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는 1988년 자서전에서 최태민 일가에 대한 깊은 신뢰의 감정을 드러냈다. “상대의 믿음과 신의를 한번 배신하고 나면 그다음 배신은 더 쉬워지며, 결국 스스로에게 떳떳하지 못한 상태로 평생을 살아가게 된다. …순수한 마음 하나로 함께한 그분들이야말로 진정 용기와 소신을 지녔다고 생각한다.”</font>
2015년 1월 검찰 수사를 받던 박관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이 했다는 말, “권력 서열 1위는 최순실, 2위 정윤회, 3위 박근혜”를 전한 기사( 2015년 1월7일치)가 다시 회자된다. 기사의 제목은 ‘박관천의 황당한 권력 서열 강의’였다. 정권 ‘비선 실세’ 의혹이 수사기관에서 허위 사실로 밝혀진 참이었다.
더군다나 2007년부터 박근혜 대통령 비선 실세 의혹의 주인공은 줄곧 최씨의 전남편 정윤회(61)씨였다. 최근 ‘최순실 게이트’는 그간 정씨를 둘러싼 의혹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최씨가 어느 시점부터 ‘정치인 박근혜’의 비선 실세 역할을 했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최순실과 이혼 조건은 ‘결혼생활 누설 금지’ </font></font>정윤회씨와 최순실씨는 1995년 결혼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씨의 아버지 최태민씨가 별세한 이듬해다. 부동산 등기부등본을 보면, 정씨 부부는 1995년 4월 최씨의 어머니 임아무개씨로부터 서울 역삼동 부지와 건물을 공동 매입한 뒤 같은 주소지로 전입 신고했다. 그 무렵 결혼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듬해 10월 딸 정유라씨가 태어났다.
정씨 부부는 2014년 5월 서울가정법원에서 이혼이 확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 부부가 이혼 조정을 신청한 건 두 달 전인 2014년 3월. ‘양육권, 재산 분할 요구 및 결혼생활 관련 누설 및 비난 금지’가 조정 성립 조건이었다고 전해졌다.
그를 둘러싼 많은 일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다. 아래 기사의 대부분은 ‘전해진 이야기’라고 쓸 수밖에 없다. 정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인연은 박 대통령이 육영재단 이사장직을 내려놓은 1990년 11월3일 이전으로 알려졌다.
정씨의 과거 명함이 ‘육영재단 박근혜 비서실장’이었다는 목격담이 있다.( 2014년 12월4일치) 정씨는, 박 대통령과 1975년부터 인연을 맺은 최태민씨 부탁으로 박 대통령을 도왔다고 전해졌다.( 2014년 12월16일치) 하지만 정씨와 정씨의 아버지는 최태민의 부인 임아무개씨가 제안한 일로 기억한다.
정윤회씨는 1955년 강원도 정선 출생으로 알려졌다. 서울 종로구 내수동 보인중학교를 거쳐 1974년 보인상업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을 나온 뒤 1981년 대한항공 보안승무원으로 입사했다. 1993년 경희대 경영대학원에서 관광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정씨는 “대한항공 승무직으로 10여 년 근무했다”고 밝힌 적이 있다.( 2014년 12월1일치) 정씨의 아버지는 “(아들과 전 며느리 최씨가) 고등학교 때부터 아는 사이였는데, 비행기 타다 우연히 다시 만난 걸로 들었다”고 설명했다.( 2016년 10월22일치)
정씨는 대한항공을 나와 사업을 시작했다. 법인 등기부등본을 보면, 1994년 6월 그는 주식회사 얀슨 대표이사가 됐다. 같은 달 최순실씨는 얀슨의 이사로 등재돼 있다. 얀슨은 서울 강남구에 본점을 두고 커피·체육 관련 용품 수입, 식품업, 승마장업부터 교육·의류·해외이주 사업 등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으로 돼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근혜 “정씨가 (선거) 돕겠다 해서 순수하게 도운 것”</font></font>정씨가 정치인 박근혜를 보좌하기 시작한 건 1997년부터다. 박 대통령은 그해 12월 한나라당에 입당하면서 정치인의 길을 걷는다. 이듬해 4월 대구 달성군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에서 박 대통령은 국회의원이 됐다. 그 중심에 정씨가 있었다.
