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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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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아무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땅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이 죽어간다”
실종가족들 눈물과 고함, 분노와 절망을 어쩌지 못하는 팽목항·진도실내체육관
등록 2014-04-22 08:56 수정 2020-05-02 19:27
세월호 탑승객의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 4월17일 새벽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부두에 앉아 구조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세월호 탑승객의 실종자 가족들이 지난 4월17일 새벽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부두에 앉아 구조 현장을 바라보고 있다.

국가의 존재 이유를 묻는 사람들은 언제나 울었다.

딸과 아들의 생사 앞에서 엄마와 아빠는 오열했다. “이게 국가냐”고 했다. “이게 정부냐”고 물었고, “이게 정치냐”고 따졌다. ‘국민에게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설명하지 못하는 국가는 그들에게 신뢰가 아닌 분노의 대상이었다.

“구조될 때까지 살려는 놓아야지”

진도실내체육관(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은 격렬하게 끓었다. 세월호 침몰 뒤 체육관은 한탄과, 눈물과, 고함과, 분노로, 절망하고, 애타하며, 터지고, 폭발했다. 체육관에 도착한 가족들은 건물 앞에 붙은 구조자 명단부터 확인했다. 찾는 이름이 없는 사람들은 주저앉아 통곡했고 충격으로 실신했다. 추가 구조자 없이 사망자 수만 늘어날 때마다 ‘실종자 가족’이라 명명돼버린 이들은 쓰러져 탈진했다. 아들딸의 사투를 생각하며 먼저 포기하지 않으려고 엄마들은 곳곳에서 링거를 꽂고 흐느꼈다.

혼돈은 인위적이었다. 실종자 구출이 더뎌지면서 가족들은 인내를 접었다. 4월17일 새벽 2시30분. 체육관 앞쪽에 설치된 ‘학부모대책본부’ 천막에서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가족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언제 몇 시에 구할 것인지 확답하라”는 목소리가 사방에서 날아들었다. “장관이 못하겠으면 대통령한테라도 살려달라 하라”고도 했다. 사고 현장의 작업 여건 악화를 이유(“유속이 너무 세고 시계 확보가 불가능”)로 잠수부 투입이 중단된 상태였다. 가족들은 “구조될 때까지 살려는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며 공기 투입을 요구했다. 배를 타고 사고 현장을 다녀왔다는 한 남성은 “지금 잠수부들이 구조 작업을 안 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이 죽어간다. 다 죽을 때까지 내버려두겠다는 거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구조 작업 없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족들의 불신은 급격히 치솟았다. 거친 욕설과 날선 비난이 체육관을 울렸다. 할 말을 찾지 못하는 장관에게 “여기 앉아 있지 말고 당장 현장으로 가라”고 다그쳤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새누리당 남경필·정병국 의원도 비난 속에서 말이 없었다. 2시간 전엔 체육관을 방문한 정홍원 총리가 물세례를 받았다. 실종자 가족들은 국가도 정부도 국회도 언론도 믿지 않았다.

“팽목항(진도군 임회면)에 있는 아버지가 생존자로부터 문자를 받았대요.”


선장은 응급환자 발생과 기상 악화를 이유로 회항을 시작했다. 뱃머리 끝으로 올라간 한 남성은 “세월호 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바다로 뛰어내리겠다”며 선장에게 소리쳤다.


한 실종자 가족이 장관을 향해 외쳤다. 배에 남아 있는 학생이 실명으로 보낸 구조 요청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그는 아버지가 알려주는 이름을 장관에게 전했다. “강○○, 유○○, 박○○.” 한 학부모가 안산 단원고 학생들의 명단과 대조하러 갔다. 몇몇 학부모는 “아직 살아 있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해수부 직원은 위치추적을 하겠다며 문자메시지 발신자의 번호를 받아적었다. 이름을 확인한 학부모가 “우리 학교엔 그런 이름이 없다”며 힘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실망한 한 여성은 “제발 살려달라”며 절규했다. 가족들은 일희일비했다. 피붙이를 바다 속에 두고 땅 위에서 숨 쉬는 그들은 작은 소식 하나에 통곡하고 안도했다. “꼭 살려서 돌아오라”는 한 아버지의 고함 소리가 팽목항으로 이동하는 장관의 귀에 꽂혔다. 카오스의 현장이 있다면 진도실내체육관과 팽목항이 그랬다.

깜깜하다 희뿌예질 때까지 한자리에서

멀리 간 임이 돌아오길 기다리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돌(망부석 전설)이 있었다. 4월17일 새벽 팽목항에선 돌처럼 굳은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고 앉아 있었다. 사고 현장(진도군 조도면 병풍도 북쪽 2.7km 지점)은 눈으로 볼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이 보이길 바라며 가족들은 미동하지 않았다. 멀리서 간간이 조명탄이 빨갛게 솟았다. 깜깜한 하늘이 희뿌옇게 밝을 때까지 그들은 얇은 담요 한 장으로 차가운 바닷바람을 견뎠다. 그리는 이의 생환을 염원하며 그들의 몸과 마음은 돌이 돼갔다.

