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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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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지지 30대 80.6% “투표 시간 늘려야”

역사적으로 투표 시간 연장되는 방향으로 법 개정, 새누리당 속내는 젊은 층 투표율 높아지니까 연장 반대
등록 2012-11-08 20:58 수정 2020-05-03 04:27

“제 근무지가 있는 구로디지털단지 안에 10만 명이 일해요. 지난해 서울시장 선거 때 젊은 사람들이 퇴근하고 투표한다며 우르르 뛰어가는 걸 봤어요. 총선 때와 투표소가 달라서 우왕좌왕하고, 여자들은 하이힐 신고 막 뛰어가고요.” 지난 10월30일 과 한겨레사회정책연구소의 30대 좌담에서 박하나(36·가명)씨가 말했다. “홈쇼핑 효과, 마감 임박!”이라는 송이현(36·가명)씨의 농담에 웃음이 터졌다. 참석자들은 투표 시간 연장에 대한 의견을 묻자 “꼭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 엠브레인에 맡겨 실시한 30대 온라인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91%가 ‘투표 시간 연장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지지자의 80.6%가 찬성했다.

투표 불참자 64.1%, “투표 불가능했다”
평일 치르는 재·보궐 선거의 투표 시간은 저녁 8시까지다. 서두르면 ‘퇴근 뒤 투표’가 가능하다. 대선에서는 불가능하다. 이정현 새누리당 선거대책위 공보단장은 “법으로 투표일이 공휴일로 보장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대한민국밖에 없다”고 주장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선거일은 관공서와 공무원에게만 공휴일로 지정돼 있다. 일반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단체협약 등으로 정할 뿐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선거일에 근무하느라 정해진 시간에 투표를 하지 못한다. 2011년 6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의뢰로 한국정치학회가 비정규직 노동자의 투표 참여 실태를 조사했는데, 2008년 총선 투표 불참자 256명 가운데 64.1%(164명)가 ‘투표 참여가 불가능했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678명)의 24%에 달한다. 투표를 못한 이유는 ‘근무시간 중 외출이 불가능해서’(42.7%), ‘임금 감액 때문에’(25.8%), ‘고용주나 상사의 눈치 때문에’(9.8%) 등의 순이었다. 근로기준법을 보면, 사용자는 노동자가 선거권 행사를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거부할 수 없고, 거부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처벌 사례는 전무하다. 운수와 철도, 건설, 유통 등 업종별 특수성 때문에 투표에 어려움을 겪는 유권자들의 사연은 선거 때마다 단골 뉴스로 등장한다.
“선거일의 법정 공휴일 지정과 투표 시간 연장으로 투표 참여를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 200여 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투표권 보장 국민행동’은 11월1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밤 9시까지로 투표 시간을 3시간 연장하는 내용 등을 담은 입법 청원서를 국회에 냈다. 이들은 “투표율의 지나친 하락과 참정권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는 유권자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여야는 당리당략이 아니라 참정권 보장과 대표성 신장이라는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밝혔다. “투표는 성의의 문제”라는 이정현 새누리당 공보단장의 말과 달리, 기본권의 문제라는 얘기다.
투표 시간 연장 요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투표 시간이 오전 6시~오후 6시로 정해진 것은 1994년 공직선거 및 선거부정방지법(현 공직선거법) 제정 때다. 당시 야당과 중앙선관위는 저녁 7시까지로 2시간 연장하자고 주장했으나, 이전보다 1시간 늘리는 데 그쳤다. 국회는 재외국민투표, 선상투표 등 참정권 확대를 위한 제도를 마련해왔고, 지난 2월에는 선거일 전에 지정된 부재자 투표일 이틀 동안 별도의 신고 없이 투표소에서 투표할 수 있는 통합선거인명부제를 내년부터 도입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선거법을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새누리당 쪽에서는 투표 시간을 24시간으로 늘리자는 법안을 제출하기도 했다.

