 끊이지 않았다. 정유라는 입학 뒤 학교에 제대로 출석조차 하지 않았다. 1학년 1학기 평균 평점이 0.11이다. 학사경고를 받았고 2학기는 아예 휴학했다. 올해 들어 2학년 1학기. 정유라는 여전히 학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학사경고가 누적되면 학교에서 제적될 수 있다’는 지도교수의 연락을 받은 정유라와 최순실은 이튿날 학교에 함께 나타났다. “교수 같지도 않고 이런 뭐 같은 게 다 있냐”는 폭언과 함께 고성이 오갔다. 지도교수는 그날 다른 교수로 전격 교체됐다.

정유라가 학교에 나오지 못한 이유로 ‘원정 출산’ 의혹도 불거졌다. 주진우 기자는 10월26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서창석 교수가 2014년 9월 갑자기 대통령 주치의가 되었고, 2016년 5월 주치의를 그만둔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대통령 주치의의 재임 기간과 최순실 딸의 임신 기간이 신기하게 겹친다’는 내용의 글을 올렸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작전’

학점 또한 비정상적으로 ‘관리’됐다. 1학년 1학기 0.11이던 학점은 올해 들어 수직 상승했다.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정유라는 올해 1학기 6개 과목을 수강해 평균 2.27점을 받았다. 출석·시험을 대신해 제출했다는 리포트에서 “해도해도 않되는 망할새끼들에게 수는 수법” “왠만하면 비추함” 등의 비속어와 한글정서법에도 맞지 않는 표현을 쓰며 수준 이하의 글을 냈지만 학점을 인정받았다. 해당 과목 교수는 이런 정유라에게 극존칭을 쓰며 전자우편을 보내기도 했다. 이 교수가 정유라의 입학 전형 당시 면접관이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여름 계절학기 학점 특혜 의혹도 있다. 의류산업학과의 ‘글로벌 융합 문화 체험 및 디자인 연구’라는 과목은 지난 8월 중국을 방문해 패션쇼를 하는 수업이었다. 정유라는 출국 전 준비 과정이나 현지 패션쇼 일정에도 학생들과 함께하지 않았다. 수업이 아니라 사실상 국외여행을 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유라는 이 과목을 포함해 계절학기에서 평균 학점 3.30점을 받았다. 중국에서 학생들이 패션쇼를 준비하던 8월3일은 이대에서 학생들의 농성이 한창이었으며, 최 총장이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을 포기하겠다고 밝힌 날이기도 하다.

이 과목을 강의한 이인성 의류산업학과 교수는 최경희 총장의 측근으로 알려졌으며, 지난해 하반기 이후 3건의 정부 지원 연구(55억원) 사업을 맡고 있다. 1995년 이대에 부임한 뒤 이 교수가 맡은 정부 지원 연구는 이번 3건을 포함해 모두 9건이다. 정부 지원 연구 사업 전체의 3분의 1을 최근 1년 사이에 얻어낸 것이다.

이런 엉터리 학점 특혜가 가능했던 원인으로 대학 쪽 학칙 변경이 거론된다. 특히 이대는 지난 6월 체육특기생이 국제대회나 훈련·연수에 참가할 경우 출석으로 인정하도록 바꿨다. 최순실 모녀가 지도교수를 찾아가 거칠게 항의한 지 두 달 뒤 일이다.

최경희 이대 총장은 10월19일 총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최근 체육특기자와 관련해, 입시와 학사 관리에 있어서 특혜가 없었으며 있을 수도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했다. 2014년 7월 최 총장은 박근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위촉됐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의 장모(김장자 삼남개발 대표)는 지난해 이대에 1억원을 기부했다.

올해 교육부의 대학재정지원사업 9개 가운데 이대는 무려 8개가 선정됐다. 최 총장은 2006~2007년 청와대 비서실에서 김관복 현 청와대 교육비서관과 함께 근무한 이력도 있다. 정권과 최 총장의 ‘관계’가 유착돼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대학재정지원사업 등 대학 통제의 부작용

김혜숙 이대 교수협의회 공동회장은 “최경희 총장이 (정유라 특혜 의혹과) 연관된 것이 사실로 밝혀진다면, 이는 이화정신에 위배되는 정도가 아니라 사법처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범죄적 행위”라고 단언한다. 교육부는 조만간 이대 감사에 나설 참이고 검찰 수사도 예정돼 있다.

10월27일 서울시교육청은 정유라가 재학했던 청담고의 출결 관리 부분을 조사해 발표했다. 훈련이나 대회 참가를 이유로 출석하지 않은 공결 일수가 1~3학년 각각 48일, 41일, 140일이었다. 서울시교육청 조사 과정에서 최순실이 학교장과 교사 등에게 세 차례 돈봉투를 건네려 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또한 출석 문제로 마찰을 빚은 정유라의 담당 교사가 최순실의 항의와 폭언 뒤 다른 교사로 바뀌었다는 진술도 나왔다. 이대 지도교수 사례와 판박이다.

‘유전유리, 무전불리’. 돈이 있으면 유리하고 돈이 없으면 불리한 세상. 대학도 예외가 아닌 지 오래다. 정유라가 이대에 일으킨 파문은 박근혜 정부 들어 대학재정지원사업과 총장직선제 폐지 등으로 강화된 대학 통제의 부작용과 이권에 눈먼 일부 교수들의 부도덕한 행태를 날카롭게 보여준다. 그리고 민주적이고 공정한 학사 운영과 진정한 대학 구조 개혁이 여전히 미완성이며 얼마나 절박한지를 통렬하게 드러낸다.

전진식 기자 seek1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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