정씨는 “1997년부터 10년간 정치인 박근혜의 비서실장을 지냈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14년 7월9일치) 박 대통령도 정씨와의 인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대구 달성군에 국회의원으로 처음 나왔을 때… 개인적으로 캠프를 차려 선거를 치르려니 전혀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정윤회씨가 돕겠다 해서 순수하게 도운 것이다.”(2007년 7월19일 한나라당 대선 경선 후보 인사검증 청문회)
당시 한나라당 경선 후보인 이명박 캠프는 박근혜 후보를 둘러싼 최태민·최순실·정윤회의 관계와 육영재단 비리 의혹에 대해 집중 추궁했다. 정씨는 “7년 전에 (2007년) 사실상 나는 ‘잘린 것’이다. 내가 최태민 사위라는 구설에 오르는 게 대통령에게 부담스러운 건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말한 적이 있다.( 2014년 7월9일치)
하지만 정씨는 그 후에도 박근혜 ‘비선 실세’ 구설을 피하지 못했다. 은 2014년 3월22일치에서 ‘박지만 “정윤회가 날 미행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는 2014년 11월28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동향감찰 보고서를 입수해 ‘정윤회 국정 개입은 사실’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다. 정씨는 명예훼손 혐의로 두 언론사의 기자들을 형사고소했다. 검찰은 ‘명예훼손 사건’과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보고서 유출 사건’을 함께 수사했다.
검찰의 ‘청와대 문건 관련 사건 중간 수사결과’ 발표문과 ‘문건’ 작성자인 박관천 전 행정관 공무상 비밀 누설 사건 1심 판결문을 보면 사건의 시작은 2014년 1월이었다. 박 전 행정관이 작성한 청와대 보고서 제목은 ‘청 비서실장 교체설 등 관련 VIP 측근(정윤회) 동향’으로 2014년 1월6일 작성됐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박지만 미행설’ ‘세월호 의문의 7시간’ 의혹에도 </font></font>보고서엔 정씨가 매달 두 차례 서울 강남의 한 중식당 등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리는 이재만·정호성·안봉근 비서관 등 10명으로 구성된 ‘십상시’와 모여 청와대 내부 동향, 현 정부 인사 동향 등을 보고받고 정부·청와대 내부 인력 조정에 대한 의견을 안봉근 비서관에게 전달해 시행하도록 하면서 일부 언론과 정보지 관련자들을 만나 (지침대로) 정보를 유포하라고 지시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예를 들어 2013년 송년 모임에선 정씨가 2014년 초·중순께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을 그만두게 할 예정이며 정보지 및 일부 언론에서 ‘바람잡기’를 할 수 있도록 정보 유포를 지시했다고 되어 있다.
박 전 행정관은 박아무개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으로부터 ‘십상시’ 모임의 막내이자 총무인 김아무개 행정관의 말을 전해듣고 문건을 작성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전 청장 등은 검찰 조사에서 이를 부인했다.
‘박지만 미행설’도 발단은 2014년 1월 시작됐다. 박 전 행정관은 그 무렵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 박지만 EG 회장에게 “정윤회의 사주를 받은 남양주 카페 운영자가 오토바이를 타고 미행한다”고 보고했다. 당시 박 전 행정관은 박 회장 부부의 감찰 담당자였다. 박 전 행정관은 첩보 내용 가운데 박 회장 부부에게 직접 확인이 필요한 내용은 조사 문건을 보여주고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박 전 행정관의 ‘미행설’ 보고를 들은 박 회장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정윤회 쪽이 자신을 미행했는지 확인해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2014년 3월 이 ‘박지만 미행설’을 보도하자, 다시 박 회장은 박 전 행정관에게 관련 자료를 요청해 ‘회장님 미행 관련 건’이란 보고서를 제출받았다. ‘정윤회가 만약을 대비하여 박지만의 약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면서 박지만의 동향을 관찰하도록 지시’했다는 내용 등이 보고서에 담겼다.
