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는 한편, 책에 모두 담지 못한 이야기를 더해 앞으로 4주에 걸쳐 집중보도합니다. 2015년 4월부터 진행한 세월호 탐사보도의 마지막 매듭입니다.
취재 정은주 기자, 편집 신윤동욱 기자, 디자인 장광석
오전 10시30분 세월호는 침몰했다. 배가 기울어진 8시49분부터 101분 만이었다. 구조된 인원은 172명. 해경 헬기 3대가 35명, 123정이 선원 17명을 포함해 79명을 태웠다. 10시 전후에 도착한 어업지도선과 어선이 마지막까지 남아 승객 58명을 구조했다. 그리고 304명이 희생됐다. 은 ‘그날, 101분의 기록’을 144쪽에 걸쳐 재현했다. 일부를 소개한다.
몸이 뜬 채 바다로 떨어졌다▶세월호 3층 로비 선수가 오른쪽으로 빠르게 돌면서 배가 좌현으로 기운 것은 8시49분이었다. 단원고 양승진(57·실종) 교사와 학생들은 식당과 로비 사이에 놓인 소파에서 과자를 먹으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
순간 배가 왼쪽으로 확 넘어갔다. 양승진 교사의 몸이 붕 뜬 채 안내데스크 옆 로비 출입문을 통과해 갑판 밖 바다로 떨어졌다. 소파에 쉬고 있던 화물차 기사 심상길(55·생존)씨도 밖으로 튕겨나갔지만 가까스로 갑판 난간에 매달렸다. 근처에 있던 학생 몇 명도 출입문 밖으로 떨어져 난간에 부딪혔다. 뒤이어 날아든 소파에 깔린 정○○(17·생존) 학생은 갑판에서 정신을 잃었다.
“현재 자리에서 움직이지 마시고 안전봉을 잡고 대기하여주시기 바랍니다.” 8시52분, 안내데스크에서 여객부 선원 강○○(32·생존)이 여객 구역을 대상으로 선내 방송을 했다. 승객들은 “움직이지 말라”고 서로 주의를 주며 그대로 따랐다.
▶4층 선미 안내 방송이 끝나자 학생들은 심각해졌다. SP-3 객실에 있던 단원고 김시연(17·사망) 학생의 휴대전화에 그 모습이 담겼다.
8시56분 김시연 학생 촬영 동영상“이런 상황에서 그러지 않냐? 안전하니까 가만있으라고.”
“그러면 죽는 거야.”
“자기들끼리 나오고.”
“영화 보면 다 그러잖아? 지하철도 그렇잖아? 안전하니까 조금만 있어달라고 했는데 진짜 조금 있었는데 죽었잖아. 나머지 나간 사람들은 살고.”
“구명조끼 미리 입어야 하는 거 아니야?”
학생들은 투명 봉지에 든 구명조끼를 꺼냈다. 4층 우현 쪽 복도에 있던 학생들은 4층 중앙 홀로 구명조끼를 전달하기도 했다. 구명조끼의 제조 연도는 1994년. 1997년생 아이들이 자기 나이보다 오래된 구명조끼를 입고 대기했다.
배가 기울어지면서 바다와 가까워진 좌현 쪽 학생들은 상황을 더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최덕하(17·사망) 학생이 그랬다. 그는 전남 119종합상황실에 신고했다. “살려주세요.” 세월호에서 보낸 첫 구조 요청이었다.
8시55분 기관장 “빨리 튀어 올라와!”▶5층 조타실 선장 이준석(69·생존)은 선장실에서 바지를 갈아입다가 그만 문 쪽으로 넘어졌다. 팬티 바람으로 뛰쳐나와 조타실로 들어갔다. “아직 엔진 돌아가고 있어? 빨리 스톱 엔진 해.”
8시55분, 1등 항해사 강원식(42·생존)은 조타실 앞에 설치된 VHF 통신기로 제주VTS를 호출했다. 사고 해역은 제주VTS가 아닌 진도VTS 관할이었지만, 그는 사고 발생 위치가 어디인지도 파악하지 않은 채 호출부터 했다. “저기 해경에다 연락 좀 해주십시오. 본선 위험합니다. 지금 배 넘어가 있습니다.”
▶지하 기관실 전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조기수 박성용(59·생존)이 전화를 받았다. 기관장 박기호(54·생존)였다. “기관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탈출해라.” “빨리 튀어 올라와!”