투표 시간 연장 여부가 대선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촉구하고, 박근혜 후보는 반대한다. 10월31일 참여연대 회원들이 서울 청계천 광교에서 투표 시간 연장을 청원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투표 시간 연장 여부가 대선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문재인·안철수 후보는 촉구하고, 박근혜 후보는 반대한다. 10월31일 참여연대 회원들이 서울 청계천 광교에서 투표 시간 연장을 청원하는 서명을 받고 있다. 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투표 시간 연장은 야권 입장에서는 우리가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거 아니냐. 우리가 안 받으면 야권을 지지하는 젊은 층 표심을 결집시킬 수 있고, 박 후보가 참정권 침해한다고 할 테고, 참 답답하다.”
-박근혜 캠프 관계자


“투표는 성의” “연장하면 100억원 늘어나”…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투표 시간 연장 문제에 대처하는 새누리당의 태도는 궁색하기만 하다.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지난 10월30일 기자들에게 “(투표 시간을) 늘리는 데 100억원 정도 들어가는데 그걸 공휴일로 정하고, 또 그럴 가치가 있느냐는 여러 논란이 있는데 여야 간에 잘 협의해서 하면 될 것”이라며 사실상 반대 뜻을 밝혔다. 참정권 확대 문제를 비용 문제로 여기는 인식도 문제이지만, 여야가 알아서 하라는 태도에는 대선 후보로서 명확한 태도와 책임감이 보이지 않는다. 안철수 캠프의 김성식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은 “국민주권 문제를 돈으로 따지려는 것이야말로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이 투표 시간 연장 문제를 정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정현 공보단장은 투표 시간 연장 법안을 ‘대선 후보 중도사퇴시 선거보조금 환수법안’과 동시에 논의하자고 나섰다가,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이를 전격 수용하자 “두 사안을 연계처리하자는 뜻은 아니었다”며 말을 뒤집었다. 새누리당은 문재인-안철수 후보 단일화를 견제하려고 후보 등록 뒤 사퇴할 경우 선거보조금을 거둬들이는 법안을 ‘먹튀 방지법’이라고 부르며 공세를 펴왔다. 새누리당은 뒤늦게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 투표 시간 연장뿐 아니라 투표소를 늘리는 공간 편익 등 다양한 문제를 함께 논의하자”면서도 “이 문제는 선대위에서 거론할 게 아니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논의하자”(안형환 선대위 대변인)고 발을 빼고 있다. 박근혜 캠프의 한 관계자는 “투표 시간 연장은 야권 입장에서는 우리가 받아도 좋고, 안 받아도 좋은 거 아니냐. 우리가 안 받으면 야권을 지지하는 젊은 층 표심을 결집시킬 수 있고, 박 후보가 참정권 침해한다고 할 테고, 참 답답하다”고 말했다.

문재인·안철수 후보의 공세도 거세지고 있다. 문 후보는 10월2일 선대위에 ‘투표시간 연장을 위한 특별본부’를 설치하며 치고 나온 데 이어, 11월5일 1300만 명을 목표로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안 후보도 10월28일 ‘투표시간 연장 국민행동’을 꾸리고 투표시간을 2시간 연장하는 선거법 개정을 촉구하고 나섰다.

서울시장 보선 때 2시간 동안 9%포인트 상승

문-안 두 후보 쪽은 모두 참정권 확대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치적 의도를 배제하고 생각하긴 어렵다. 투표 시간이 연장되면 젊은 층의 투표율이 상승해 야권 후보에 유리하다는 분석이 많기 때문이다. 최근 2년간 재보궐 선거 사례를 보면, 오후 6~8시에 4.2~8.1%의 투표가 이뤄졌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경우 오후 6시 39.9%였던 투표율이 저녁 7시 42.9%, 저녁 8시 48.6%로 2시간 동안 9%포인트 상승했다. 세 후보 진영이 투표 시간 2시간 연장에 드는 비용을 놓고 서로에게 유리한 수치(중앙선관위 추계치는 100억원,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치는 36억원으로 인건비 산정 방식이 다르다)를 들이대며 공방을 벌이는 것도 투표 시간 연장에 따른 정치적 계산이 다르기 때문이다.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선거법 개정 전망이 밝지 않아 보이는 이유다.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관련 영상] ‘투표하라 1997’··· 30대 표심 심층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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