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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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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닥 훅, 내려오라”

‘최순실 게이트’로 터졌지만 최순실 게이트로 막기 어려운 시민 저항

탄핵·사퇴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시민들, 동력 잃은 ‘순실 개헌’
등록 2016-11-01 15:59 수정 2020-05-03 04:28
<font color="#006699"><font size="4">1부_선택의 시간 박근혜</font>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명백히 드러난 ‘연설문 유출 사과’를 제외하면 최순실과 관련된 모든 의혹에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은 묵묵부답의 불통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 ‘워터게이트’에서 리처드 닉슨의 사임에서 보듯, 잘못도 문제지만 잘못의 은폐는 더욱 결정적 문제가 된다. 은폐의 실패가 낳은 분노는 걷잡지 못한다.</font>
10월27일 서울 광화문 광장 등에 모인 시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실체가 끝없이 드러나는 가운데, 그동안 쌓인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다시 ‘광장의 정치’가 시작되고 있다. 김진수 기자

10월27일 서울 광화문 광장 등에 모인 시민들은 박근혜 정부의 퇴진을 요구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의 실체가 끝없이 드러나는 가운데, 그동안 쌓인 불만이 폭발하고 있다. 다시 ‘광장의 정치’가 시작되고 있다. 김진수 기자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설마설마했던 최순실의 실체가 드러났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불법 모금 의혹에 ‘#그래서_최순실은?’이라고 묻던 시민들은 국정 개입 실체가 드러나자 ‘#하야가_답’이라고 해시태그를 바꾸었다. 최순실을 향했던 화살은 청와대를 향하고 있다. 국정 농단의 당사자로 대통령의 책임을 묻는 것이다. 선거로 선출한 대통령이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흔들리는 상황을 앉아서 묻지 않기로 한 시민들은 거리로 나섰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순실의 나라’에서 살아왔다는 부끄러움</font></font>

‘달그닥 훅, 하면 된다. 재벌세상, 무속정권 퇴진하라!’

10월27일 저녁 6시30분, 손팻말을 든 시민들이 속속 서울 광화문 동화빌딩 앞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파업 중인 철도노동자, 철거 위기에 몰린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이 섞여 있었다. 이날 집회의 제안자 박점규씨는 “갑자기 집회를 알렸는데 제주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오겠다는 시민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열린 집회의 이름은 ‘최순실의 나라, 박근혜 퇴진’. 이들은 ‘이게 나라입니까?’라고 묻는다. 작금의 상황이 무속적 믿음이 아니면 설명되지 않는 현실에서 시민들이 만든 퇴진 촉구 스티커는 ‘부적’이었다. ‘혼이 비정상, 대통령 하야!’ ‘정말 간절히 원하면 온 우주가 나서서 하야시킨다’ 같은 대통령의 말을 패러디한 손팻말을 쓴 시민 100여 명은 “박근혜는 퇴진하라!” “최순실을 구속하라!” 외치면서 서울시청 방향으로 행진했다.

퇴근 시간에 맞춰 시작된 행진은 ‘최소한’ 앞으로 3주간 평일 저녁마다 예정돼 있다. 박점규씨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심정으로 혼자서 집회 신고를 내고 시작한 집회는 첫날부터 시민들의 호응 속에 시작됐다.

이들의 행진이 시작될 무렵, 서울 종로 보신각 앞에선 ‘박근혜 대통령 하야 촉구 정의당 시국대회’가 열렸다. 원내정당인 정의당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며 장외 투쟁에 나섰다.

“고심 끝에 용기를 내어 오늘 정의당은 거리에 나왔다. 한번 나온 이상 우리나라가 여전히 공화국임을 확인할 때까지, 대통령이 물러나서 중단된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세울 때까지 비켜서지 않을 것이다.” 나경채 정의당 공동대표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이날 집회에는 “퇴근하고 구파발 집 근처까지 다 갔지만 다시 돌아와 참여한 분, 세월호 사건에서 느낀 허탈함을 이번에도 느꼈다는 분도 있었다”고 그는 전했다.

이날 대통령 사퇴를 요구하는 집회는 말 그대로 전국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열렸다. 경북대·성균관대 등에서 10월27일 교수들의 탄핵·하야 시국선언이 이어졌고, 연세대·전북대 등 학생들의 시국선언도 불길처럼 번지고 있다. 대통령의 묵묵부답이 계속될수록 해시태그는 진화하고 있다. ‘#아직은_퇴진하지_않았다’

아직은 거리로 나오지 않은 시민의 경고도 있다. 다음 아고라에선 ‘박근혜 대통령은 하야하라’는 ‘200만 서명운동’이 한창이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박근혜 정부의 실정을 빼곡히 적은 탄핵·하야 청원에 서명한 이들이 10월28일 저녁 7시 2만1천 명이 넘었다. 네이버 카페 ‘안티 박근혜’ 등에는 주말 집회 일정을 묻는 이들의 글이 줄을 잇고 있다.

