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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최순실 사태’ 바라보는 박근혜 주변 정치인 8명 인터뷰…

최순실 존재 자체 대부분 “몰랐다”
등록 2016-11-01 16:15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녹화 사과는 성난 민심에 기름을 부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지는 최순실과 측근들의 월권행위 관련 뉴스는 국민을 아연실색하게 만든다. ‘탄핵’과 ‘하야’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터져나온다. 국정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은 과거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일했거나 곁에서 지켜본 정치인들의 소회를 들어봤다. 하나같이 참담함과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비선과 독단이라는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빚어낸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많았다. _편집자 </font>
<font size="4"><font color="#008ABD"> “경제민주화공약 왜 안 지키나 했더니”</font></font>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비상대책위원)

참담하다. 이런 일이 현실적으로 벌어졌다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우니 참담하다고 하는 것이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이후 대통령제에서) 비선 실세들이 너무 역할을 해서 결국은 나라가 제대로 굴러오지 못했다.

2012년 내가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탐욕이 없을 것이다. 둘째, 주변이나 가족관계가 간단할 것이다. 셋째, 누구한테 신세를 진 적이 없어서 방향만 제대로 설정하면 제대로 갈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다. 비상대책위 당시에는 이런 사람들이 깔려 있다는 것을 전혀 확인하지 못했다. 당시에는 (최순실을) 몰랐다. 그들에게 실질적 권력이 없었으니까 권력을 행사할 수도 없었다. 연설문 같은 걸 뒤에서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말이다.

권력을 잡은 다음에는 박 대통령과 완전히 결별한 상태였다. 나는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등) 선거 공약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에 의구심만 가졌다. 이제 실체를 놓고 보니까 최순실 같은 사람들이 뒤에서 장난쳤다는 게 드러났다. 그래서 참담하다.

과거를 살펴보면 우리나라에서 돈의 권력을 쥔 재계 사람들은 정치권력이 바뀌면 누가 최고권력자와 가장 가까운지 정말 열심히 찾는다. 그들의 포위망에 걸리면 대통령 역시 그렇게 따라갈 수밖에 없다. 결국 이번 사태로 ‘그동안 내가 추측했던 것이 맞구나’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제 박 대통령은 심기일전해서 상황 인식을 더 정확하게 해야 한다. 국민이 어떻게 생각하느냐를 제대로 인식해서 처방을 찾아야지, 적당히 변종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해선 절대 안 된다. 대국민 사과만 해도 최순실의 실체를 인정하면서 설명은 너무나 부족했다. 사과 뒤 나온 언론 보도로 박 대통령은 신뢰를 완전히 상실해버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닉슨 대통령 사임했다고 미국이 망하진 않았다”</font></font>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한겨레 김태형 기자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비상대책위원)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은 박 대통령이 과거 고 최태민, 최순실씨 등과의 인연을 끊고 이명박 정권과는 다른 모습을 보일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그렇지 못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과거 대선 시절 인혁당(인민혁명당) 사건을 비롯한 부친 시절의 과거사 문제에 대해 당에서 깔끔하게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음에도 박 대통령이 두 개의 판결이 있다고 엉뚱한 말을 한 것도 배후에 최순실씨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사태가 초래된 것은 전적으로 과거와 인연을 끊지 못한 박 대통령 본인의 책임이다. 최순실씨 등과의 인연을 끊지 못함으로써 이른바 ‘어둠의 세력’이 확실히 부활한 것이다. 박 대통령이 국정 농단을 자초했다.

대통령이 사태를 수습할 수 없다고 본다. 앞으로 최순실씨 인사 개입 등 국정 농단 문제가 더 나올 것이다. 일부에선 대통령이 직에서 물러나거나 탄핵되면 헌정·헌법 공백을 초래한다고 하는데 그건 아니다. 외려 ‘식물 대통령’으로 자리에 있는 게 헌법의 위기를 초래한다. 미국의 과거 사례를 보라.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했다고 미국이 망했는가. 당장 대통령이 사임하거나 탄핵되진 않겠으나 결국엔 그렇게 되고 말 것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박근혜 주변에 직언하는 사람 없었다”</font></font>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정의화 전 국회의장

지금 사태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개인의 과거 트라우마도 있을 수 있다. 대통령 주변에는 공적이고 정상적인 국가기관들이 있다. 비서실장을 중심으로 한 청와대 비서진, 총리를 중심으로 한 행정부, 국정을 상의할 국회가 있다. 이런 정상적 시스템을 가장 우선적으로 활용해 국정을 운영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미진했다.