박 전 행정관은 이후 검찰 수사를 받을 때, 그 보고서에 대해 ‘확인되지 않거나 확인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다’고 밝혔다. 보고서에서 박 회장을 미행했다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카페 주인 등도 관련 사실을 부인했다.
검찰은 ‘박지만 미행설’과 ‘정윤회 보고서’의 내용을 허위라고 결론 냈다. 하지만 2014년 1~3월 생산된 그 보고서들이 김기춘 비서실장, 박지만 회장, 정윤회씨를 둘러싼 ‘권력 암투’의 증거라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이 무렵 정씨는 가정사(이혼)까지 겹쳐 힘든 시기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정씨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당시 ‘대통령의 7시간 행적’과 관련해 또 다른 의혹에도 휘말렸다. 박 대통령이 참사 당일 서면 보고를 받은 오전 10시께부터 오후 5시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를 방문할 때까지 ‘대면 보고’나 ‘대통령 주재회의’가 없었던 배경에 대해 의혹이 일었다. 세간엔 그 ‘의문의 7시간’ 동안 ‘비선 실세’인 정씨와 함께 있었던 것 아니냐는 풍문이 떠돌았다.
이런 풍문을 소재로 쓴 최보식 선임기자의 7월18일치 칼럼을 상당 부분 인용한 일본 서울지국장 가토 다쓰야의 8월3일치 기사는 이렇다.
“증권가 관계자에 의하면, 그것은 박 대통령과 남성의 관계에 관한 것이다. 상대는 대통령의 모체, 새누리당의 전 측근으로서 당시는 유부남이었다고 한다. …증권가 관계자가 말하는 바로는, 박 대통령의 ‘비선’은 정씨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그러나 ‘박씨와의 긴밀한 관계가 소문으로 된 것은, 정씨가 아니라 그의 장인 최(태민) 목사 쪽이다’라고 밝힌 정계의 소식통도 있어,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이혼 2년여 뒤 전처가 비선 실세 게이트 중심에 </font></font>검찰은 인터넷 기사를 통해 정씨와 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한 혐의(정보통신망법 위반)로 가토 다쓰야를 불구속 기소했다. 가토 다쓰야의 2015년 1월19일 재판에 정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날 그는 “2007년 비서실장을 그만둔 이후 박 대통령을 만난 적이 없다. 2012년 대선 당선 직후 박 대통령이 안봉근 비서관을 통해 전화가 와서 통화한 게 유일한 연락이었다”고 설명했다.
검찰 수사 결과, 정씨는 세월호 참사 당일 점심 무렵 서울 신사동 자택에서 역술인 이아무개(59)씨의 서울 평창동 사무실을 방문한 뒤 귀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법원은 2014년 4월16일 정씨가 박 대통령과 만났거나 두 사람이 긴밀한 남녀관계라는 점은 객관적 정황과 부합하지 않지만, 가토 다쓰야가 두 사람을 비방할 목적은 없었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9년간 정권 ‘비선 실세’ 의혹에 휘말렸던 정씨. 그가 이혼한 지 2년여 만에 그의 전처가 ‘비선 실세’로 드러났다. 한국 사회는 지난 7년간 허깨비를 본 걸까.
김선식 기자 kss@hani.co.kr제1135호는 ‘최순실 게이트’의 전말을 탈탈 털어 담았습니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지금 바로 예약구매하실 수 있습니다. 11월 6일까지 제1135호를 구매하시는 모든 분께 제1136호를 무료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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