하야 서명의 끝에는 10월29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사퇴 요구 집회에 참석하자는 ‘약속’이 있다. ‘최순실의 나라’에서 살아왔다는 부끄러움을 참지 못하는 시민들의 ‘탄핵소추 발의 서명’이 잇따르지만, 주류 야권은 여전히 ‘두려움의 선’을 넘지 못하고 있다.

야권의 요구는 거국중립내각 구성에 멈추어 있다. 야권 유력 주자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는 거국중립내각 구성을 요구했다. 문 전 대표는 10월26일 성명을 통해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국무총리를 임명해 국정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기시라”고 요구했다. “거국중립내각의 법무부 장관으로 하여금 검찰 수사를 지휘하게 하라”며 “대통령이 그 길을 선택한다면 야당도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정치권은 ‘용기가 부족하다’</font></font>

안 전 대표도 “이 사건의 본질은 최순실 게이트나 최순실 국기 문란 사건이 아니라 박근혜 대통령 국기 문란 사건 또는 박근혜 대통령 헌법 파괴 사건”이라면서도 “여야가 합의해 임명된 총리가 국정을 수습해나가야 한다”고 요구했다.

정치권은 여야가 합의한 특별검사제로 사태를 수습하려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인다. 벌써부터 여론은 ‘대통령이 지명한 특별검사가 수사하게 된다’며 특검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다.

“워싱턴 정가에는 용기가 부족하다.” 하워드 진은 에 실린 ‘대통령 탄핵과 민주주의’에서 첫 문장을 그렇게 열었다. “이라크에서 죽음과 부상, 고문과 인권모독, 그리고 혼란이라는 범죄를 저지른 이 나라 정부는 이제 붕괴되어야 마땅하다”고 글은 이어진다. 명분 없는 이라크 전쟁을 감행하고 실패한 전쟁을 통해 비극을 양산한 부시 정부를 탄핵하지 않는 민주당을 비판한 글이다.

‘그 어떤 정부의 형태이든 이 목표(‘생명과 자유 그리고 행복 추구’를 모두 평등하게 할 권리)를 파괴하게 된다면, 그런 정부를 교체하거나 폐기해버리고 새로운 정부를 세우는 것은 미국 시민의 권리이다’라고 적힌 독립선언서가 “미국 전역의 교회에서, 연설 강단에서, 길거리에서 그리고 마을 라디오 방송을 통해 읽혀야 한다”고 하워드 진은 주장했다. 2008년 촛불시민이 헌법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를 노래한 것을 연상케 하는 말이다.

2016년의 시민들도 헌법기관인 대통령이 스스로 헌법을 파괴한 것으로 생각해 분노하고 있다. 하워드 진은 글에서 “야당인 민주당이,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속히 역전시키기 위해서는 담대한 행동이 지금 필요한 때라면서, ‘단합’과 ‘초당적 협력’을 웅얼거리듯이 내뱉고 있다”고 지적했다. 워싱턴에서 벌어진 일이 서울에서도 재현되고 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10월28일 “정의당과 하야·탄핵 움직임을 같이 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배후와 구조를 드러내야</font></font>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5일 ‘연설문 유출’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나중에 녹화방송으로 알려진 사과에도 여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탄핵’ ‘하야’ 등이 차지했다. 네이버 화면 갈무리, 청와대사진기자단

박근혜 대통령이 10월25일 ‘연설문 유출’ 사건에 대해 사과했다. 나중에 녹화방송으로 알려진 사과에도 여론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날 포털 사이트 검색어 상위권에 ‘탄핵’ ‘하야’ 등이 차지했다. 네이버 화면 갈무리, 청와대사진기자단

대통령 탄핵소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오자 법률 전문가들의 분석이 나온다. 대체로 탄핵 사유는 충분해 보이지만 절차에 대한 우려가 크다.

헌법학자인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기각결정문에서 헌법재판소가 탄핵의 요건을 대략 ‘헌법기관이 그 기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때, 국민의 신임을 저버렸을 때’로 밝혔다”며 “대통령이 국민의 신임을 저버린 것은 물론 혼자 정책 결정을 못해 헌법기관으로서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헌재 결정에서 증거로 배척당하지 않으려면 사실관계가 엄격히 증명돼야 한다”며 “특검을 통해 명백한 증거를 확인해야 하지만 현행 특검법으로는 어렵다”고 말했다. 특검 추천위 구성부터 법무부 차관 등 3명의 정부 인사와 국회 추천 4명으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이 1~2명 추천권을 가지면 특별검사 임명 추천위 과반수를 정부·여당이 가지게 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도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당사자들이 죄다 대통령 관련 사실을 부인할 테니” 증거 확보가 어려울 것을 우려했다.

