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만이가 살아 있다.”
냉동고 안 주검은 백구만(37)씨가 아니었다. 노란 머리카락 때문이었다. 한 달 전 머리를 물들였던 그의 모습이 오해를 불렀다.
3월15일 새벽은 처참했다. 전남 여수국가산업단지에서 대림산업고밀도 폴리에틸렌 저장탑이 터진(3월14일 저녁 8시50분께) 직후였다. ‘백중만(백구만씨 형) 비계반’ 생존자들은 여수 시내 병원을 돌며 훼손된 주검들 사이에서 동료들을 확인했다. 끔찍함에 질려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여수제일병원에서 여수성심병원으로, 여천전남병원에서 다시 여수제일병원으로, 그들은 병원을 돌고 돌아서야 백구만씨의 생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다. 노란색은 염색약이 아닌 화염이 만든 빛깔이었다. 냉동고에 누워 있는 사람은 이승필(41)씨였다.
그 시간 백구만씨는 광주 전남대병원에 있었다. 그는 전날 밤 10시 14분 사고 현장에서 여천전남병원으로 실려왔다. 생과 사를 오가는 그의 상태는 이 병원이 감당하기에 너무 무거웠다. 그는 20여 분 뒤인 10시35분 광주로 옮겨졌다. 3월15일 0시6분 도착한 전남대병원에도 화상 전문의는 없었다. 병원은 응급처치를 한 뒤 아침 7시59분 서울로 가는 구급차에 그를 태웠다. 그가 한강성심병원에 들어선 시간은 낮 12시20분이었다. 여천전남병원 도착부터 14시간이 흐른 뒤였다.
윤태순(40·배관반)씨를 실은 구급차도 5시간 앞서 같은 길을 달렸다. 3월14일 밤 9시38분 여천전남병원으로 옮겨진 그는 10시40분 광주 전남대병원으로 출발해 11시50분에 닿았다. 새벽 2시37분에 이 병원을 떠났고, 아침 6시20분 한강성심병원에 도착했다. 그의 손에 삶의 끈을 쥐어줄 병원이 여수와 광주엔 없었다. 부인 박성신씨가 ‘초조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여수에서 광주로 갔지만 치료가 힘들다고 했다. 다시 안개 낀 새벽도로를 달려 서울로 왔다. 그 답답했던 순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3월15일 새벽 김경춘(51)씨도 여수성심병원에서 이송됐다.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받는 폭발사고 중환자는 3명으로 늘었다. 김경춘씨는 20도 중화상에 전두골과 늑골·흉골이 깨진 동반 손상을 입었다. 화상외과 김도헌 교수는 “폭발물에 맞은 듯했다”고 표현했다. 윤태순씨는 40도 화상을 입었다. 피부 괴사를 막기 위한 이식수술이 이번주 예정돼 있다. 두 사람은 큰 고비를 넘긴 상태이지만, 백구만씨는 여전히 위중하다. “화상 범위가 60%에 이르고 얼굴과 하복부 손상도 심각하다”고 김 교수는 전했다.
폭파 지점인 저장탑 꼭대기에서 살아남은 문진목(54·비계반)씨와 서인철(47)씨도 여수가 아닌 광주 굿모닝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여천제일병원과 여수성심병원에 입원 중이던 배관반 노동자 3명도 이 병원으로 옮겼다. 광주 굿모닝병원은 전남·북 지역에서 유일하게 화상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여수산단 폭발로 화상과 외상을 입은 사람들이 모두 여수 밖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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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산단은 석유화학기업의 집결지다. 유해물질을 다루는 까닭에 위험이 늘 잠복해 있다. 시설도 낡았다. 1967년 박정희 정부가 산단을 조성한 뒤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1970년대 이후로만 287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각종 폭발과 유독물질 누출이 잇따랐다. 그간 116명이 죽었고, 201명이 다쳤다. 대림산업은 1981년에도 보일러 폭발사고를 냈다. 당시 4명이 사망했다. LG화학도 1989년(16명 사망·17명 부상), 2000년(5명 부상), 2004년(1명 사망·1명 부상) 대형 폭발사고를 되풀이했다. 새벽에 1천 명이 넘는 주민이 대피(1986년 12월7일 에탄올공장 무수황산 폭발)하는 일도 있었다. 지역민들은 여수산단을 ‘화약고’라고 부른다. 산단 주변에 산업재해 응급환자를 치료할 전문병원이 없다는 사실에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이유다.
정기명 전국플랜트건설노동조합 여수지부 비계분회장은 “40년 넘도록 사고로 몸살을 앓은 석유화학단지에 산재전문병원이 없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따졌다. “사고가 나면 다른 지역으로 가지 않고도 여수에서 바로 치료받을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도 했다.
이철희(백중만·구만 형제 조카)씨는 비계공이다. 백중만 팀의 일원으로 사고 현장에 있었다. 그는 “치료 가능한 병원이 좀더 가까이 있었다면 구만이가 회복하는 데도 훨씬 도움이 됐을 텐데 아쉽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폭발 직후 사망자 주검을 수습하고 부상자를 구출하며 ‘지옥’을 봤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여천전남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다.
현재 여수에선 산재전문병원 추진 목소리가 다시 분출하고 있다. 이번 사고가 민심에 불을 붙였다. 지역 노동계와 시민단체·야당이 ‘산재전문병원 건립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활동에 들어갔다. 여수시민들이 산재전문병원 설립을 요구해온 지는 10년 가까이 된다. 대형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설립 요구’와 ‘유야무야’를 반복해왔다.
여수산단의 한 해 매출액은 100조원에 육박한다. 김상일 공동추진위원장(통합진보당 여수시의원)은 여수산단이 내는 법인세가 5조원 안팎임을 강조한다.
“국가경제에 엄청난 기여를 하는 산업단지에서 대형 참사가 끊이지 않는데도 산재전문병원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서울이나 광주로 가는 시간만큼 피해는 악화된다. 영리 문제를 떠나 산재병원과 종합방재센터를 정부가 지원해야한다.”
추진위는 ‘이번엔 끝장을 보겠다’는 태도다. “일회성이 아니라 시민운동 차원으로 힘을 모아 병원 설립이 가시화될 때까지 활동한다”는 계획이다. 여수시와 여수시의회도 종합방재센터와 병원 건립을 정부에 건의하며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추진위 “이번엔 끝장을 보겠다”‘여수의 요구’가 좀더 다듬어질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김도헌 교수는 “국내 중화상 전문의를 다 합쳐도 20여 명에 불과하다. 산재병원을 만들어도 감염 위험이 높은 중화상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시설과 인력을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는 의견이다. 여수에 산재병원을 세운다면 경화상 치료 기능은 두되, 중화상일 땐 신속하게 전문병원으로 연결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더 시급하다는 얘기다. 국내에서 대학병원급 중화상 전문병원은 한강성심병원이 유일하다.
이윤근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은 “산재전문병원은 여수산단 노동자와 시민으로선 당연한 요구일 수 있다. 다만 화상 치료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재활 중심의 산재전문병원을 만들어 지역 특성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여수=이문영 moon0@hani.co.kr·박현정 기자 saram@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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