기관장 박기호는 선장의 지시가 없는 상황에서 기관부 선원들에게 탈출 지시를 내렸다. 8시55분경이었다. 선원들은 3층 기관부 객실 복도로 올라갔다. 박기호도 조타실에서 나와 그곳으로 향했다. 기관부 선원은 승객이 퇴선할 경우 구명뗏목과 구명슈터(미끄럼틀)를 바다에 내릴 의무가 있었다.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세월호 4층 9시14분, 좌현 B-6 객실에는 서서히 바닥부터 물이 차고 있었다. 김동협(17·사망) 학생은 휴대전화로 객실 내부를 촬영했다.
9시14분 김동협 학생 촬영 동영상김동협 나는 꿈이 있는데! 나는! 진짜 나 웁니다. 나. 아 씨, 나 개무섭습니다.
다른 학생 야, 구조대 온다 했잖아.
김동협 지금 구조대 와도 300명을 어떻게 구합니까! 승객들 포함해서 한 1천 명 될 텐데!
다른 학생 아니, 헬기가 오면 배를 이렇게 딱 잡아서 띄워주는 거 아닐까?
김동협 아 씨, 왓 캔 아이 두? 헬기가 이걸 어떻게 잡아줍니까!
▶헬기 511호 9시26분 부기장 김태호의 눈앞에 40도 기울어진 거대한 여객선이 보였다.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45도 우측(좌측)으로 기울어져 있고 승객들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 목포해경 상황실이 확인했다.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 없는지?” 부기장 김태호가 말했다. “해상에는 지금 인원이 없고.”
그 순간 세월호 선미에 솟아 있는 연돌(굴뚝) 옆 계단에서 주황색 물체가 움직였다. 헬기가 천천히 선체로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헬기에 올라타자마자 여성은 격앙된 목소리로 울먹이며 말했다.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처음 구조된 사람의 첫마디였다. 곧이어 맨발에 회색 티셔츠를 입은 50대 남성이 헬기에 올라탔다. 두 사람은 세월호 3층 주방에서 빠져나온 조리부 선원 김○○(51·생존)과 조리장 최○○(58·생존)이었다. 그들은 작업용 흰색 목장갑을 끼고 흰색 조리복을 입고 있었다. 비상사태에서 조리부는 여객부와 함께 승객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하는 임무를 맡지만 두 사람은 먼저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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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4층 객실 복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학생 20여 명 모두 구명조끼를 입고 벽에 등을 기대어 앉아 있었다. 구명조끼를 입은 건 모두 신○○(17·생존) 학생 덕분이었다. 9시5분경부터 신○○ 학생은 주변 객실 6개를 차례로 들어가 침대 밑에 있는 구명조끼를 꺼내 복도로 던졌다.
그러곤 외쳤다. “헬기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손을 들어라!” 먼저 일어선 학생은 6명이었다. 다른 학생들은 움직이기를 두려워했다. 가파른 복도를 올라가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고소공포증 때문에 포기한 학생도 있었다. “아무래도 나는 못 타겠어. 다음 지시를 들을게.” 결국 그 학생은 탈출하지 못했다.
위급한 상황에서 2분22초 전화▶123정 9시34분, 123정은 세월호 좌현 500m가량 떨어진 지점에 멈췄다. 선미 크레인으로 구명보트를 내렸다. 이 보트에는 해경 대원 13명 가운데 단 2명이 탔다. 구명보트가 세월호로 향하는데 해경 본청 상황실에서 123정 조타실로 전화했다. 9시36분이었다.
9시36분 해경 본청 상황실-123정김경일 사람들이 하나도 안 보이고 헬기가 저쪽 위에 있는데 계류할 수가 없네요. 현재 사람들이….
해경 본청 영상 시스템 작동 안 됩니까?
김경일 구명벌 투하도 없는데 현재 사람이 안 보여가지고요. 헬기 쪽에 문의 좀 해볼랍니다. 아마 선상 안에 있는가봅니다.
위급 상황에서 해경 본청 상황실은 무려 2분22초나 현장 지휘관을 붙들고 꼬치꼬치 보고를 받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승객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하라거나 대공 마이크로 퇴선 방송을 해보라는 지시는커녕 구명뗏목이라도 터트리라는 말조차 하지 않았다.
▶세월호 3층 우현 쪽에서 우당탕 소리가 나더니 조리부 선원 이○○(56·사망)씨가 기관부 객실 복도로 굴러떨어졌다. 또 다른 조리부 선원 김○○(61·사망)씨도 떨어져 전기 창고에 부딪혔다. 그는 머리에 피를 흘리며 신음했다.
기관장 박기호는 3등 기관사 이수진의 방에서 캔맥주를 가지고 나와 1등 기관사 손지태(58·생존)와 한 캔씩 마셨다. 헬기 소리가 우현 쪽에서 들리자 이수진은 “승객들이 있는 쪽부터 구조를 시작하고 있나보다” “이쪽까지는 못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울었다.
