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 탈, 탈탈탈.” 홍세화 진보신당 대표가 힘주어 말한다. 무슨 소리인가? 진보신당이 4·11 총선에서 내세우는 핵심 정책 가운데 ‘우리 사회가 벗어나야 할 5대 핵심 과제’라고 한다. 탈핵, 탈삼성·탈재벌, 탈비정규직, 탈경쟁·탈학벌, 탈자유무역협정(FTA), 이른바 ‘5대 탈’이다.
그런데 탈삼성이라니, 어쩌자는 것인가? 진보신당은 “국민연금 소유 지분을 통해 경영에 공적으로 개입하고, 삼성 이사회의 절반 이상을 노동자 선출 이사로 구성해, ‘노동자·국민 기업 삼성’으로 전환하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 사회 전체로 촉수를 뻗는 이건희 일가의 권력은 삼성 계열사들에 대한 불법·편법·탈법적 지배에서 비롯되며, 이런 부당한 권력 기반을 해체해야 한다”는 설명에는 ‘삼성동물원’이란 말로 상징되는 한국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저항의 뜻이 담겨 있다. 노동자의 권리, 노동의 가치를 지키려는 몸부림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 경남 거제에 출마한 김한주(가운데) 진보신당 후보가 조선소 노동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거제에서는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 고문변호사인 김 후보와 삼성중공업 고문변호사인 진성진 새누리당 후보의 대결이 펼쳐진다. 진보신당 제공
“지역 노동자와 함께 9년 넘게 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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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에 출마한 김한주(44) 진보신당 후보. 그는 거제 지역에서 삼성중공업 노동자들의 자문변호사로 활동하며 삼성을 상대로 싸워 이긴 경험이 있다. 공교롭게도 진성진(52) 새누리당 후보는 삼성중공업 고문변호사 출신이다. 진보신당은 거제의 선거 구도를 ‘노동자의 변호사 대 삼성의 변호사’라고 규정했다.
“삼성은 노동조합이 없잖아요. 노동자협의회죠. 삼성 노동자들뿐 아니라, 대우조선 노동조합 쪽과 현장에서 9년 넘게 같이 해왔습니다. 노동자 변호사 대 회사 쪽 변호사라는 구도인 건 맞죠. 그렇다고 (서로) 적대적인 건 아닙니다. 하하.” 총수 일가의 전횡, 노동자들을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는 사 쪽의 행태가 문제이지, 삼성 자체를 적대시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로 들렸다. 김한주 후보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지금도 2주에 한 번 노동자들을 위한 무료 현장상담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는 노동법을 전공했고, 2003년 고향인 거제로 내려가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는 일에 매달렸다. 지난해 6월에는 7년 동안의 법정 투쟁 끝에 삼성중공업 노동자 1488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퇴직금 청구소송의 대리인을 맡아 일부 승소하는 ‘쾌거’를 이뤘다. 삼성이라는 거대 기업을 상대로 이긴데다, 삼성 쪽 대리인이 대형 로펌 ‘김앤장’이어서 지역에서는 큰 화제가 됐다고 한다. 삼성중공업 산재노동자 36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급여 관련 소송에서도 승소한 적이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김 후보는 ‘시골 인권변호사’로 불린다.
거제는 조선소의 도시, 노동자의 도시다. 옥포에 대우조선해양, 고현에 삼성중공업이 있고, 수많은 하청업체들이 모여 있다. 젊은 남성 노동자가 상대적으로 많다. 그러나 새누리당의 아성이 깨진 적은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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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후보가 선거에 나선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10년 지방선거 때 거제시장 진보신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떨어졌다. 당시 민주노동당 후보와 단일화에 실패했고, 이 때문에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당선된 게 아니냐고 욕도 많이 먹었다. 진보정당의 두 후보가 얻은 표가 한나라당 후보와 불과 900여 표 차이였기 때문이다.
자원봉사자 8천 명의 새누리당 후보
이번 총선은 사정이 다르다. 진보신당은 민주통합당·통합진보당의 중앙당 차원의 야권 연대 협상에서 제외됐지만, 경남 거제에서는 진보신당까지 참여한 야권 후보 단일화 경선이 이뤄졌다. 김한주 후보가 오랫동안 지역 기반을 닦아온데다, 거제에서는 진보신당이 시도 의원 3명을 보유한 ‘제1야당’인 까닭에 3당 협상이 이뤄진 것이다. 김한주 후보는 이 경선에서 승리해 경남 마산을 지역의 하귀남 민주당 후보와 함께 전국에서 2명 뿐인 ‘야 3당 단일후보’가 됐다.
김 후보는 진보신당 지역구 후보 가운데 당선을 기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야권 연대가 이뤄졌고, 보수 성향의 김한표(58) 후보가 나서 3자 구도가 형성됐다. 홍세화 대표는 “삼파전에서는 해볼 만하다. 당력을 거제에 모두 쏟아붓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다만, 야권 단일화의 ‘여진’이 있는 점은 부담이다. 경남 창원을 지역에서 통합진보당 후보와 진보신당 후보의 단일화 협상이 결렬돼, 거제의 야권 단일화에도 힘이 실리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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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후보와 한판 승부를 겨룰 진성진 새누리당 후보는 검사 출신이다. 현역인 윤영 의원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아들 현철씨를 제치고 공천장을 따냈다. 정치 신인이지만, 진 후보 역시 거제에서 7년 동안 밭을 일궈왔고 자원봉사자 수가 8천 명에 이른다. 진 후보는 “이번 선거전을 국가적 어젠다로 승부하겠다”고 벼른다. 작은 정당 후보, 무소속 후보와 만만치 않은 싸움을 치러야 하는 상황을 의식한 여당 후보의 전략으로 보인다. 진 후보는 3월22일 선대위 발대식에서 “정치적 목적을 앞세워 국가의 근간을 뒤흔드는 세력들에게 거제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없다. 창당 4년 국회의원 한 명 없는 정당이나 무소속에 미래를 걸겠느냐”고 말했다. 진 후보는 삼성중공업 고문변호사, 대우조선해양 사내협력사협의회 고문변호사를 대표 경력으로 내세우고 있다. 진 후보 쪽은 “대표적 공약 가운데 하나가 ‘비정규직 차별 철폐, 이것이 정의입니다’라는 것이다. 양대 조선소의 고문변호사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런 공약을 실현하는 데 훨씬 더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김한표 무소속 후보는 거제경찰서장 출신으로 16·18대 총선에 출마해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하는 등 상당한 지역 기반을 가진 것으로 평가된다. 지역에서는 거제 삼파전의 승자가 누가 될지 예상하기 어려운 혼전이 벌어지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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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로 지역의 권력 교체 이룰까
김한주 후보가 당선된다면, 노동자의 권리와 노동의 가치를 지키려는 싸움이 승리했다는 ‘상징’으로 얘기될 수 있다. 그러나 김 후보의 당선이 가치의 실현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더구나 의석 하나에 당의 존립을 걸고 있는 소수 정당이 아닌가. 그럼에도 김 후보는 굳게 믿고 있었다.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권력 교체를 이뤄본 적이 없다. 이명박 정권 4년 동안 고통을 겪은 시민들이 이번만큼은 노동 전문가, 야당을 선택해줄 거라고 생각한다.” 김 후보는 “비정규직 관련 입법과 근로기준법 개정, 한-미 FTA의 파편을 맞는 분야와 관련한 법안을 보완하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낙선한다면? 당연히, 그래도 한다. 방법이 달라지긴 하겠지만, 해야만 하니까.
이지은 기자 jieu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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