세월호 탑승객의 실종자 가족이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진도실내체육관 앞에 붙어 있는 구조자 명단을 바라보고 있다(왼쪽). 실종자 가족을 실은 배가 사고 현장을 향해 팽목항 부두를 떠나고 있다.

세월호 탑승객의 실종자 가족이 전남 진도군 진도읍 동외리 진도실내체육관 앞에 붙어 있는 구조자 명단을 바라보고 있다(왼쪽). 실종자 가족을 실은 배가 사고 현장을 향해 팽목항 부두를 떠나고 있다.

팽목항에서도 체육관에서의 풍경이 되풀이됐다. 항구 현장을 지키는 해양경찰들을 향해 실종자 가족들의 화는 날것으로 폭발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이들이 죽어간다. 왜 아무것도 안 하나. 애들이 문자 보내서 살려달라는데 왜 안 들어가나. 날 밝으면 비 오고 바람 분다는데, 바람 불면 우리 애들 다 떠내려간다.”

날씨 ‘비’, 풍속 ‘7~11m/s’, 파고 ‘0.5~1.1m’. 팽목항 대합실에서 예고하는 4월17일 아침 6시 날씨가 가족들을 불안하게 했다. 혼란스러운 가족들은 체육관과 팽목항 어디에서도 정확한 상황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 해경이 민간 구조대의 현장 진입을 차단하고 있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성난 가족들의 분노는 통제선을 넘고 있었다.

한 민간 잠수부가 “해경이 막았다는 건 오해다. 반드시 구해낼 테니 믿어달라”며 가족을 달랬다. 그가 실종자 가족이 없는 곳에서 에 말했다. “현재 유속이 8노트다. 3노트 이상이면 잠수를 금지한다. 가족들의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기술적으로는 잠수가 불가능한 상태다.” 생존자들이 보냈다는 문자메시지를 두고도 “물속에서는 전파가 안 통한다. 문자가 올 수 없다”고 했다.

통곡의 배였다. 4월17일 아침 7시17분 실종자 가족 80여 명을 태운 배가 사고 현장을 향해 출발했다. 배에 올라 파도의 요동을 감각하자마자 가족들은 오열했다. 바다가 가둔 아들딸의 이름을 부르며 부모는 목 놓아 울었다. 7시25분께 갑자기 “회항하겠다”던 선장이 가족들의 항의를 받고 “다시 사고 현장으로 가겠다”고 방송했다. 가족들의 욕설이 엔진 소리를 뚫었다. 쇳덩이를 띄우는 바닷물보다 절망에서 솟는 눈물이 더 깊었다. 그들의 눈물은 염분보다 울분 때문에 짠 것인지도 몰랐다.

하늘은 우려대로 움직였다. 7시40분께부터 먹구름이 비를 뿌렸다. 바람은 거세졌고, 배는 좌우로 출렁였다. 끝을 알 수 없는 바다가 그보다 끝없는 애통으로 가득 찬 배를 느릿느릿 밀어냈다. 배 안에서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자메시지는 가족들을 흔들었다. 딸이 보낸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는 한 엄마의 이야기가 배 안으로 전파됐다. ‘살아 있으니 구해달라’는 딸의 문자를 받고 친구가 전화를 걸어왔다(경찰청은 “지금까지 확인된 문자메시지 중 사고 지점에서 발신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고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희망이 생겼다”며 서로 끌어안았다.

“저 앞에 있는데, 아직 저 아래에 있는데….”

8시40분께 멀리 사고 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군함 등 구조에 동원된 크고 작은 배 50여 척이 보였다. 바다는 침몰한 세월호의 머리끝만 보여줬다.

팽목항을 출발한 배는 1시간40여 분 만에 사고 현장을 500여m 앞에 두고 멈췄다. 더 이상 다가갈 수 없는 거리에서 가족들이 무너졌다. “아들아 내가 왔다….” 자신의 아들딸 이름을 부르며 그들은 서럽게 울었다. 한 학부모가 정신을 잃고 실신했다. 선장은 응급환자 발생과 기상 악화를 이유로 회항을 시작했다. “사랑해” “힘내” “조금만 참아”…. 자식들을 물속에 두고 멀어지며 부모들은 다시 통곡했다. “저 앞에 있는데, 아직 저 아래에 있는데…. 제발 기적이, 제발 기적이….” 뱃머리 끝으로 올라간 한 남성은 “세월호 쪽으로 돌아가지 않으면 바다로 뛰어내리겠다”며 선장에게 소리쳤다.