기관장 박기호가 입을 열었다. “일단 나가보자. 혼자 나가면 떨어지니까 위에서부터 손을 잡고 내려가보자.” 다친 조리부 선원 2명은 내버려두었다. 3층 좌현 갑판으로 나오자 약 200m 떨어진 곳에 123정 구명보트가 보였다. 기관사 이수진이 손을 흔들며 소리쳤다. “여기예요, 여기.” 9시38분, 해경 123정의 첫 구조자는 이들 기관부 선원 5명이었다.
한편 3층 로비에 있던 승객들이 술렁였다. 바다 쪽에서 모터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해경 구명보트는 세월호 좌현 갑판 가까이 배를 붙였다.
해경 이형래가 난간을 넘어 3층 좌현 갑판으로 넘어왔다. 눈앞에 3층 로비와 연결된 출입문이 있었다. 그 문은 “열려” 있었다. 그러나 이형래는 곧장 오른쪽으로 몸을 돌려 5층 갑판으로 올라가버렸다. 그가 지나친 출입문 앞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갑자기 교신을 끊고 도주했다▶세월호 5층 조타실 모든 갑판부 선원들은 좌현 출입문 근처에서 나갈 준비를 했다. 가장 먼저 조타실 옆 윙브리지에 내려온 조타수 박경남은 구명보트를 탄 기관부 선원들을 목격했다. “아, 저기 봐라. 기관부 먼저 탈출한다.”
선장과 갑판부 선원들도 탈출을 시작했다. 9시45분 세월호에 접안한 123정으로 차례차례 옮겨 탔다.
탈출하는 선원들 옆에서 해경 이형래는 구명뗏목 2개를 발로 차서 바다로 떨어뜨렸다. 구명뗏목은 바다와 닿는 순간 자동으로 펼쳐져야 했지만 꿈쩍하지 않았다.
▶세월호 4층 9시58분, 4층 우현 갑판 선수 쪽에 있는 키즈룸에서 한 남학생이 화물차 기사 김동수씨를 불렀다. 배가 좌현으로 기울어지면서 4층 중앙 홀은 깊은 계곡으로 변한 상태였다. 계곡의 높이가 약 22m(우현 벽~좌현 벽)나 됐다. 키즈룸에서 출입문까지는 계곡으로 변한 중앙 홀이 가로막고 있었다. 그곳을 통과하려면 징검다리가 필요했다. 그 디딤돌을 화물차 기사 김동수씨와 심상길씨가 소방호스로 놓았다. 그제야 승객들은 소방호스를 잡고 출입문 쪽으로 간신히 건너갔다. 힘이 부족한 이들은 22m 아래로 떨어졌다. 몇몇 학생들도 미끄러졌다.
항공구조사 김재현과 류규석은 5층 중앙 난간에서 선미 쪽 3층 난간으로 가기 위해 4층 객실 창문 위를 가로질렀다. 두 항공구조사는 두 발을 창틀에 딛고, 두 손은 창문과 외벽을 짚으며 기다시피 이동했다. 김재현은 다리에 ‘특공대’라고 적힌 “검은색 슈트”를 입고 있었고 류규석이 쓴 후드 부분에는 해경 마크가 새겨져 있었다.
창문 아래는 SP-3 객실이었다. 양○○(17·생존) 학생은 “SP-3 창문에서 줄과 그 줄을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봤다. 학생들이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여기 애들 깔렸어요!” 학생들은 “SP-3 창문을 보며 특공대원에게 계속 얘기”했으나 “특공대원”은 “양팔로 ‘×자’를 해 보였다.” 학생들은 ‘×자’ 표시를 “소리가 들리지 않”거나 “아직 진입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양○○ 학생은 “빨리 여기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해경은 오지 않았다. 항공구조사 김재현은 이동할 때 창문을 보지 않아 객실인지도 몰랐고 승객을 전혀 보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류규석은 “단 한 객실”만 들여다봤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말했다.
물살에 밀려 배 안으로 빨려 들어가▶세월호 4층 10시13분, 세월호가 90도 가까이 기울었다. 3층은 이미 잠겼고 4층 좌측 벽도 해수면에 닿았다. 가까스로 SP-1 객실에서 탈출한 오○○(17·생존) 학생은 선미 출입문 안쪽에 있었다. 학생들은 파도가 치는 바다로 뛰어내리기를 머뭇거렸다. 그러나 해경은 뛰어내린 학생만 건져내고 있었다.
장○○ 학생이 보기에 해경은 “충분히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나왔다, 나왔다” 소리치며, 쏟아져나오는 아이들의 구명조끼 어깨 부분을 잡고 보트로 끌어올리기만 했다.