이른바 ‘문고리 3인방’이나 청와대 비선 실세, 친박 실세 등 대통령을 에워싼 사람들 말고 직언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어야 했다. 당 태종이 성군이라고 하는데 당시에는 ‘위증’이라는, 직언을 하는 신하가 있었다. 당 태종은 위증이 죽은 뒤 “내 거울이 없어졌다”고 했을 정도다. 그런데 박 대통령 주변 실세들 중에는 직언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이 박 대통령은 과거 인연을 이어온 사람들과 계속 관계를 이어갔다. 대한민국은 국민의 나라이지 한 개인의 나라가 아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가상현실 같은 현실”</font></font>
한겨레 강창광 기자

한겨레 강창광 기자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내가 거꾸로 묻고 싶다.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다. 보다 더 가상현실 같다.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 최순실씨를 폄하하려는 게 아니지만, 그는 정치적 경험이나 전문적 식견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런 사람이 대통령의 말벗이 돼주거나 옷 코디를 해준 것을 넘어, 국정 대소사를 함께 논의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겠나. 심지어 그 사람의 의견을 채택해버리는 일까지 있고. 최순실씨와 대통령이 영적 관계가 아니냐는 말 말고는 설명할 엄두가 안 난다.

지금 국가 컨트롤타워가 붕괴하고 있기 때문에 특검을 하는 동안 잘못하면 무정부 상태가 될 수 있다. 우선은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되는 비서진은 물러나야 한다. 그러나 내각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 그들이 맞든 틀리든 특검 수사를 하는 동안 내각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내각 혼자 국정을 못 끌어간다. 집권당인 새누리당이 중요하다. 내각과 집권당 공동으로 과도기적 거버넌스 체제를 짜야 한다. 그다음에 수사 결과가 나오면 거국내각으로 새로운 거버넌스를 짤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특검 수사가 시작되는 시점에 스스로 당적을 정리해야 하지 않겠나 싶다. 그게 최소한 대통령이 할 일이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하야’라는 말조차 아깝다”</font></font>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김수한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 고문)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역겨운 일이 벌어졌다. 최순실씨 등은 평가 이하의 사람들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일인독재, 안하무인적 속성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본다. 최씨에게 의존할 불가항력적 이유가 있었던 것도 아니지 않은가. 대통령이 국민 앞에 할 수 있는 가장 큰 속죄를 해야 한다. 그 정도 상식과 체면, 부끄러움은 대통령이 지녔을 것으로 안다. 개인적으로는 ‘하야’라는 말조차 아깝다고 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경제부총리도 대통령 대면 보고한 적 없다는데” </font></font>
한겨레 이정아 기자

한겨레 이정아 기자

이혜훈 새누리당 의원
(2005년 박근혜 대표 시절 정책조정위원장)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상 이번 사태가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본다. 대통령은 공식 채널 대신 비선 조직을 통해 일한다. 이전부터 많은 사람이 박 대통령에게 비선 조직에 의존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청와대에선 ‘문고리 3인방’을 통해 보고가 올라간다고 한다. 권한도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한 권한을 지니고 국정을 농단하는 일이 생겨난 것이다. 가계부채가 1300조원이 넘는 위기 상황인데 경제부총리가 최근 대통령에게 직접 대면해 보고한 적이 없다고 할 정도다. 이게 정상인가.

이번 일은 한국을 조선시대로 되돌려놓은 것이다. 대한민국의 시계를 제로 상태로 만들었다. 이대로는 제대로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다. 내각이 총사퇴하고 우병우 민정수석이나 ‘문고리 3인방’을 비롯한 청와대 비서진을 모두 바꿔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정윤회씨가 사라진 뒤 벌어진 일들” </font></font>
한겨레 김정효 기자

한겨레 김정효 기자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이런 일은 그간 박근혜 대통령 주변에 있었던 정윤회씨가 사라진 뒤 벌어진 것이다. 그가 사라지니까 전혀 기본도 없고 견적도 나오지 않는 최순실씨가 나서면서 일이 일어난 것이다. 최씨가 배후에서 지휘를 하니까. 아직 우리 국민이 신민·왕정 시대를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에 대한 막연한 기대만 갖고 대통령을 뽑은 책임이 적지 않다. 박 대통령은 이미 통치력을 상실했다. 일하는 데 전혀 영(令)이 서지 않는 상황이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영화 에 나온 것처럼 마지막 결정타가 나올 수도 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 “최순실 개입 전혀 몰랐다” </font></font>
한겨레 신소영 기자

한겨레 신소영 기자

권영세 전 주중대사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사무총장)

특별히 할 말이 없다. 나라가 걱정인 것은 틀림없다.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진상 규명이 철저히 돼서 책임자에게 책임을 물어야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안타까운 상황이다. 최순실씨가 국정에 개입한다는 걸 과거엔 전혀 몰랐다. 2012년 4월 총선을 할 때는 내가 사무총장으로 정신이 없었고, 9월에는 대선캠프 종합상황실장을 맡아서 대선이 코앞이라 정신없이 지냈다.

당시 연설문은 우리가 직접 생산한 게 아니라 선거 흐름이나 메시지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는지만 알려줬다. 그렇게 하면 연설문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살을 붙여 만들었다. 그 사이에서 어떻게 연설문이 만들어지는지 전혀 몰랐다. 당시 박근혜 후보의 복장 등은 기존에 해오던 분들이 알아서 하겠지라고 생각해서 거기까지 관심을 못 뒀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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