무엇보다 탄핵소추가 국회를 통과하려면 국회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지금 국회 구성에서 새누리당 일부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 새누리당에 면죄부를 줄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한상희 교수는 “헌재 소장과 이정미 헌법재판관의 교체 시기도 맞물려 있다”고 했다. 헌재에서 6명 이상의 탄핵 결정을 얻기도 어려운데, 시점마저 미묘하다는 것이다. 여기에 탄핵 이후 직무대행이 ‘박근혜 사람’인 황교안 국무총리란 것에 주목하는 여론도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에 반대합니다.”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사회학)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은 이렇게 이어진다. “박근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어떤 범법을 했는지, 그게 왜 정말로 국가와 사회의 근본을 흔드는 심각한 문제인지, 지난 4년 동안 그런 박근혜 정권의 돌격대 역할을 한 새누리당·언론·관료집단·검찰·경찰의 핵심 요원은 누구인지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적나라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서 더 많은 국민이 그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최순실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적인 문제를 넘어서 이런 결과를 낳은 배후와 구조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불쌍한 박근혜’ 뒤의 더 교활한 집단이 있다”며 “국민의 분노는 이해가 가지만 그것이 휘발되어서는 안 된다”고 썼다.

배후를 드러내는 것과 더불어 권력을 바꾸는 경험이 중요하다는 견해도 있다. 김상철 노동당 서울시당 위원장은 “대통령제의 구조적 특징상 이 권력이 임기 중에 민주적 방식으로 축출될 수 있다는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렇게 해서 이른바 ‘제왕적 권력’ 구조가 최소한 민주적 권력 구조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긴다”고 지적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잘못보다 ‘은폐’가 더 문제다</font></font>

이명박 정권을 사적 통치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최순실 게이트는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정치학자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현재의 사태를 의인화된 드라마로 보면 거대한 국가권력을 통제할 기회를 잃어버린다”며 “국가조직인 청와대를 책임성 있는 기관으로 만드는 지혜를 왜 우리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얻지 못했나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비대하지만 비선 세력 하나 통제하지 못한 청와대 조직을 3분의 1 규모로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회조차 청와대 감사를 철저하게 하지 못하는 현재의 구조가 권력의 사유화를 키워왔단 것이다. 권력의 사유화를 제도로 제어하지 못하는 민주주의 실패를 분석해 “대통령의 일상적 통치에 책임을 묻고 청와대를 책임 있는 조직으로 개혁하는” 제도를 만들자는 제안이다.

‘탄핵’ 하면 떠오르는 역사가 있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사임한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 사례다. 공화당 후보 닉슨 쪽이 대통령선거 때 민주당 전국위원회를 도청한 사실이 밝혀졌다. 닉슨 대통령은 도청 사건 연루를 부인했지만, 끈질긴 언론 보도와 의회 조사로 그가 도청 사건을 무마하고 은폐하려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74년 미국 하원 사법위원회에서 대통령 탄핵 결의가 가결되자 닉슨은 대통령직을 사임할 수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명백히 드러난 ‘연설문 유출 사과’를 제외하면 최순실과 관련된 모든 의혹에 “모른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대통령은 묵묵부답의 불통을 이어가고 있다. 닉슨 사임에서 보듯이 잘못도 문제지만, 잘못의 은폐는 더욱 결정적 문제가 된다.

1987년 민주화를 촉발한 것도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였다. 박근혜 정부의 태도는 마치 시계추를 민주화 이전인 30년 전으로 돌린 것처럼, 무조건 “모른다”로 보인다. ‘덮으려다 엎어진’ 역사적 사례는 닉슨 사임만이 아니다. 은폐의 실패가 낳는 분노는 걷잡지 못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마침내 박정희 시대와 결별할까</font></font>

‘최순실 게이트’의 파문이 커지자 박근혜 대통령은 ‘개헌 카드’를 던졌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연설문 유출’이 드러나면서 대통령발 개헌은 동력을 잃었다. 개헌에 관심을 보였던 정치세력도 지금의 개헌에 선을 긋는다. 개헌 카드는 ‘순실 개헌’이라는 오명만 남겼을 뿐이다. 세계 인권 기준에 맞춘 헌법의 현대화, 지방분권 체제 강화 같은 오랜 숙의가 필요한 개헌의 이유마저 집어삼켜버렸다. 그러나 대통령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같은 권력 구조 재편은 여전히 위험한 변수로 남아 있다. 최순실 게이트를 개인의 문제로 돌리고, ‘헌정 질서 수호’라는 외피를 입은 세력이 개헌을 매개로 ‘야합’할 가능성을 시민들은 우려한다.

‘개헌은 됐고 하야’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저항이 시작됐다. ‘혹시나’ 했던 일들이 ‘역시나’로 밝혀지면서 ‘무속적 파시즘’ ‘샤머니즘 통치체제’ 같은 전대미문의 정치용어가 등장했다. 민주주의는 사적인 것을 공적인 제도로 통제하는 장치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며 지난 10년의 시계가 거꾸로 흘렀다는 잔인한 진실을 확인한 시민들이 헌법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다. 시민들이 만든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 이유서에서 보듯이 단순히 최순실 문제가 아니라 켜켜이 쌓여온 실정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오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밀실통치로 이어진, 그토록 끈질긴 박정희 시대의 유산과 우리는 마침내 결별할 수 있을까?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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