“왜 들어오질 않는 거야?” 출입문 안쪽 보도에서 줄지어 기다리던 학생들이 웅성거렸다. 파도가 점점 높아졌다.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선내로 쏟아졌다. 학생들은 순식간에 물살에 밀려 배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벽에 있는 핸드레일을 붙잡은 몇몇만이 간신히 버텼다.
설○○(17·생존) 학생도 그중 하나였다. 복도에 물이 차오르자 구명조끼를 입은 몸도 같이 떠올랐다. 이제는 천장이 된 우측 벽에 머리가 닿았다. 출입문을 빠져나가려면 잠수를 해야 했지만 구명조끼 탓에 쉽지 않았다. 최대한 물속으로 머리를 집어넣었고 팔다리를 바다 쪽으로 뻗었다.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해경이 잡아당겨주기만을 바라다가 기절했다. 정신을 차려보니 기적적으로 빠져나와 바다에 떠 있었다.
곳곳에서 꺽꺽거리는 친구들의 비명 섞인 울음이 들렸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설○○ 학생은 자신이 빠져나온 비상구를 돌아봤다. 항공구조사 권재준이 출입문 바로 앞 난간에 매달려 있었다. 그는 잠수복을 입은 항공구조사가 “물살에 휩쓸려서 들어간 친구들을 구하러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미 우현 SP-3 객실에서 복도로 나와 대기하던 학생들은 배에 물이 차오를 때까지 상황을 모르고 있었다. 배가 뒤집히기 직전인 10시15분까지 복도에 빼곡히 앉아 구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승희(17·사망) 학생도 친구들과 기다리며 10시1분부터 10시9분까지 ‘우리 아빠’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았다.
10시1~9분 신승희 학생 문자메시지아빠 걱정하지 마 구명조끼 입고 난간 잡고 애들 다 뭉쳐 있으니까 배 안이야 아직 복도
승희야 밖에 난간에 있어야 하는 거 아냐 안에는 위험해
움직이지 마래 안 돼 너무 심하게 기울어서 움직일 수 없어 더 위험해 움직이면구조 중인 거 알지만 가능하면 밖으로 나와서
아니 아빠 지금 걸어갈 수 없어 복도에 애들 다 있어서 그리고 너무 기울어서가능하면 빨리 구조돼야 돼 얼마 안 가 가라앉기 시작하면 급속도로 내려간다구
구조될 거야 꼭 지금은 한 명 움직이면 다 움직여서 절대 안 돼세월호는 무서운 속도로 기울어지다 10시17분, 우현 난간이 바다에 닿을 정도로 뒤집혔다. 4층 우현 객실에서 대기하던 승객들은 물이 차오른다 싶기 무섭게 곧바로 배가 뒤집히는 걸 경험했다. 세월호 선내는 갑작스레 밀어닥친 해수가 파도를 쳤다. 파도에 휩쓸린 승객들이 선체에 갇혔다.
10시21분, 바닷물에 잠기는 객실 곳곳이 세찬 물기둥을 뿜어냈다. 상공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헬기 511호가 TRS로 보고했다. “뒤로 빠져, 뒤로 빠져, 뒤로. 90% 전복.”
아직 잠기지 않은 4층 B-19 객실 창문에 흰색 물체가 여러 번 부딪치고 있었다. 침대용 철제 은색 사다리였다. 박수현(17·사망) 학생이 있던 곳이었다. 탈출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에도 두꺼운 창문은 끝내 깨지지 않았다. B-19 객실이 바다에 잠기기 직전까지 학생들은 창문으로 사다리를 던졌다. 몇 초 후, 바닷물이 선수 우현의 ‘SEWOL’이라는 글자를 집어삼켰다.
승객들을 구하던 화물차 기사 김동수씨는 어업지도선 전남201호 고속보트에서 123정으로 옮겨 탔다. 그는 눈앞에 있는 해경에게 말했다. “저기 200~300명이 있으니 제발 빨리 구해주세요.” “특공대가 올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마지막 생존자도 해경이 구하지 않았다선체가 가라앉으면서 와류가 생겼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물살이 빠르게 움직였다. 그곳에 사람이 있었다. “줄만 잡아, 줄만!” 박○○ 학생을 발견한 201호 고속보트는 재빠르게 홋줄을 던졌다. 마지막 생존자였다. 그를 구한 것도 해경이 아니었다.
* 실명과 익명은 의 표기 원칙을 기본적으로 따랐다. 피해자 가운데 생존 학생은 익명으로 적었다. 희생된 학생은 유족의 동의를 받은 경우만 이름을 밝혔다. 청해진해운 임직원과 세월호 선원은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경우 실명으로 적고, 나머지는 익명으로 처리했다. 세월호 사건과 직무상 관련된 공무원과 공직자들은 실명을 적었다.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발췌·정리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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