꿈틀대는 바다의 근육이 배를 좌우로 밀고 당길 때마다 가족들도 함께 흔들리고 출렁였다. 차가운 비와, 거센 바람과, 뿌연 안개로 그들의 몸과 마음은 젖고, 얼고, 절망했다. 아들딸이 아직 숨 쉬고 있길 바라며 파도 위의 부모들도 가까스로 한 호흡씩을 이었다.

4월17일 오후 4시20분. 박근혜 대통령이 진도실내체육관을 찾았다. 그가 입구에 모습을 드러내자 체육관은 격렬하게 요동했다. 대통령을 반기는 목소리와 “살려달라”는 애원과 “꺼지라”는 욕설이 뒤섞였다.

단상에 오른 박 대통령이 마이크를 잡았다. 그는 “방금 사고 현장에 다녀왔다”고 했다. “할 수 있는 모든 걸 다 하라고 말했다”며 “희망을 잃지 말고 구조 소식을 기다려달라”고 했다. 가족들은 쌓였던 분노를 쏟아냈다. ‘구조 상황을 전혀 모른다’며 체육관에 실시간 정보를 제공할 상황실 설치를 요구했다. 박 대통령은 “뉴스보다 빨리 정보를 들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무리 물살이 세고 앞이 깜깜해도 구조 인력 투입을 중단해선 안 된다’는 요구가 빗발쳤다. 대통령은 “끝까지 시도하라”고 해양경찰청장에게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거듭 “여러분의 신뢰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여기 있는 분들 다 책임지고 물러나야 한다”고도 했다. 그의 약속에도 실종자 가족들의 불신은 줄지 않았다. 공기 주입을 수없이 요구해온 가족들은 ‘주입 진입로 확보 과정에 있다’는 해양경찰청장의 말을 욕설로 받았다. “대통령께서 현장에 와서 최후의 한 분까지 구조하도록 엄명했다”는 해양수산부 장관의 말에도 “거짓말 말라”고 퍼부었다.

박 대통령이 단상을 내려오자 한 여성이 휴대전화를 들고 앞으로 뛰어나왔다. “아들 친구가 배 안에 있는 아들한테 전화를 받았다고 한다”며 울부짖었다. 대통령 경호진과 뒤엉킨 사람들에게 막혀 그의 발걸음은 전진하지 못했고 찢어지던 목소리도 묻혀 소거됐다.

VIP가 다녀가고 나자

박 대통령이 돌아간 뒤 진도군청에선 ‘VIP 지시사항 이행’을 위한 범정부 대책회의가 열렸다. 체육관에 폐쇄회로텔레비전(CCTV) 상황판 설치, 해양경찰청장의 1일 1회 직접 브리핑, 피해 가족 대표의 구조 현장 참관, 탑승객 명단 피해자 가족에게 개별 확인, SNS 문자메시지의 진위 즉각 확인, 선내 신속한 공기 주입 등이 결정됐다. 이 당연한 조처들은 가족들이 대통령에게 악을 쓰고 나서야 비로소 이뤄졌다.

4월18일에도 구조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오후 3시38분 잠수부 2명이 화물칸 진입에 처음으로 성공했으나 장애물로 인해 더는 전진하지 못했다. 오후엔 안산 단원고 강아무개 교감이 체육관 인근 야산에서 소나무에 허리띠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살아남은 자는 살아남은 죄스러움을 견디지 못했다. 탑승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은 사망자도 발견됐다. 해경 관계자가 체육관에서 신원 미상의 사망자 인상착의를 설명했다. 지친 가족들 사이에서 간간이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2014년 4월은 잔인한 달이다. 한국의 땅끝에 ‘아무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땅’이 생겨났다. 침몰한 배 안에서 선장과 승무원에게 버림받은 승객들은 오직 자신의 숨으로 살아남아야 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누구도 믿지 못한 채 스스로 사태를 파악하고, 진위를 판단하며,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선체 진입에 성공했다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발표(4월18일 오전)에 한숨 돌렸다가 ‘오보’라는 해경의 수정 발표(4월18일 오후)에 다시 절망했다. 민간 잠수부의 언론 인터뷰(“경찰이 민간의 구조를 막고 있다”)와 경찰 사이의 진위 공방은 그들을 수렁 같은 혼돈에 빠뜨렸다. 구조자·탑승자 수부터 오락가락했고, 사망자의 신원은 뒤바뀌었다. 대통령이 다녀가기 전까지 구조 상황을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춤추고 널뛰는 언론 보도는 불신을 넘어 증오의 대상이 됐다.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남은 것은 극한의 분노와, 치유될 수 없는 상처와, 헤어나올 길 없는 절망뿐이다. 그사이 세월호는 바다 속으로 완전히 침몰했고, 사망자 수는 계속 늘어나고 있다. 공포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믿고 나눠 질 사람이 없을 때 힘을 더한다.

진도=글 이문영 기자 moon0@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1008호 주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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